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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적 형식 빌린 최초의 미술비평문
문학적 형식 빌린 최초의 미술비평문
  • 이승건
  • 승인 2024.02.02 1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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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말하다_『원서발췌 살롱』 드니 디드로 지음 | 백찬욱 옮김 | 지식을 만드는 지식 | 2019 | 166쪽

수사학 기술 ‘에크프라시스’의 문자적 실천
풍속화 근대 시민정신의 한 단면을 비추다

계몽주의에 관한 탁월한 업적을 남긴 카시러(Ernst cassirer, 1847~1945)는 서양의 18세기를 ‘철학의 시대’ 또는 ‘비평의 시대’라고 주저 없이 말한다(『계몽주의 철학』, 1932). 그의 이러한 견해는 18세기의 위대한 사상의 원천이 되며 18세기를 관통하여 흐르는 근본적인 지적인 힘을 단지 다른 각도에서 묘사한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에 기인한다. 그렇다면 이 시기에 철학과 예술비평 두 영역을 넘나들며 활동한 전형적인 인물이 있을까? 18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사상가이자 문필가이며 백과전서파의 일원인 디드로(Denis Diderot, 1713~1784)는 단연 그런 인물 중 으뜸으로 꼽힐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당대 최고 지성의 산물이라고 평가받는 『백과전서』를 집필ㆍ출간했을 뿐만 아니라, 비평의 시대에 걸맞게 문학적 형식을 빌려 9차례의 미술비평문 『살롱』(Les Salons)을 남기며 18세기 중반에 예술비평이라는 장르를 개척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프랑스어로 살롱(salon)은 대저택의 응접실을 뜻한다. 그러나 문화사적으로는 17~18세기 프랑스에서 철학자, 문필가, 예술가 등이 모여 대화와 토론을 펼친 모임의 장(場), 즉 이 모임을 주재했던 부인들의 사교계 응접실을 뜻하기도 한다. 이 밖에도, 1737년 〈프랑스 왕립 회화ㆍ조각 아카데미〉를 구성하는 미술가들의 전람회가 루브르 궁전의 아폴론 살롱에서 열린 이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까지 2년마다 그리고 그 후로 해마다 열린 미술 전람회를 뜻한다. 특히 이때의 미술 전람회로서의 살롱은 당시 프랑스에서 대중에게 공개되는 유일한 전람회로서 1881년 〈프랑스 미술가 협회〉로 재편되기까지 관제 미술 전람회를 지칭했는데, 이런 이유로 해서 살롱이라는 말은 지금까지도 각종 미술 전람회를 가리키는 대명사로 사용되고 있다. 

 

엑크프라시스의 문자적 실천

디드로의 미술비평문 『살롱』은 1759년부터 1781년까지 러시아와 네덜란드 방문으로 인해 작품을 관람하지 못한 1773년 것을 제외하고 당대의 미술계를 이끌어가는 미술작품에 대한 평가(비평)를 묶은 것이다. 원래 이 비평문은 절친 그림(Friedrich Melchoir Grimm, 1723~1807)이 자신이 편집장으로 있는 『문학통신』(Correspondance littéraire)에 기고를 디드로에게 제안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 잡지는 유럽의 귀족이나 왕족들이 보는 문예지였던 바, 전람회를 방문할 수 없어 미술작품을 직접 보지 못하는 수준 높은 독자들을 위해 디드로가 그들의 눈이 되어주어야 했다. 묘사체의 글로써 그들에게 미술작품의 형식과 내용을 전달해야 했던 디드로는 작품의 전체적인 모습을 독자의 눈앞에 펼치기 위해, 다시 말해 마치 고대 그리스의 수사학자들이 그들의 문하생에게 요구했던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그들 눈앞에 생생하게 주제를 묘사하라’는 수사학상의 기술인 엑크프라시스(ekphrasis)를 일화, 여담, 희곡, 콩트, 편지 등 다양한 방식으로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베르니에르(Paul Vernière, 1916~1997)가 편집한 『디드로 미학 저작들』(OEuvres Esthétiques, Garnier, 1968)의 경우, 1부(연극과 문학)와 2부(미술)로 모두 10개(총 845쪽)의 글을 싣고 있는데, 『살롱』은 8번째(475~655쪽)에 놓여있다. 이 프랑스어 원전의 내용 중 일부가 ‘고전 명작으로 들어가는 가장 쉬운 길’이라는 슬로건 아래, 지식을 만드는 지식 원서발췌(원전의 5%)의 편집(백찬욱 옮김, 『원서발췌 살롱』, 지식을 만드는 지식, 2019)으로 얼마 전에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두말할 것 없이, 이 번역서는 ‘당대의 대표 화가들에 대한 비평 중 미학적인 논의가 담긴 부분들을 중심으로 발췌해서 옮긴 것’(편집자 일러두기)이라 한다.  

