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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사람들, 어떻게 잔혹한 독재자됐나
평범한 사람들, 어떻게 잔혹한 독재자됐나
  • 김선진
  • 승인 2022.12.23 0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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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의 재미_『악의 패턴』 케네스 C. 데이비스 지음 | 임지연 옮김 | 청송재 | 256쪽

국민 우월의식을 자극하며 국가·민족주의에 호소
민주주의는 약하고 깨지기 쉬워 붕괴 위험 있어

1990년 독일 통일과 1991년 소련의 해체로 인류는 이념 대결의 냉전 시대를 끝내고 민주주의가 지배하는 평화시대의 장밋빛 미래를 기대하였다. 2010년에 이르러서는 권위주의 체제의 마지막 철옹성 같은 중동과 북아프리카도 ‘아랍의 봄’으로 명명된 민주화의 거센 물결에 휩싸였다.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과 러시아조차 자본주의를 적극 채택하며 세계화의 흐름에 적극 동참하는 듯했다. 2020년 코로나라는 세계를 휩쓴 초유의 팬데믹 사태를 정점으로 인류는 다시 한번 역사상 극적인 변화를 목격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전체주의적, 권위주의적 정치 체재의 확산이다.

 

종파 갈등을 계속하던 아프가니스탄은 탈레반이 장악하면서 인권을 억압하는 근본주의 이슬람 신조를 강요하고 있고, 이란은 최근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권력이 여성을 살해하는 폭력이 자행되고 있다. 러시아 푸틴은 2000년부터 지금까지 20년 넘게 권력을 잡으며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켰고, 중국 시진핑은 최근 3연임에 성공하고 1인 독재 장기집권 기반을 마련하며 대만을 위협하고 있다. 강대국들의 보호주의, 일방주의, 패권주의적 성향이 노골화되는 ‘비(非)자유주의 국제질서’의 흐름이 거세질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인류 정치 역사가 민주주의의 승리로 기록될 것 같았던 희망은 한순간에 정반대 방향으로 역행하고 있다.

노벨 경제학 수상자인 뉴욕대 폴 크루그먼 교수는 최근 기고에서 미국이 당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민주주의의 위협이며 미국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 약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음을 우려한 바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59개 독재국가가 존재하고 있고 영국 옥스퍼드대 ‘아워월드인데이터’(OurWorldinData)의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민주 정치체제를 누리는 인구의 비중은 2017년 50%로 정점을 찍고 점점 하락해 2020년 32%로 감소하고 있다. 이와 같은 역사의 퇴행 앞에 과연 우리는 어떻게 민주주의의 후퇴를 해결할 수 있을까.

『악의 패턴』을 쓴 저자 케네스 C. 데이비스는 가까운 과거 20세기에 인류가 경험한 독재로부터 그 교훈을 제시하려고 한다. 유럽을 전쟁과 홀로코스트라는 파멸의 길로 이끈 독일 나치 지도자 히틀러, 이탈리아 파시즘, 광신적 국수주의의 원조 무솔리니, 사회주의 강대국 건설을 명분으로 피의 숙청과 철권을 휘두른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 대중의 엄청난 희생 속에서 중국의 공산정권을 세운 마오쩌둥, 그리고 아랍권의 맹주를 꿈꾸며 무자비한 독재 권력을 휘두른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이 다섯 독재자들의 등장 배경과 행태를 통해 살펴봄으로써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봤다. 독재자들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면 출현을 최대한 막을 수 있으리란 희망과 함께.

저자는 독재자들의 삶을 면밀히 관찰한 결과 그들 모두 처음부터 잔혹한 독재자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어린 시절 히틀러는 모험소설과 카우보이 놀이를 좋아하고 위대한 예술가가 되겠다는 꿈을 품은 소년이었고, 스탈린은 사제가 되기 위해 신학교를 다니다 중퇴한 뒤 기상대에서 기상도 만드는 일을 하기도 했던 청년이었으며, 마오쩌둥은 열네 살에 중매결혼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경찰학교와 비누제조기술 학교에 등록했다가 도서관 보조로 일할 정도로 이들은 위험한 인물이 될만한 조짐이 조금도 없었다. 이로써 독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환경과 토양 위에서 자라고 만들어진다는 점을 저자는 강조한다.

 

선전, 선동을 통한 정치적 정당성 확보

이들의 등장 배경과 통치 양상은 시대적 배경, 각국의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상이하지만 다섯 독재자의 리더십이 독재 권력을 쟁취하고 유지하는 방식을 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첫째, 선전, 선동을 통한 정치적 정당성 확보, 둘째, 영화, 스포츠, 대중가요 등의 오락적 요소들의 적극 활용 및 언론 통제를 통한 불만 여론 잠재우기, 셋째, 정치적 위기 상황에서의 책임 전가, 넷째, 사건 조작을 통한 희생양 만들기, 다섯째, 정보기관과 비밀경찰을 이용한 공포 통치와 자신의 친위세력을 통한 지지기반 확대, 여섯째, 개인숭배와 우상화로 요약할 수 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국민의 우월의식을 자극하면서 국가주의나 민족주의에 호소하는 포퓰리즘을 구사하고, 내부 결속을 위한 공동의 적을 만들어 전쟁을 정당화하고 의도적으로 혐오와 분열을 조장한다는 점이다. 시진핑이 과거 중화민족의 영광을 되살려 중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꾸리겠다는 ‘중국몽’을 주창하고, 푸틴도 소련의 붕괴로 잃어버린 러시아의 초강대국 위상을 되찾겠다는 ‘위대한 러시아’를 외치며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그 예다.

경제가 발전하면 국민의 정치의식이 높아지고 민주주의가 견고해질 것이라는 생각은 순진한 믿음에 불과하다. 민주주의는 약하고 깨지기 쉬워서(fragile) 부지불식간에 잠식되거나 붕괴 위험에 처한다. 세상에 좋은 독재는 없다. 앞서 열거한 독재의 징후와 악의 패턴이 나타나지 않도록 시민들이 연대해 권력을 감시하고 통제할 안전장치를 마련할 의무가 우리 모두에게 있다. 권력은 부패하고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김선진
경성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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