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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대구'는 연구실과 지식 바깥에 있더라
'진짜 대구'는 연구실과 지식 바깥에 있더라
  • 양진오
  • 승인 2021.03.01 09: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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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오의 거리의 대학 ⑥ 


“활동가들이 만들어낸 대구의 변화를 모르는 지역대학 인문학 연구자들이 허다하다.

연구실과 강의실에 더는 안주하지 않을 이유가 이렇다.”


지역과 연계된 배움이 없는 연구실은 교수자 일인의 닫힌 공간에 불과하다. 강의실도 그렇다. 강의실에서의 배움이 지역과 연계되지 않는다면 이는 학습자의 성장과 무관한 객담에 머물 수 있다. 지역대학에서는 더 그렇다. 지역대학의 배움 특히 인문학의 배움은 지역과 연계되어 섬세하게 구성되어야 의미가 있다.


여기서 전공 개념을 환기해보고 싶다. 전공은 절대적인 진리를 표상하는 어떤 개념이 아니다. 그런 진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만고불변의 진리는 없다. 전공도 그렇다. 전공도 변한다. 새로이 만들어질 수도 있고 사라질 수도 있다. 교수자가 자기 전공을 불멸의 진리로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어떤 시대에 어떠한 앎이 대학이란 근대적 교육제도에 포섭되어 전공으로 불리는 거다. 전공을 불면의 진리로 간주해 연구실에 칩거하거나 강의실을 출입하는 교수들이 있을 수 있겠다. 나도 그런 교수였다. 

지역에 대한 뿌리 깊은 오해

그런데 이게 뿌리 깊은 오해의 시작이다. 어떤 오해인가? 지역에 대한 오해를 말한다. 오해가 편견을 키우고 편견이 오해를 키우는 법인데, 지역이 그런 처지에 놓여 있다. 내가 언제부터 대구를 알게 되었을까? 고등학교 인문 지리 교과서에서 배운 게 최초인가? 아니다. 중학교 2학년으로 기억된다. 영어 선생님이 자신을 경북대학교 출신으로 소개했다. 그 대학이 대구에 있다는 말을 들었을 거다. 그러나 중학교 2학년 소년에게 대구는 막연했다. 


인문 지리 교과서는 대구를 이렇게 안내했다. 대구, 교통의 요지이며 능금의 고장이라고. 분지 지형의 도시로도 배웠겠다 싶다. 참 이상했다. 인문 지리 교과서에 소개된 대개의 지역이 교통의 요지로 소개된 까닭이다. 그만큼 대구는 나에게 특징적인 지역으로 이해되지 않았다.


어른이 되어도 대구를 오해하며 살았다. 여기서 대구의 특유한 정치적 위상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오랜 시간 대구는 언론매체에서 인근 경북을 포함하여 우리나라 보수 정치의 아성으로 표현되었다. 오죽하면 대구 경북을 TK로 표현했을까. 수도권과 호남을 이니셜로 표기하지는 않는다. 대구 경북과 부산 경남만이 이니셜로 표현되어왔다. 좋게 말하면 자부심의 표현이며 비판적으로 말하면 패권적 표현이다.


대구 시민은 신한국당, 한나라당, 미래통합당, 국민의힘으로 이어지는 정치적 보수 진영을 일관되게 지지해 왔다. 다른 정치 세력이 대구 경북에서 지지받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2020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당인 민주당이 압승했으나 대구에서는 그렇지 않다. 대구의 여당은 국민의힘이다. 

보수와 진보로 회고되는 대구 

본래 대구가 보수적 지역이 아니었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시다. 대구는 부정한 방법으로 장기집권을 획책한 이승만 정권에 저항한 2·28 학생 의거의 진원지라는 거다. 4·19 혁명의 도화선이 대구 2·28 학생 의거라고 말씀하신다. 이렇게도 말씀하신다. 대구는 1946년 미군정의 강압적인 식량 정책에 반기를 든 10월 항쟁이 일어난 지역이라고. 해방 이후 최초의 민중 항쟁이 대구에서 봉기했다고 말씀하시는 지역 진보 원로들이 계시다. 


대구는 이렇게 보수와 진보의 두 이미지로 정의되거나 회고되고 있다. 나도 그랬겠다 싶다. 나 역시 편의에 따라 대구의 두 이미지를 논문과 강의 재료로 활용했다. 그런데 이게 지독한 오해인 게다. 대구도 그렇고 지역이 이렇게 일면적으로 정의되거나 회고될 수 없다. 보수적 지역으로 정의되는 현재적 대구와 진보적 지역으로 회고되는 과거적 대구가 이야기하지 않는 대구가 있기에 그렇다. 지역의 위상과 성격이 고정된 게 아니다. 북성로대학 프로젝트를 경험하면서 대구의 또 다른 진실을 알 수 있었다.


