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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시대 ‘노동의 새벽’, 국가 정책에 달렸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노동의 새벽’, 국가 정책에 달렸다
  • 최승우
  • 승인 2023.11.24 1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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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㉑ 양재진 연세대 교수(행정학과)

네이버 ‘열린연단’이 시즌10을 맞이해 「오늘의 세계」를 주제로 총 54회 강연을 시작했다. ‘오늘의 세계’는 국제질서,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과학기술, 철학에 대해 인문·사회·자연과학의 상호 연결성을 통해 학문적 담론을 형성할 예정이다. 지난달 28일 양재진 연세대 교수(행정학과)가 「노동과 복지의 현재와 미래」를 강연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발췌해 소개한다. 제22강은 박상훈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의 「개인과 공동체」가 예정돼 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기술 혁신으로 인한 일자리 변화는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직무 변화 또한 거세다. 
이 시점에서 국가가 기울여야 할 노력은 기술 혁신에 따른 일자리와 직무 변화에 적응할 수 있게 국민들의 직업 능력을 배양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적극적 노동 시장 정책의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이후의 미래에도 그러할 것이다.

인간이 생존하고 생활하기 위해서는 의식주를 비롯한 물자와 서비스를 필요로 한다. 이런 물자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인간의 활동을 노동이라 한다. 노동은 인류의 탄생과 함께 역사를 함께하고 있다. 노동이 인간의 활동을 의미한다면, 복지는 그 결과로서의 상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복지를 개인이 정신적·육체적으로 건강하고 행복한 상태라고 정의 내릴 때 그러하다. 이렇게 본다면 복지 또한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하지만, 복지를 어떤 상태로 정의하지 않고, 그러한 상태를 만들기 위한 정부(혹은 국가)의 활동으로 본다면 그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다. 

개인이 노동하고, 국가가 복지를 제공하는 역사는 국가라는 정치 공동체의 탄생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복지라고 할 때 머릿속에 떠올리는 각종 복지 급여는 역사가 그리 길지 못하다. 자본주의의 탄생 이후, 인간의 노동력을 팔고 사는 노동 시장이 성립한 이후의 일이다. 

초기 자본주의 산업 사회에서는 토지와 유리된 채 도시로 모인 사람들이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서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 농민이 아니라 임금 근로자가 된 것이다. 먹고살기 위해서는 어디든지 가서 무슨 일이든 하고 임금을 받아야 한다.

마르크스가 노동자들을 형식적으로는 자유인이나 임금 노예에 불과하다고 불렀던 이유이다. 그런데 도시 근로자들은 전근대 농업 사회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한 위험에 처했다. 아프거나, 나이가 들거나 혹은 산업재해를 당해서 노동 능력을 상실하면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공황이 닥치고 실업에 빠져도 마찬가지였다. 전근대적인 농촌 사회에서는 실업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정년이나 은퇴라는 개념도 없었다. 장애인이 된다고 해도 다른 가족들이 그리고 지역 공동체에서 먹을 게 있는 한 굶어 죽게 하지는 않았다. 아파서 며칠 농사를 못 지었다고, 수확 후 농사 일 못한 만큼 제하고 곡식을 나눠 갖
는 일도 없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산업화·도시화가 진전되면 진전될수록, 삶이 위태로워졌다. 생산력은 분명 크게 올라갔는데, 후대에 사회적 위험이라고 부르는 산업재해·실업·은퇴·질병 등에 처하면 생존의 위기에 처했다.

