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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단·대중에게 뭇매를 맞은 50개의 발칙한 회화
평단·대중에게 뭇매를 맞은 50개의 발칙한 회화
  • 이승건
  • 승인 2022.10.07 12: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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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말한다_『미술의 위대한 스캔들』 | 제라르 드니조 지음 | 유예진 옮김 | 미술문화 | 228쪽

오늘날 미술의 스캔들을 ‘창의적 행위’로도 평가
미술 밖 이야기와 작품마다 섬세한 심미적 분석

침대 위에 잠들어 있는 두 여인의 알몸이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갈색 머리 여인의 왼팔에 금발 여인이 안겨, 시각적인 강한 대조를 이루며, 서로 엉켜 깊은 잠에 취한 모습이다. 직전에 벌어진 그녀들의 행위는 우리가 상상하는 그대로일 것이다! 무슨 책이 이처럼 도발적인 표지를 내걸고 있는 것일까? 여성의 몸뿐만 아니라 남성의 몸, 특히 ‘에로티시즘, 죽음, 종교, 권력, 폭력성 등 미학적 기준을 제외하더라도 끝이 없는 미술 스캔들의 방식’(8쪽)을 추적하고 있는 한 권의 책(제라르 드니조(Gérard Denizeau) 지음, 유예진 옮김, 『미술의 위대한 스캔들』(Les Grands Scandales de la peinture, Larousse, 2020), 미술문화, 2022)이 근자에 번역ㆍ출판되었다. 인간의 몸을 다룬 미술의 주제는 언제나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표지의 이미지는 바로 18세기 사실주의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1819~1877)의 회화 작품〈잠(사치와 게으름〉, 1866, 135×200cm, 130~133쪽) 중 일부분이다. 눈앞에 펼쳐지는 세계의 사실적인 시각성만을 묘사하고자 했던 쿠르베! 그래서인지 그의 누드 작품은 언제나 미학적으로 강렬하다 못해 직설적이고 도발적이기까지 하다는 평이 쏟아진다(예를 들어, 〈세상의 기원〉, 1860, 46×55cm, 10쪽). 

 

프랑스어 원저서는 “영광은 그리스의 것이요, 위대함은 로마의 것이다.”라는 에드가 앨런 포우(1809~1849)의 말에 가장 잘 어울리는 듯한 신고전주의 미술의 대표적인 거장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1780~1867)의 작품(〈터키탕〉, 1862, 108×110cm, 115쪽)을 표지로 제시하고 있다. 이 작품은 일반적으로 이국에 대한 환상을 드러내며, 알몸의 여인들이 이루는 감각의 제국을 색채 보다는 드로잉으로 강조한 조각과 같은 고전적인 관능적 우아함의 인체로 다양하게 표현(입상, 좌상, 와상)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이 작품의 의뢰인이 제2공화정 대통령이자 미래의 황제가 될 나폴레옹이었기에, 당시 상류층의 미적 취향과 그에 따른 여러 스캔들(황후의 반송 등)이 세간의 관심을 끌었었다. 

그러나 한국어 번역서에서는 보다 대중적인 추문(醜聞)들을 엿 볼 수 있는 쿠르베의 작품을 표지로 삼으면서, 한층 더 문화적인 스캔들의 뉘앙스에 충실한 듯 보인다. 예를 들어, 화가 제임스 맥닐 휘슬러의 〈흰색의 교향곡 1번〉 속 여인이자 그의 오랜 연인이기도 한 화면 오른쪽 금발 여인(당시 23세의 조안나 히퍼넌)의 등장이라든지, 화면 왼쪽 아래 탁자 위에 놓인 화려하게 장식된 크리스털 잔과 병 그리고 끊어진 진주목걸이와 발아래 금색 빗 등의 화면 구성을 통해 이 공간이 매춘을 위한 전용 장소임을 암시한다든지, 또한 화면 오른쪽 상단의 에나멜로 장식된 화병을 통해 쿠르베와 친분을 쌓은 시인 보들레르(1821~1867)가 그리스의 문장가 사포의 동성애적 사랑을 노래한 『악의 꽃』(1855)을 연상케 하는 시각적인 재현 등등이 그러하다. 특히 파리에 거주하던 주프랑스 터키 대사 칼릴 베이가 주문한 것으로 전시목적으로 제작된 것이 아니라 개인 주문에 의해 제작한 것이었기 때문에, 화가 쿠르베에게 주제의 선택과 표현에서 훨씬 자유로울 수 있었던 점이, 당시 의학적 치료를 필요로 하는 질병으로까지 간주되던 여성간의 동성애를 주제로 한 이 작품 〈잠〉을 번역서의 표지로 삼는 데 한 몫을 했으리라!

