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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우리는 학생의 마음을 알고 있을까?
정말 우리는 학생의 마음을 알고 있을까?
  • 교수신문
  • 승인 2021.03.31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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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오의 거리의 대학 ⑧

“나는 자부했다. 학생들의 마음을 제법 안다고 말이다. 착각이었다. 
눈에 보이는 학생의 모습이 그 학생의 전부가 아니다. 
학생이 누구인지 더 배워야 한다.”


코로나19를 겪으며 배운 게 하나 있다. 나는 그들의 마음을 더 알아야 한다는 배움이다. 여기서 말하는 ‘그들의 마음’에서 그들은 학생을 말한다. 학생이라고 말하면 너무 범주가 크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으로 범주를 좁혀야겠다. 


학생들은 도대체 누구일까? 근자의 나의 화두이다. 학생들을 강의실에서 만난 햇수가 꽤 된다. 연구실에서도 그렇다. 강의실에서는 수업이라는 이름으로, 연구실에서는 상담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을 오래 만나왔다. 나는 자부했다. 학생들의 마음을 제법 안다는 자부 말이다. 착각이었다. 착각도 단단한 착각이었다. 나는 그들이 누구인지 더 알아야 했다.


2020년 대구의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는 인문학적 사건이다. 그냥 사건이 아니다. 대구의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가 신천지 교파와 특별히 연관되어서가 아니다. 뉴스로 속속 밝혀지는 진실은 이러했다. 지역대학과 대학생이 신천지 교파의 인기 선교지이자 선교 대상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대구 신천지 교인 중에 지역대학 학생들이 제법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어떻게 해서 이 교파에 매료되었을까? 바꿔 말해 지역대학은 왜 그들을 매료시킬 수 없었을까? 이렇게 나의 고민은 좁혀지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도대체 누구일까

교수라고 해서 학생의 마음을 어찌 다 알 수 있을까? 교수는 심리상담사가 아니라고 우기면 될 법하다. 교수의 역할은 배움을 매개로 학생의 지적, 인격적 성장을 이끄는 데 있다. 이렇게 말해도 될 법하다. 핑계는 더 있다. 수행해야 할 연구 과제를 핑계로 삼아도 괜찮아 보인다. 학내 정치에 유달리 관심이 큰 교수들은 핑계가 더 많다. 


이 여러 이유와 핑계를 뒤로 물리고 나는 이렇게 묻고 싶다. 학생들은 누구이며 나는 그들을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이렇게 말이다. 말을 좀 돌려 보기로 하자. 청년들이 결혼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 않는 게 아니라 포기했다고 한다. 대한민국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국가소멸을 걱정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자, 그러면 학생들에게 결혼 준비 특강을 가르쳐야 하는 걸까? 그럴 수 없다. 청년들이 결혼하지 않거나 포기한 이유는 명확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경쟁 구도가 한몫 한다. 그 구도에 더는 자신을 경쟁 승리자의 희생양으로 바치고 싶지 않은 청년들이 늘고 있다. 청년들의 각박한 마음을 아는 어른들이 많지 않다.


대학만 하더라도 그렇다. 입시 경쟁의 끝판왕이 대학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해마다 정문 입구에 서울대 합격을 자랑하는 현수막을 내거는 고등학교가 우리나라에 한 둘이 아니다. 현수막을 그렇게 내걸면 나머지 학생들은 의문의 1패가 아니라 영원한 패배자처럼 서열화된다. 성적, 학생 노력의 성과이긴 하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부모의 재력과 정보력 없는 노력은 한계가 있다는 게 진실에 가깝다. 이처럼 대학 입시 경쟁은 절대 공정한 게임이 아니다. 지역대학 역시 수도권 대학들과 공정한 게임을 하기가 구조적으로 어렵다. 


