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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주의’, 위기에 번성하는 덫
‘긍정주의’, 위기에 번성하는 덫
  • 김선진
  • 승인 2023.01.27 09: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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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의 재미_『긍정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 전미영 옮김 | 부키 | 304쪽

소비 부추기고 기업에 유리한 문화 조장
기독교 복음주의 초대형 교회와도 결탁

새해가 밝았다. 세계 경제와 국제 정치상황은 새해의 희망을 비웃듯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이다. 코로나는 4년째 접어들고 있지만 중국발 변이로 또다시 대유행을 우려하고 있고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은 확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오랫동안 지속된 양적완화 정책이 초래한 인플레를 막기 위해 미국이 테이퍼링의 고강도 고금리 정책으로 선회하면서 부동산 등 실물 경제는 폭락하고 있고, 에너지, 식량위기와 함께 세계 시장은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퍼펙트 스톰의 복합 위기가 예고되고 있다.

비관적인 전망이 가득할 때 사람들은 그럴수록 더욱 긍정적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고 믿는다. 작심삼일이 될지언정 잘될 거란 무한긍정의 주문을 외우며 신년 계획을 다잡는다. 희망이 사라진 곳에서 인간이 의지할 것이라곤 희망을 대신할 낙관적 믿음뿐이다. 바로 이런 때가 행복론과 같은 긍정심리학의 세례를 받은 자기계발서들에겐 오히려 위기가 기회다. 수많은 동기 유발 코치와 대중강연자들은 긍정적 태도가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구원해 줄 거란 복음을 전파하는 전도자로 나선다. 이젠 하나의 신념이나 이데올로기처럼 받아들여지는 긍정주의는 과연 의심의 여지없이 받아들여도 좋은 믿음인가?

 

긍정은 선의로 포장된 좋은 의도를 갖고있지만 근거없는 맹목적 긍정이 초래한 부정적 결과들을 보며 나는 의구심어린 시선을 거둘 수 없었다. 단적으로 들 수 있는 예가 스톡데일 패러독스다. 베트남전 때 하노이 포로수용소에서 10년 가까이 세월을 보내고도 살아남은 스톡데일 장군의 이야기이다. 부활절에는 풀려날 거야, 추수감사절에는 풀려날 거야, 크리스마스 때는 풀려날 거야라며 근거 없는 희망에 기댔던 ‘낙관론자’들과, 풀려날 수 없을 거라 처음부터 포기한 ‘비관론자’들은 견디지 못했다. 쉽게 나갈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반드시 살아서 돌아가겠다며 의지를 다진 ‘현실주의자’들은 끝까지 살아남았다. 희망 고문으로 끝날 근거없는 긍정은 비참한 결말을 초래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긍정의 배신(Bright-sided)』은 긍정이 확산된 역사적 배경을 살피고 이면에 숨어있는 문제를 날카롭게 분석하고 비판함으로써 긍정의 어두운 실상을 낱낱이 고발하고 있다.

저자는 『노동의 배신』, 『희망의 배신』에 이어 『긍정의 배신』까지 3대 배신 시리즈를 써 주목받은 저명한 사회 비평가이자 저널리스트로서 신자유주의가 빚은 빈곤의 문제와 화이트칼라 중산층의 몰락 문제를 다룬 바 있다. 그는 자신이 직접 웨이트리스 등으로 최저임금 수준의 삶을 직접 체험하거나 화이트칼라 구직 현장에 뛰어들어 직접 경험한 것을 토대로 근거를 갖고 현실적인 문제제기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긍정의 배신』 역시 자신이 암에 걸린 경험을 통해 깨달은 긍정의 문제점을 다뤘다는 점에서 귀담아들을 가치가 있다. ‘암은 축복’이라는 식의 극도의 긍정적인 태도와 유방암 캠페인을 목격하면서 사회 속에 파고든 긍정 산업의 규모가 실로 엄청나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때부터 저자는 ‘시크릿’, ‘긍정의 힘’ 등 세계적인 자기계발서 속의 긍정 메시지와, 자기계발 출판, 강연 산업과 기업 간의 커넥션, 초대형 교회의 설교, 그리고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같은 세계적인 금융 위기까지 자본주의와 철저한 공생 관계를 맺으면서 사회 곳곳에서 사람들을 오도하고 있는 긍정 이데올로기의 문제점을 전방위적으로 파헤쳤다.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밝은 면만 보고, 자신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라’는 긍정론이 내포하고 있는 문제점은 불편한 사회 현실들을 외면하고 실패의 책임을 각 개인의 긍정성 부족으로 돌린다는 점이다. 또한 긍정주의는 소비를 부추기고 기업의 성장에 유리한 문화를 조장하며, 긍정을 맹신하면서 위험에 대비하지 않게 함으로써 위기를 자초한다. 저자는 그 예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금융위기와 9.11 테러를 들고 있다. 사전에 충분히 위기의 징후들이 감지됐음에도 근거없는 낙관적 태도로 일관함으로써 위기를 막지 못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또한 긍정주의가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와 공생할 뿐 아니라 번영을 찬양하는 기독교 복음주의 초대형 교회들과 결탁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번영신학에 기초한 신복음주의가 전하는 설교는 ‘하느님은 사람들이 번창하길 바라신다’는 것이고 이를 이루는 방법은 기도와 같은 고전적 수단이 아니라 긍정적 사고라는 것이다. 이 책은 이렇듯 긍정의 힘을 강변하는 긍정주의가 기업과 교회, 심리학에 깊이 뿌리내리고 자본주의의 거대산업을 형성하며 사회에 끼친 악영향을 신랄하게 고발하고 있다.

긍정 그 자체는 좋은 것이다. 문제는 긍정의 탈을 쓴 채 현실에 대해 우리 눈을 가리고 사람들을 낭떠러지로 인도하는 데 있다. 현실을 외면하는 것은 쉽고 편한 일이다. 비관적인 상황에서도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근거없는 무한긍정이 아니라 두 발을 견고히 땅에 디딘 채 두 눈을 뜨고 문제를 직시하는 것이다. 비관적 전망이 압도하는 2023년은 뜨거운 가슴보다 차가운 머리가 필요한 때라고 믿는다. 이 책의 일독을 강력히 추천한다.

 

 

 

김선진
경성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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