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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츠테아터는 무용인가, 연극인가?
탄츠테아터는 무용인가, 연극인가?
  • 이승건
  • 승인 2023.03.03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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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말하다_『탄츠테아터』 수잔네 슐리허 지음 | 박균 옮김 | 범우사 | 2006 | 309쪽

스페인 출신의 영화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Pedro Almodóvar, 1949~ )의 「그녀에게」(2002)를 보고 싶어 안달이 난 적이 있었다. 아니, 영화보다도 오프닝과 엔딩에 각각 자신의 대표작인 「카페 뮐러」(1978년 초연)와 「마주루카 포고」(1998년 초연)를 직접 연기한 무용수이자 안무가인 피나 바우쉬(Pina Bausch, 1940~2009)의 춤을 만나고 싶어서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왜냐하면 1973년부터 ‘부퍼탈 탄츠테아터’를 이끈 그녀를 포함해서 독일 현대무용을 한 눈에 살필 수 있는 수잔네 슐리허(Susanne Schlicher)가 지은 『탄츠테아터: 전통과 자유』(TanzTheater: Traditionen und Freiheiten, Hamburg: Rowohlt Verlag GmbH, 1987 / 박 균 옮김, 『탄츠테아터: 무용연극』, 범우사, 2006)에서 독일식 현대무용인 탄츠테아터와 그 중심을 이루는 피나 바우쉬에 뜨겁게 매료되었기 때문이었다.  

 

 

무용과 연극, 두 예술의 앙상블

현대무용의 한 지류로서 탄츠테아터(Tanztheater)는 20세기 초 독일 표현주의 무용의 흐름 속에서 무용(Tanz)과 연극(Theater)이라는 두 분야의 예술영역이 결합된 형식으로 출현했다. 그래서인지 이 무용예술은 출현 당시부터 무용인가? 연극인가? 라는 의문의 꼬리표를 종종 달고 다닌다. 특히 탄츠테아터가 막 등장했을 무렵에는 ‘신출내기(newcomer)’ 예술이라고까지 이야기되며 ‘다각적인 논쟁의 가십거리’가 되기도 했었다(19쪽~20쪽). 

 

 

독일의 핵심적인 문화상품

무용과 연극, 이 두 예술영역의 앙상블이라고 탄츠테아터를 규정한 독일의 무용평론가 하이데 마리 하르텔(Heide-Marie Hartel)은 “오늘날 탄츠테아터는 독일의 핵심적인 문화상품 품목이 되었다”(추천 서문, 11쪽)고 평하면서, 이 새로운 현대무용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유희를 꼽는다. 먼저, 지나칠 정도로 과도한 상연시간의 연장에서부터, 지나치게 확대시킨 영상방식에 이르기까지 공연시간의 역행을 통한 시간의 유희는 실제를 잔혹하리만큼 잘게 분해시키고 있다는 ‘시간 유희’, 그리고 시대정신을 은유하는 데 사용되는 인접 예술영역과의 유희는 육체라는 독자적인 매체에 대한 동시대의 절대적 현존성과 무시간성을 체험하게 한다는 ‘인접 예술영역과의 유희’, 마지막으로 미완의 동작 파편들이 충돌되기도 하고 잘못된 첫 스텝과 마지막 스텝이 관객들의 머릿속에서 끝없는 희망과 절망을 춤으로 엮고 있으며 어색하기만 한 짧은 바지와 어울리지 않는 구두가 오히려 삶의 가치로 몰입시키게 만든다는 ‘몽타주로서의 유희’를 지적하고 있다(추천 서문, 14쪽).

모두 여덟 개 장으로 구성하고 있는 이 책은, 이미 언급한 피나 바우쉬(Pina Bausch, 4장)를 비롯하여, 탄츠테아터의 정초자이자 1932년 파리에서 열렸던 ‘안무가 콩쿠르’에서 안무가에게 수여하는 최고상을 비롯하여 의상 부분과 표현 부분에서도 최고상을 수상한 〈녹색 테이블〉(Grüne Tisch)로 명성을 얻은 쿠르트 요스(Kurt Jooss, 1901~1979)(3장)와 1970년대 중반부터 각자 독자적인 방식으로 탄츠테아터를 펼치고 있는 한스 크레스닉(Hans Kresnik, 1939~2019)(2장), 게하르트 보흐너(Gerhard Bohner, 1936~1992)(5장), 그리고 피나 바우쉬와 함께 독일식 표현주의적 예술전통을 이어받은 독일 현대무용의 삼총사라 불리는 수잔네 링케(Susanne Linke, 1944~ )(6장), 라인힐트 호프만(Reinhild Hoffmann, 1943~ )(8장)의 무용세계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여기에, 앞선 인물 중심의 서술과는 다른 방식의 1장(탄츠테아터로의 여정)과 7장(표현 방식을 위한 새로운 시도, 탄츠테아터)을 위치시키면서, 전체적으로 이 새로운 무용예술이 밟아온 궤적과 예술성을 미학적으로 다채롭게 조명해 내고 있다.

우리시대의 미학은 연극적 요소가 가미된 이 무용연극 탄츠테아터에 대해, 머스 커닝엄(Merce Cunningham, 1919~2009)식의 모던 댄스와 그를 추종하는 뉴욕 댄스 류(流)와 더불어, 현대무용의 양대 산맥을 형성하고 있는 매우 중요한 무용 장르 중 하나라고 그 의의를 북돋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탄츠테아터는 얼핏 보아 연극과 춤의 혼용을 통한 이야기식 무용이라고 비춰지기도 한다. 

상황이 이러하더라도, 이 무용이 무엇보다도 춤 자체의 신체형상을 기반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그 누구도 탄츠테아터의 무용성에 대해 의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부분에서 이 책은 부제(副題)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탄츠테아터가 추구해온 예술적 ‘자유’(Freiheit)가 무엇인지, 또한 이 무용예술이 과거에서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이어질 ‘전통’(Tradition)으로서의 공연예술임을 잘 묘사하고 있다고 보인다. 

 

 

 

이승건 
서울예술대 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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