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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학자 슈미츠, 사랑을 만나다
현상학자 슈미츠, 사랑을 만나다
  • 이승건
  • 승인 2022.05.27 10: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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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말하다 『사랑의 현상학: 환상 없는 사랑을 위하여』 헤르만 슈미츠 지음 | 하선규 옮김 | 그린비 | 496쪽

한 때 현상학이 궁금해 후설의 『현상학의 이념』을 손에 잡은 적이 있었다. 그러다 『정신현상학』(헤겔, 1807)도 있네! 『미적 체험의 현상학』(뒤프렌느, 1967)은 뭐지? 어쩌다 『지각의 현상학』(퐁티, 1945)을 거쳐 『레비나스와 사랑의 현상학』(우치다 타츠루, 2001)까지 들쳐보게 되었다. 꽤 오랜 시간 현상학이란 늪에 괜스레 빠졌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 다시금 현상학을 앞세운 책이 눈에 들어 왔다! 헤르만 슈미츠(Hermann Schmitz, 1928~2021)의 『사랑』(Die Liebe, 1993(초판)/2007(재판))을 얼마 전에 우리말로 옮긴 『사랑의 현상학』(2022)으로, 기억의 저장소 저편에 눌러 앉아 있던 현상학적 의식의 지향성이 소환되는 순간이었다. 원저자는 1971년부터 1993년까지 독일 킬대학 철학과 교수를 지내며 『철학대계』(전10권)를 비롯하여 총58권의 저서와 165편의 논문 그리고 35편의 주옥같은 서평을 남긴 현상학 계보의 철학자이다. 특히 여느 현상학자와는 다른 행보를 보이며 신체와 감정의 철학, 주관성의 이론, 분위기의 미학 등을 자신의 연구 주제로 삼는 자칭 ‘새로운 현상학’(Neue Phänomenologie)으로서의 그의 사상은 철학 이외의 영역(의학, 심리학, 건축학 등)에서도 점점 더 강한 조명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신체, 감정, 상황, 인상은 사랑의 근원적 문제

저자는, 먼저, 철학적 현상학이 갖는 철학함의 소임(인간이 자신을 둘러싼 상황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일을 성찰)으로부터 과제(여러 전제를 변화시키면서, 철학하는 사람이 더는 부인할 수 없는 가정이라 할 불변하는 요소들 속으로 돌파해 들어가는 일)의 부여를 강조하고 점검한다(서언, 8쪽). 그리고 기존의 현상학은 철학함의 과제를 해결하기에는 매우 미흡했다고 평가하면서, 마침내 자신이 내 세우는 ‘새로운 현상학’(예를 들어, 신체성의 감정, 개체성의 현상학을 통해 아픔, 불안, 우울, 슬픔과 같은 인간적 고통을 인식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철학적으로 기여하고자 한 노력)이 그 역할을 위한 사유의 기반이 될 수 있음을 제시하고 나선다. 물론 그 과제 중 하나가 ‘사랑을 공부하는 일’(서언, 9쪽)이라고 강조하면서, 즉 사람들이 사랑을 찾을 때 떠올리는 현상에 다가가는 일, 그리고 이 현상에 적합한 충만함과 섬세함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그 현상을 최대한 온전히 파악하는 일은 자신의 ‘새로운 현상학만이 적절히 해결’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서언, 10쪽). 이와 같은 그의 주장은 4장(감정과 느낌으로서의 사랑)과 5장(상황으로서의 사랑) 그리고 특히 7장(사랑과 신체)에서 신체현상학적 접근을 통해 섬세하게 관찰되고 독창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사랑에 관한 여러 실례와 많은 문학작품들(예를 들어, 스탕달의 『연애론』(초판 1822), 386쪽 등)이 인용되고 있는데, 새삼 책 속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작품들과의 조우는 책읽기의 즐거움을 더해 준다.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온 현상학

 

번역서가 그러하듯이, 이 책 또한 〈옮긴이 후기〉(479쪽~485쪽 )와 〈옮긴이 해제〉(450쪽~478쪽)가 책 후미에 자리한다. 여기에 〈핵심 용어 해설〉(441쪽~449쪽)과 〈원저자에 대한 국내외 연구 문헌〉(486쪽~488쪽)을 덧붙인 편집을 통해 독자들을 더욱 깊게 책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옮긴이는 『사랑의 현상학』에서 원저자가 취하는 태도를 한마디로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온 현상학’(〈옮긴이 해제〉, 460쪽)이라 정리한다. 더욱이 〈옮긴이 해제〉 중 ‘이 책의 특징’(474쪽~475쪽)과 ‘이 책의 전체 구성과 논지 흐름’(475쪽~478쪽) 부분은 옮긴이 자신이 서술한 서평격인 바, 이 책을 탐방하는 방문객들에게 훌륭한 길라잡이 역할을 해 줄 것이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원저자의 글을 30여 년 전에 처음 만나 그때부터 멘토로 삼았다는 옮긴이의 고백과 원저자의 글이 선사해 준 전율과 감동을 미지의 독자와 함께 공유하고픈 마음에서 그의 글을 우리말로 내놓는다는 〈옮긴이 후기〉는 그 자체로 잔잔한 인문학적 향기를 품고 있다고 하겠다. 

 

 

 

 

이승건
서울예술대 교수ㆍ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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