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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미학의 정초자 ‘칸트’
근대 미학의 정초자 ‘칸트’
  • 이승건
  • 승인 2023.10.20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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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말하다_『판단력 비판』 이마누엘 칸트 지음 | 이석윤 옮김 | 박영사 | 1984(중판) | 530쪽

이론과 실천의 매개철학인 미학
미와 예술에 대한 판단은 주관적

칸트(Immmanel Kant, 1724~1804)는 미학사에 있어서 독보적인 존재이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그 누구도 기존의 학문 체계를 성찰하면서 감성의 영역을 학문 탐구의 대상으로까지 삼은 학자는 없었는데, 그는 이 방면에서 비판주의를 내세워 취미, 미와 숭고, 천재 등의 문제를 언급하며 미학을 하나의 독립적인 학문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바로 앞선 독일의 선배 미학자 바움가르텐(A.G. Baumgarten, 1714~1762)의 라틴어 저서 『에스테티카』(Aesthetica, 1750)에서의 미학에 관한 그의 입장을, 칸트는 미와 예술에 관한 저서가 아닌 논리학 저서, 즉 『순수이성 비판』(1781, 재판 1787)에서 다음과 같이 강하게 비판한 후 자신의 미학사상을 펼치기에 이른다. 즉,  

“독일인은 다른 국민이 ‘취미비판’이라고 하는 것을 ‘에스테틱’(Ästhetik)이라고 부르는 유일한 국민이다. 그것은 미의 비판적인 판정을 이성원리에 포함시켜 그 규칙을 학문에까지 높이려는 탁월한 분석가 바움가르텐의 ‘그릇된 희망’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이 노력은 무익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건 규칙 또는 규준들은 그것의 가장 중요한 원천에서 보면 단순히 경험적이고 결코 취미에 관한 우리의 판단이 그것에 따라 방향 짓지 않으면 안 되는 일정한 선천적 법칙일 수 없으며 오히려 우리의 취미판단이 그 같은 규칙의 정당성에 대하여 본래의 표준이 되기 때문이다.”(칸트, 『순수이성 비판』, B.36 / 최재희 옮김, 『순수이성 비판』, 박영사, 1985(개정 중판), 74쪽)라고! 

매개철학으로서 미학

칸트의 미학 저서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판단력 비판』(Kritik der Urteilskraft, 1790)이다. 바움가르텐을 비판한 제1비판서 『순수이성 비판』 출간 이후 약 9년이 흐른 후 출간한 저서이다. 특히 「서언」의 첫 문장에서 그가 비판(Kritik)이라는 용어를 어떤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지를 밝히고 있다. 즉, “우리는 선천적 원리들에 의한 인식의 능력을 순수이성이라고 부르고, 이 순수이성 일반의 가능과 한계의 연구를 순수이성의 비판이라고 부를 수 있다.”(17쪽)라고 하듯이, 『판단력 비판』은 ‘판단력 일반의 가능과 한계’를 따지는 연구쯤으로 유추해 볼 수 있겠다.

더욱이 「서론」(로마자 Ⅰ부터 Ⅸ까지 9개 소제목)에서 ‘Ⅲ. 철학의 두 부문을 하나의 전체로 결합시키는 매개로서 판단력의 비판에 관하여’를 통해, 그의 미학 저서는 기존 학문, 즉 ‘이론철학’과 ‘실천철학’에서 담지 못한 ‘쾌와 불쾌의 감정’의 문제에 집중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마침내 그에게 있어서 미학은 미와 예술을 다루며 이론철학과 실천철학의 결합을 꾀하는 매개철학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다가온 것이다.  

칸트의 미학사상을 살피려면 『판단력 비판』을 펼쳐야 한다. 그런데 칸트는 친절하게도 이 책의 「서론」(22~53쪽)에서 『판단력 비판』 전체를 아우르는 조망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자신의 세 비판서의 체계적인 이해를 위해 제시하고 있는 표(53쪽)는 이론철학(논리학)과 실천철학(윤리학)을 결합하는 매개철학으로서 미학의 위치를 잘 확인할 수 있게끔 해 준다.   

미와 예술에 대한 판단은 주관적이다!

칸트의 미학은 주관주의 미학이다. 그도 그럴 것이 『판단력 비판』 §1.에서 ‘趣味判斷(Geschmacksurteilskraft)은 美(直)感的(ästhetisch)’(57쪽)이라고 주장하기에 그렇게 단정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떤 대상이 아름다운지 아름답지 않은지를 판별하기 위해서는, 그 표상을 오성과 관계시키는 것이 아니라 구상력(아마도 오성과 결합되어 있는)에 의해서 주관과 주관의 쾌ㆍ불쾌의 감정과 관련시킨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취미판단은 인식판단이 아니므로 논리적이지 않으며 美(直)感的이라고 한다. 여기서 칸트의 ‘ästhetisch’라고 용어의 참뜻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은 ‘그 규정근거가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판단’임을 의미한다. 칸트 덕분에 미학은 미의 직관적 지각을 위한 주관의 능력으로서 취미(영: taste, 독: Geschmack)라는 학문적 중심 개념을 더욱 돈독히 하게 되었다. 특히 이 개념은 18세기 이후 서양미학에서의 미 개념을 대체했으며, 그 후로 미와 취미는 동의어로 인식되고 있는 실정이다. 

예술에 필요한 두 가지, 취미와 천재

그러나 칸트는 예술의 이해를 위해 취미 외에 또 다른 유력한 미학적 개념에 집중한다. 즉 그에게 있어서 아름다운 대상의 판별을 위해 취미 개념이 필요했던 것처럼, 그 대상의 산출과 관련해서는 ‘천재’(Genie) 개념을 상정한다(§46. 미적 예술은 천재의 예술이다). 특히 취미판단의 4가지 계기(성질, 분량, 관계, 양상) 및 취미판단의 제1특성(§32)과 제2특성(§.33)을 이율배반적으로 살핀 후, 이 두 개념의 상호작용에 관해 깊이 고찰함으로써(§50.미적 예술의 산물에 있어서의 취미와 천재와의 결합에 관하여), 칸트는 예술의 감상적 계기에서 뿐만 아니라 예술의 창작적 계기까지 아우르는 심미적 성찰을 통해 근대미학의 성좌(星座) 속에서 더욱 밝게 빛나는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승건
서울예술대 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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