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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미술’의 고전이론서를 만나다
‘비교미술’의 고전이론서를 만나다
  • 이승건
  • 승인 2023.04.28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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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말하다_『동서미술론』 | 벤자민 로울랜드 지음 | 최 민 옮김 | 열화당 | 1992(4판) | 204쪽

미술 주제별 표현에서 동·서양의 유사점과 차이점
미술사학적 혜안의 귀중한 자료

미술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는 다양한 방법이 존재한다.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 역사적인 접근이나 유형학적인 방법 또는 도상(圖像, icon)에 대한 분석이나 해석에 의한 접근 등이 열거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탐색 외에 ‘비교’라는 ‘색다른 한 가지 접근방법’(후기, 198쪽)에 의해서 바라보는 미술 관련 이론서가 있다. ‘비교미술입문’이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로울랜드(Benjamin  Rowland, Jr., 1904~1972)의 Art in East and West: An Introduction Though Comparisons(1954)(최민 옮김, 『동서미술론』, 열화당, 1992(4판))이라는 책으로 이 방면에선 고전에 속한다. 

 

동서양 미술을 함께 바라보는 방법으로서 비교 

비교라는 관점에서 미술에 접근하는 고전적 연구로는 ‘체계적 예술학으로서 예술작품의 인위적 체계를 강조’한 독일 미술사학자 제들마이어(Hans Sedlmayr, 1896~1984)의 『비교예술학의 이념』(Idee einer Vergleichenden Kunstwissenschaft, 1958)과 미학이라는 학문이 인간사회에서의 모든 예술, 모든 미적 체험, 그리고 모든 예술의 가치에 관해 보편화할 의무를 떠맡아 왔던 것을 강조하면서 ‘동ㆍ서양 예술의 비교연구를 통해 비교학의 학문적 당위성과 그 성과’에 큰 의미와 기대감을 보인 먼로(Thomas Munro, 1897~1974)의 『동양미학』(Oriental Aesthetics, 1965) 그리고 ‘비교란 방법적 연구수단일 뿐만 아니라 문제설정 방법 자체를 규정하는 것’이라면서 조형예술에 있어서 형태학의 가능성을 4개의 모티브(신체감정으로서 직립모티브와 운동모티브, 운동감정으로서 목표모티브와 진로모티브)로 살펴보는 프라이(Dagobert Frey, 1883~1962)의 『비교예술학의 정초: 아프리카ㆍ유라시아의 위대한 문화 예술에서 공간과 시간』(Grunlegung zur einer vergleichenden Kunstwissenschaft : Raum und Zeit in der Kunst der africanisch-eurasischen Hochkulturen, 1949) 등이 있는데, 이 연구서들은 각기 성격을 달리하며 비교미술학의 연구 대열에서 성좌(星座)를 이루고 있다고 하겠다. 

미술 주제별 표현에서 동ㆍ서양의 유사점과 차이점

크게 4개(Ⅰ장 인체, Ⅱ장 풍경, Ⅲ장 새ㆍ짐승ㆍ꽃, Ⅳ장 정물)의 묶음으로 구성하고 있는 로울랜드의 『동서미술론』은 모두 31쌍 62점의 작품(그림목록 11~24쪽)을 비교하며 소개한다. 저자는 먼저 서양인답게 고대 그리스의 조각상 〈쿠로스〉에 시선을 두고 이어서 자이나교의 〈고행자 조각상〉에 대해 각각의 특유한 미학적 속성을 제시한다(35~39쪽). 즉, 이 두 작품을 나란히 세워 놓고 볼 때 동일한 환경의 산물이거나 적어도 같은 원형으로부터 나왔으리라는 피상적인 결론을 이끌어 낼지 모르겠지만, 전자는 고대 고졸기의 귀족적인 그리스 사회가 품고 있었던 이상적인 젊은 남성미를 완전하게 표현한 것인 반면에, 후자는 육체를 떠난 카요차르카의 행위, 즉 깊은 요가적인 무아의 경지에 몰입한 것을 표현한 것으로 설명한다(그림1 / 그림2, 63쪽).

또한 인간과 달을 묘사한 두 작품, 즉 독일 낭만주의 화가 프리드리히(Caspar Dvid Friedrich, 1774~1840)의 〈달을 바라보는 두 사람〉과 중국 남송시대의 화가 마원(馬遠, 1190~1224)의 〈고사관월도〉(高士觀月圖)에 대해 이 둘 사이의 유사성을 살펴보면서(그림35 / 그림36, 120~121쪽), 서양의 낭만주의적인 예술(시와 회화)이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라는 영원한 문제에 철학적으로 깊게 관련되어 있긴 하지만, 공간과 빛과 질감의 문제에 있어서 사실주의적인 선입관을 갖고 있는 프리드리히와 같은 유럽 화가는 최소한의 회화적인 표현으로써 중국 화가가 포착한 자연의 신성(神性)의 의미를 전하는 데는 실패했다고 그 차이점에 주목한다(139~142쪽). 그러나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의 〈꽃〉과 중국 명대의 화가 심주(心周, 1427~1509)의 〈정물〉에 대해서는(그림59 / 그림60, 189쪽), 이 두 화가 모두 대상의 핵심적인 형태를 간결하고 재치 있게 특징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대상을 평면적이고 장식적인 모양으로 바꾸고 있다고 평가한다(196~197쪽).

 

미술사학적 혜안의 귀중한 자료

이 책의 저자는 생전에 네 차례나 중국과 일본 그리고 인도와 아프가니스탄 등을 여행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관련 자료를 모으고 다소 생경한 작품들을 접하면서도, 그것들의 특징을 간파하며, 서양미술에 익숙한 자신의 시야를 넓혀간 듯하다. 이윽고 1960년 이후에는 하버드 대학 교수로 재작하면서 평생 미술사 강의와 비교미술연구에 전념함으로써 고고학적 비교미술사학의 혜안을 얻었으리라! 이러한 그의 전문가로서의 행적 덕분에 우리는 미술에 관한 연구 방법으로서 비교가 단순한 방법적 수단이 아니라 비교 대상 자체에 대한 개개의 현상적 특징의 서술을 넘어서는 원리에로의 파악을 최종 목표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되었고, 더 나아가 동양과 서양의 미술작품이 지니는 의미지평의 차이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숙고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미술을 포함한 동양의 아름다움과 서양의 아름다움을 탐구하는 후대의 작업에 시사를 건네주는 귀중한 자료라 하겠다.

 

 

 

이승건 
서울예술대 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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