 

풍속화, 근대시민정신의 한 단면

디드로의 미술비평문 중에는 미술사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대목이 발견된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 르네상스 이래로 다수의 인물이 화면에 등장하면서 일정한 이야기를 구성하는 그림인 역사화(istoria)가 당시까지도 가장 위대한 미술 장르로 인정받으며 인물화(초상화), 풍경화, 정물화 순으로 그 위계가 주어졌었다. 그러나 디드로는 이와 같은 미술상의 위계 속 어느 장르에도 위치시키지 못할 보잘 것 없이 하찮은 주제를 다룬다고 평가받던 풍속화(peinture qu’on appelle de genre)의 가치를 샤르댕(Jean-Baptiste-Siméon Chardin, 1669~1779)의 작품을 통해 새롭게 알아 본 것이다(2.샤르댕, 19~34쪽). 왜냐하면 샤르댕은 그가 속한 중산층의 일상생활과 사물을 주로 그리는 정물 화가이자 풍속 화가인데, 이 지점에서 디드로는 이제 막 피어오르는 근대시민정신의 시대성을 읽었으리라! 또한 반(反)아카데미적이라고 할 수 있는 샤르댕적인 회화상의 수법(le faire), 즉 스컴블(scumble) 효과를 얻으려 묘사 대상의 표면을 연속해서 칠하고 그 위에 불투명한 색을 정교하게 사용하여 깊은 색조를 만드는 독특한 표현기법을, 딱딱하고(rude) 대조가 잘 안된 것(heurté)이라고 지적하면서, 그를 ‘색채와 반영의 조화’(l’harmonie des couleurs et des reflets)에 능통한 위대한 색채 화가라고 평가한다. 이 또한 조형요소로서 선(이성)을 색채(감성)보다 우위에 두는 아카데믹한 미술 전통으로부터 벗어난 비평적 관점인 것으로 디드로의 미술 감식안을 엿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미학의 세기라고 불리는 18세기는, 특히나 프랑스에 있어서는, 미의식 내지는 비평의식의 고취 및 그것의 전환을 준비하는 시기로서 ‘비평의 세기’라고도 칭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세기는 그 이전 세기에 지극히 융성했던 시학과 예술론에 관한 관심보다는 일반적인 미학적 문제에 치중된 저술들이 출현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연구의 흐름은 이후 디드로, 몽테스키외(Baron de Brède et de Montesquieu, 1689~1755), 달랑베르(Jean Le Rond d'Alembert, 1717~1783)와 같은 백과전서파에 의해 계승ㆍ발전을 거듭하면서, 한편으로는 미학적 논의의 영역을 확대시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 논의의 중심을 예술에 한정하여 그것을 선험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인 원리에서가 아니라 경험적이고 개인적인 쾌의 영역으로 다루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지적 풍토 한 복판에서, 디드로의 미술비평문 『살롱』은 미학적 논의를 감정적 쾌의 문제로 심화해가면서 이러한 감정에 의한 미적 평가를 보편화하려는 시도로써 그 논의를 취미의 대상, 즉 예술작품에다 초점을 맞추고 그 속에서 취미의 개념을 예술작품에 대한 인간 판단의 한 중요한 척도로서 자리매김하여 예술의 평가(비평)라는 실천적 작업을 보여주는 동시에 미적 가치의 수용이라는 이론적 측면을 대두시켜 예술비평의 영역을 진지한 학적 논의의 대상으로 만든 중요한 서적이라 하겠다.

 

 

 

이승건 
서울예술대 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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