양재진 연세대 교수(행정학과)는 “현대적 의미의 복지는 자본주의 노동 시장의 성립과 함께 태어났고, 노동 시장의 변화와 함께 성장했다. 미래 노동 시장은 어떻게 변하고, 이에 복지는 어떻게 조응할까?”라며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나타나고 있는 노동 시장 변화의 양상을 살펴보면, 미래를 일부 가늠할 수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사진=네이버문화재단
양재진 연세대 교수(행정학과)는 “현대적 의미의 복지는 자본주의 노동 시장의 성립과 함께 태어났고, 노동 시장의 변화와 함께 성장했다. 미래 노동 시장은 어떻게 변하고, 이에 복지는 어떻게 조응할까?”라며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나타나고 있는 노동 시장 변화의 양상을 살펴보면, 미래를 일부 가늠할 수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사진=네이버문화재단

마르크스가 태어나고 젊은 시절 활발히 활동한 독일에서 노동 운동과 공산주의 운동이 가장 거셌다. 철강 산업 등 중화학 공업이 빠르게 성장한 결과 대공장 노동자들이 급격히 팽창했다. 이들을 바탕으로 1863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노동 계급의 정당인 독일 사회민주당(SPD, Sozialdemokratische Partei Deutschlands)이 창당됐다.

1877년 397석의 제국 의회 선거에서 50만 표를 얻어 12석을 차지하며 의회에 진출했다. 산업화된 작센 지방에서는 유효 득표의 38%를 얻어 제1당이 되었다. 베를린과 함부르크 같은 개신교 대도시에서는 각각 39.2%와 40%를 얻었다.

비스마르크 총리는 다급했다. 그는 노동자들을 국가의 품 안으로 포섭하고자 했다. 사회 보험료의 3분의 1도 국가가 지불하도록 설계했다. 연 소득 750마르크 미만의 노동자들은 아예 기여금이 면제되도록 하기도 했다. 이제 국가가 국민의 삶을 보호해 줄 테니, 체제를 바꾼다고 혁명이다 뭐다 그러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돌아오는 것은 탄압뿐일 것이니 말이다.

산업화 사회의 표준은 남성 일인 생계 부양자 모델(Male Breadwinner Model), 즉 남성 외벌이 모델이었다. 남성은 밖에 나가 돈을 벌어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여성은 집안에서 가사와 보살핌을 담당했다. 사회 보장 또한 남성 가장에 대한 소득 보장이 중심이 됐다. 실업 급여와 연금을 남성 가장의 실업 전 소득에 비례해 두둑이 지급해야 했다. 그래야 아내를 비롯한 부양가족도 함께 살아갈 수 있다. 남편이 사망하면 유족 연금이 나와서 아내가 생계를 유지했다. 과거 산업화 시대의 표준적인 삶, 표준적인 사회 보장의 모습이다.

그런데 여성도 남성 못지않게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후기 산업 사회로 접어들면서, 지식 기반 경제가 도래했다. 과거처럼 제조업 공장에서 남성의 완력이 필요한 시대는 지나갔다. 컴퓨터로 사무 보거나 작업하는 시대가 됐다. 지식 노동에는 성별에 따른 직업 능력에 차이가 발생하지 않는다. 게다가 서비스 산업의 발달로 여성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커졌다. 여성 고용이 급증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전형적 특징 중 하나는 상품화다. 노동도 예외가 아니었다. 누구나 자유이지만, 취업을 해서 정해진 시간만큼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야 먹고 살 수 있다. 그런데 실업 수당이나 연금 그리고 공공 부조 같은 복지 급여는 탈상품화 효과를 낳는다. 자신의 노동력을 팔지 않아도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복지 국가의 목표가 탈상품화, 한 걸음 더 나아가 탈노동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복지 국가는 인간다운 노동을 지향할지언정, 탈노동을 지향하지는 않는다. 탈노동이 되어서는 이 사회가 유지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생산은 이어져야 한다. 복지 국가는 개인이 어쩔 수 없는 사회적 위험에 빠졌을 때, 충실하게 소득 보장을 해주는 것이 목표일 뿐이다. 

그리고 되도록 빨리 노동 시장에 복귀할 수 있게 도와주고자 한다. 노동 시장 내에서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맞게 (상향)이동할 수 있게 도와주려 한다. 탈상품화 못지않게 재상품화가 복지 국가의 목표인 것이다.