 

평범한 보통 사람들에게 스캔들이란 매우 경계적(驚悸的)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인지 이 책 역시 스캔들의 어원(산스크리트어 skándati, 튀어 오르다)으로부터 ‘함정’ 또는 ‘장애물’을 의미한 그리스어(skandalon)와 볼테르의 『철학사전』(“대체로 종교인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심각하도록 파렴치한 행위”) 등에서 이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전통적인 부정적 뉘앙스(부패와 타락의 징표이자 분노와 거부)에 먼저 주목한다(「서문: 그림, 스캔들의 거울」, 8쪽). 특히 미술 영역에서는 19세기 이전과 그 이후로 나누어, 전자는 종교가 개입하지 않은 스캔들을 거의 찾아 볼 수 없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마침내 19세기는 스캔들의 세기라고 부를 만큼 많은 사건이 벌어졌으나 교회가 그 중심에 있지는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어 20세기 후반에 이르러는 미술의 스캔들 개념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보며, 어찌 보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치욕의 상징이었던 스캔들이 오늘날에는 명예의 상징”으로까지 여겨진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날 미술의 스캔들은 ‘창의적 행위’(「서문: 그림, 스캔들의 거울」, 11쪽)임을 강조하고 나선다. 미학적으로 종교적으로 정치적으로 그리고 윤리적으로 평론가뿐만 아니라 대중의 뭇매를 맞은 50개의 발칙한 회화 작품에 대해, 이 책은 개개 작품을 둘러싼 크고 작은 스캔들을 소개하며 그것을 통해 새로운 미술의 산책로로 우리를 색다르게 안내하고 있다.   

뭐니 뭐니 해도, 이 책의 장점은 미술에 접근하는 하나의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 데 있다. 특히 제작된 작품의 외적 조건 중 하나인 시대상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미술 밖 이야기들로 가득 채우고 있으면서도 작품 하나하나 마다 섬세한 심미적 분석을 가하며 미술의 구심력을 잃지 않는 뚝심을 지닌 데 있다. 여기에 책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서문(8~17쪽)과 맺음말(218~221쪽)이 각각 「그림, 스캔들의 거울」과 「스캔들: 불확실한 미래」로 책의 앞과 뒤에 배치되어, 자칫 가볍게 보고 넘길 수 있을 책장에 강한 제동을 거는 듯한 수문장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프랑스어 원저서 제목에서의 ‘회화’(la peinture)를 미술로 확대 번역한 점은 어쩐지 느슨한 느낌이다. 물론 맺음말 부분에서 헨리 무어의 조각(218쪽)이나 메이플소프의 사진 전시회(218쪽) 그리고 뒤샹의 〈샘〉(1917)(219쪽)과 폴 매카시의 크리스마스트리로 변장한 설치작품 버트 플러그 〈나무〉(2014)(221쪽) 등이 언급되고 있으나, 이 작품들은 어디까지나 미술의 스캔들에 대한 불확실한 미래를 예견하기 위한 현실의 작은 사례일 뿐이기에 그리고 발칙한 미술 50개(마사초의 작품 〈낙원으로부터의 추방〉(1426)으로부터, 오토 딕스의 작품 〈전쟁에 반대하여〉(1932)까지)는 모두 회화 작품이기에 번역서에서 달고 있는 제목에서의 ‘미술’은 ‘회화’로 직역했으면 어땠을까 한다.  

 

 

 

 

이승건
서울예술대 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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