그렇다면 지역대학 학생들의 삶은 후순위의 삶으로 확정된 건가? 그렇지 않다. 올해로 학생들과 함께 5년을 채워가는 독서모임이 있다. 독서모임의 이름이 ‘봄다봄’이다. 봄다봄, 보고 또다시 봄을 줄인 표현이다. 책을 보고 또다시 본다는 말이다. 이 독서모임이 이렇게 오래 갈 줄 몰랐다.  

2019년 10월 13일 일요일 아침 안동 치암고택에서 봄다봄 독서모임 참여 학생들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이다. 사진 속의 학생들 모두 자기 앞의 생을 알차게 챙기는 주인공들이었다.
2019년 10월 13일 일요일 아침 안동 치암고택에서 봄다봄 독서모임 참여 학생들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이다. 사진 속의 학생들 모두 자기 앞의 생을 알차게 챙기는 주인공들이었다.

요즘 학생들 책을 읽지 않는다고?

이렇게 말하는 교수가 있었다. 요즘 학생들 책을 읽지 않는다고 말하는 교수가. 점점 수준이 떨어진다. 큰일이다 뭐 이런 불만이었다. 이상하게 그런 말이 듣기 싫었다. 그렇지만 딱히 반박하기도 어려웠다. 그런데 봄다봄 독서모임이 5년으로 접어들고 있다. 시작은 이러했다. 현대문학 작품을 강독하는 수업이었다. 유독 몇 명의 4학년 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작품을 정독하고 수업에 참여하는 모습이 참 대견했다. 이 학생들에게 제안했다. 우리 성적과 평가에 신경 쓰지 않는 독서모임을 만들어보자고. 부산의 인디고서원 이야기도 했었다 싶다.

당시에는 모일 장소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사는 동네의 투섬 플레이스에서 토요일 오전에 모였다. 한 달에 한 번 모이기로 했다. 두꺼운 책을 읽기로 했다. 놀라운 경험이었다. 책을 사랑하고 즐거이 읽는 학생들이 이렇게 있었다. 이들은 책으로 교감하고 성장했다. 이들의 삶은 후순위로 결정된 게 아니었다. 이들 한 명 한 명이 성장하는 텍스트였다. 

2019년 10월 봄다봄 독서모임은 안동에서 1박 2일로 진행되었다. 이때 읽고 토론한 책은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이다. 학생들이 소설 '자기 앞의 생'의 주인공처럼 자기 생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했다. 사진= 양진오의 페이스북에서 캡처
2019년 10월 봄다봄 독서모임은 안동에서 1박 2일로 진행되었다. 이때 읽고 토론한 책은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이다. 학생들이 소설 '자기 앞의 생'의 주인공처럼 자기 생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했다. 사진= 양진오의 페이스북에서 캡처

봄다봄의 투섬 플레이스 시대는 북성로대학의 개막과 함께 막을 내렸다. 북성로대학을 찾은 학생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밝았다. 학생들은 봄다봄을 살뜰히 챙겼다. 읽을 책과 토론 방식, 답사지 등등을 자신들이 결정했다. 해마다 10월 가을에는 1박 2일 답사를 다녀왔다. 12월에는 독서 송년회를 했다. 


봄다봄의 위기는 2020년에 찾아왔다. 대면 접촉 금지 시대, 봄다봄의 진로가 불투명했다. 학생들이 방법을 찾아냈다. 대면 독서 모임을 채팅으로 대체하는 방법이다. 토론은 더 뜨거웠다. 학생들의 언어가 PC 화면 밖으로 나오는 줄 알았다. 나는 오로지 읽는 즐거움으로 자기를 배려하고 싶은 학생들의 마음을 모르고 살아왔다. 눈에 보이는 학생의 모습이 그 학생의 전부가 아니다. 교수, 학생이 누구인지 더 배워야 한다. 

양진오 대구대 교수·한국어문학과
한국 현대문학과 스토리텔링을 가르치고 있다. 대구 원도심에 인문학 기반 커뮤니티 공간 ‘북성로 대학’을 만들어 스토리텔링 창작, 인문학 강연 및 답사, 청년 창업 컨설팅 등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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