현대 복지 국가는 위험에 빠진 자에 대한 소득 보장을 넘어, 근로를 유인하는 정책을 확대하고 있다. 근로장려금(EITC)이나 적극적 노동 시장 정책뿐만이 아니다. 여성의 경제 활동을 지원하는 공보육 등 사회 서비스도 그러하다. 복지 국가가 탈상품화만을 목표로 한다면, 그 사회의 생산력은 서서히 감소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역설적으로 탈상품화에 쓸 재원도 마련하지 못하고 복지 국가는 쇠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선진 복지 국가일수록 근로와 생산 활동을 장려하고, 완전 고용을 추구한다. 

현대적 의미의 복지는 자본주의 노동 시장의 성립과 함께 태어났고, 노동 시장의 변화와 함께 성장했다. 미래 노동 시장은 어떻게 변하고, 이에 복지는 어떻게 조응할까?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나타나고 있는 노동 시장 변화의 양상을 살펴보면, 미래를 일부 가늠할 수가 있다.

4차 산업혁명은 경제의 디지털화와 플랫폼화로 나타나고 있다. 상품과 서비스 생산 방식과 가치 사슬도 현저하게 변화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노동 시장도 변화하고 있다. 인공지능(AI)의 등장으로 인간은 이제 육체노동뿐만 아니라 단순 반복적 인지 노동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지고 있다. 시·공간의 구속으로부터도 해방돼 노동에 참여할 수 있게 됨은 물론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지 노동까지 자동화되는 경우, 일자리 대체가 생산성 증가에 따른 일자리 창출을 크게 넘어설 것으로 우려하곤 한다. 4차 산업혁명은 노동 과정을 바꾸고, 생산 방식과 고용 관계에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기술 변화로 생산 과정이 바뀌면 노동 과정도 함께 변하게 마련이다. 직업은 여러 직무로 이뤄져 있고, 기술 발전은 일자리에서 필요로 하는 직무 내용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기술 변화는 관련 직무를 대체하고, 신기술을 다룰 수 있는 직무 능력을 새롭게 요구하게 된다. 4차 산업혁명에 따른 노동 수요 변화와 더불어 생산 방식과 고용 관계 또한 변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라 기업들은 자체 생산보다는 외주에 의존하고, 핵심 인력을 제외하고는 비정규직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생산 과정의 유연성을 높인다.

주문형 거래가 늘어나면서 독립 계약자, 시간제 노동자, 그리고 파견 근로자 또한 증가하고 있다. 기술 혁신으로 인한 일자리가 줄고 사회 보험의 사각지대에 빠질 수밖에 없는 플랫폼 노동자들이 늘어난다며 4차 산업혁명기의 사회 보장은 기본 소득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일자리가 실제로 줄어드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사회적 위험에 빠져도 의지할 데가 없는 플랫폼 노동자 때문에 기본 소득을 다른 전체 국민에게도 무조건 매월 나눠줘야 한다는 주장은 합리적이지 않다. 사회 보험이 작동하기 어려운 플랫폼 노동자 등 비정형 노동자층에게는 기초연금이나 실업 부조처럼 일반 조세로 운영되는 소득 보장 제도를 부가하면 된다.

나아가 덴마크처럼 고용 기반이 아닌 소득 기반 고용 보험 제도의 도입도 하나의 방안이다. 기존 고용 보험은 임금 노동자들의 보험이다. 사용·종속 관계가 명확할 때 작동한다. 그러나 플랫폼 노동자 같은 종속적 자영자는 임금 노동자가 아니지만 소득은 있다.

노동자의 임금에 보험료를 부과해서 운영하던 것을, 임금 소득이든 사업 소득이든 소득에 보험료를 부과하고 실업 상태에 빠지면 (혹은 일감이 없게 되면) 실업 급여를 지급하면 된다. 소득 기반 고용보험은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소득 파악이 전제돼야 작동하는 시스템이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기술 혁신으로 인한 일자리 변화는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직무 변화 또한 거세다. 이 시점에서 국가가 기울여야 할 노력은 기술 혁신에 따른 일자리와 직무 변화에 적응할 수 있게 국민들의 직업 능력을 배양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적극적 노동 시장 정책의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이후의 미래에도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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