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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가 미덕인 한국...질문은 종종 금기가 된다
‘예’가 미덕인 한국...질문은 종종 금기가 된다
  • 김선진
  • 승인 2021.12.08 09: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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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의 재미_『질문 빈곤 사회』 | 강남순 지음 | 행성B | 356쪽

오바마 대통령에 질문 하나 하지 못한 기자들
위계적인 소통으로 대한항공 801편 추락했다

질문하지 않는 사회는 퇴보한다. ‘왜’라는 물음표를 허용할 때 진보와 변화가 시작된다. 코로나19로 대한민국은 방역뿐 아니라 산업, 문화 등 여러 방면에서 눈떠보니 선진국이 됐는데 불평등과 사회 갈등은 갈수록 심화돼 후진성을 벗지 못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질문 빈곤 사회』의 저자 강남순 미국 텍사스 크리스천 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는 그 근본 원인을 ‘질문’에서 찾는다. 질문하기를 어려워하는 문화가 우리의 사회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질문하기를 두려워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한 장면이 있다. 지난 2010년 9월 ‘G20서울정상회의’ 폐막식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폐막 연설 직후 특별히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권을 줬지만 한국 기자들은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잠깐 동안 기다려주기까지 했지만 침묵 끝에 질문권은 결국 중국 기자에게 돌아가고 말았다. 질문을 업으로 하는 기자들조차 질문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질문하지 않는 모습은 실로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질문하지 않는 우리 문화가 대참사로 이어진 사건도 있다. 1997년 대한항공 801편이 미국령 괌 국제공항에서 착륙 도중 추락해 254명 중 228명이 사망한 사고가 있었다. 사고 원인을 조사하던 조사단은 블랙박스에 녹음된 조종실 대화를 듣고 기장과 부기장, 항법사간의 위계적인 소통이 근본 원인이라고 결론지었다. 당시 항법사는 항로 앞에 장애물이 보인다는 것을 잘 파악했지만 기장에게 보고하는 과정에서 돌려말하며 우물쭈물하다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 이후 조사단은 조종실 내 소통도 관제탑과의 교신처럼 영어로 하라는 해결책을 제시했다. 질문하지 못하는 위계적 소통에 한국인 특유의 완곡 어법이 문제라는 것이다.

 

학술계 연구자들도 좋은 질문을 잘 못한다

질문하기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우리의 약점은 학술계에서도 나타난다. 사회과학 논문들을 읽다 보면 이 나라 지식인으로서 당혹스럽고 부끄러운 논문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모 대통령 후보 부인의 논문 표절같은 경우는 말할 필요도 없고 학술지 평가를 거친 ‘정상적인’ 논문에서도 그런 논문은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소위 ‘과학’이라는 거창한 이름까지 내세워 그들만의 전문용어(jargon)와 복잡한 통계까지 동원해 분석했는데 결국 하나마나한 허무한 결론으로 끝나버리는 논문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애초에 너무도 자명해서 연구문제로 삼을 필요가 없는 질문으로 시작한 게 문제다. 이는 연구를 업으로 하는 학술계 종사자들조차 제대로 질문하는 법, 정확히 얘기하면 ‘좋은 질문’을 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저자는 질문하지 않은 우리 문화의 원인을 장유유서의 위계 문화에서 찾는다. 가족, 친척, 직장, 군대 등 도처에서 작동되는 장유유서의 변형된 관계관과 가치관은 가정, 학교, 직장은 물론 사람 간의 위계주의적 관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가 미덕으로 간주되는 한국에서 질문은 종종 금기가 된다. 학생들은 선생에게, 아이들은 부모에게, 종교 공동체의 구성원은 그 지도자에게, 직원은 상사에게, 국민은 정치가들에게 편하고 자유롭게 질문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비판적 질문을 던진다면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 버릇없는 아이, 질서를 무시하는 직원, 신앙이 부족한 교인, 공동체를 어지럽히는 국민으로 낙인찍힌다. 우리는 ‘좋은’ 질문하는 법을 알기는 커녕 누군가의 질문을 도발로 받아들이곤 한다.

책은 가짜뉴스와 선동정치, 그들과 영합한 종교를 들여다보며 ‘사유’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제1부 ‘권력과 언론에 물음 묻기’를 비롯해 다양한 노동자, 서열 문화, 가해자성과 피해자성을 통해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인권 감수성과 휴머니티를 돌아보게 하는 2부 ‘타자의 얼굴에 물음 묻기’, 갑질과 위계주의 같이 발전을 가로막는 관행을 들여다보는 3부 ‘관행과 대안에 물음 묻기’ 등 모두 5부로 구성돼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우리 사회의 후진적인 네 개의 영역, 정치, 언론, 종교, 교육 중 어쩌면 핵심 원인이라고 해도 좋을 ‘교육의 질문 부재’를 별도의 주제로 다루지 않은 점이다. 대부분의 인문 도서들이 그렇듯이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데는 유익하지만 그것을 해결할 구체적 대안들을 제시하지 못한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럼에도 지식인 사회가 읽어볼 가치는 충분하다. 진실은 질문하기 전에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법이니까.

 

 

김선진
경성대 교수·디지털미디어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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