대구 원도심에는 어려운 처지에서도 자기 비전을 가지고 사회적기업이나 마을협동조합 운동을 펼치는 이들이 있었다. 이 활동가들은 보수냐 진보냐가 아니라 사회적기업과 마을협동조합의 비전으로 대구를 조용히 변화시키고 있었다. 어디 대구만 그러할까. 부산, 광주, 제주에도 보수와 진보의 경계에 갇히지 않고 지역의 일상을 바꿔나가는 활동가들이 적지 않다. 그 성과도 탄탄하다. 선거로 표현되는 대구가 대구의 전부가 아니다. 대구만이 아니라 지역의 현재와 미래가 100% 정치로 환원되지는 않는 거다. 

대구를 조용히 변화시키는 사람들

대구 원도심 수제화 골목에 ‘하루’라는 이름의 일본어, 일본문화 기반 사회적기업이 있다. 하루가 입점한 건물은 식민지 시대 근대건축물이다. 내부에는 방공호 흔적이 그대로 보인다. 이 근대건축물을 리모델링하여 입점한 하루는 인문학 강연, 간담회 등을 기획하고 수행하며 지역 인문학의 수준을 높여 왔다. 더불어 하루는 한일 두 나라의 문화적 교류, 인적 교류에서도 알찬 성과를 창출했다. 

2020년 6월 북성로대학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대구 하루’에서 만난 지역 전문가와 청년들이 원도심 창업을 주제로 학습하는 장면이다.
2020년 6월 북성로대학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대구 하루’에서 만난 지역 전문가와 청년들이 원도심 창업을 주제로 학습하는 장면이다. 사진=양진오
2020년 5월 ‘대구 하루’에서 인턴으로 활동하던 일본인 학생 야마네 아이와 소중한 추억을 사진으로 남겼다. 한일 두 나라의 문화적, 인적 교류가 대구 하루의 비전이기도 하다.
2020년 5월 ‘대구 하루’에서 인턴으로 활동하던 일본인 학생 야마네 아이와 소중한 추억을 사진으로 남겼다. 한일 두 나라의 문화적, 인적 교류가 대구 하루의 비전이기도 하다. 사진=양진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공습을 받은 대구에서 하루가 예전처럼 활기차지 않다. 대구 하루만이 아니다. 수제화 골목과 북성로 인근에 입점한 사회적기업과 마을협동조합 활동가들은 감내하기 어려운 인내를 요구받고 있다. 그런데 어디 대구만의 사정이 이럴까. 지역 원도심 활동가들의 마음고생이 이만저만 큰 게 아니다. 이 활동가들이 만들어낸 대구의 변화를 모르는 지역대학 인문학 연구자들이 허다하다. 지역대학 인문학 연구자들이 연구실과 강의실에 더는 안주하지 않을 이유가 이렇다.

대구 하루는 지역과 대구 원도심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강연을 자주 개최하고 있다. 대구의 대표적인 원도심인 향촌동을 문학과 음악으로 조명하는 강연이 2020년 6월 대구 하루에서 개최되었다. 사진은 대구 하루 페이스북에서 인용.
대구 하루는 지역과 대구 원도심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강연을 자주 개최하고 있다. 대구의 대표적인 원도심인 향촌동을 문학과 음악으로 조명하는 강연이 2020년 6월 대구 하루에서 개최되었다. 사진은 대구 하루 페이스북에서 인용.

이제 이렇게 질문해 보기로 하자. 나는 이제 대구를 이해하는가? 이해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질문이 지혜로워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는 말할 수 있겠다. 북성로대학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대구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이다. 이해는 참여적이며 과정적인 개념이다. 지역의 변화를 위해 활동가들과 협업하거나 토론하는 그 과정이 대구를 새롭게 이해하는 방법이 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나는 비로소 대구를 이해하는 문턱에 서 있게 된 거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양진오 대구대 교수·한국어문학과
한국 현대문학과 스토리텔링을 가르치고 있다. 대구 원도심에 인문학 기반 커뮤니티 공간 ‘북성로 대학’을 만들어 스토리텔링 창작, 인문학 강연 및 답사, 청년 창업 컨설팅 등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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