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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113] 애국심은 노예의 한 형태다
[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113] 애국심은 노예의 한 형태다
  •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저술가
  • 승인 2022.10.31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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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저항
톨스토이는 기독교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착취와 억압을 목격했다. 사진=위키미디어

1886년 그는 모스크바에서 고향까지 130마일을 걸어가는 동안 인민과 새로운 접촉을 했다. 1891~1892년 사이에 유럽에 가까운 러시아의 많은 지역에 영향을 미친 심각한 기근의 희생자들을 도왔다. 그리고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1894)에서 참 기독교와 양립할 수 없음에도 그 이름으로 자행되는 착취와 억압, 자신을 포함하여 부유하고 존경받는 사람들의 위선을 묘사했다.

“우리는 모두 형제이지만 매일 아침 형제자매가 내 그릇을 나른다. 우리는 모두 형제지만 매일 아침 나는 시가, 약간의 설탕, 거울 및 나와 동등한 형제자매들이 자신의 건강을 희생하여 생산한 기타 물건을 필요로 한다. 나는 이 물건들을 이용하고 심지어 요구하기까지 한다…우리는 모두 형제이지만 나는 교육, 의학, 문학 작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과 교환하여 줄 뿐이다.”

톨스토이는 만년에 박해받는 두호보르파(Dukhobors)를 캐나다로 이주시키기 위해 젊은 귀족의 도덕적 재생을 다른 『부활』(1899)을 썼다. 소설은 이미 『예술이란 무엇인가?』(1897-8)에서 표현된 그의 새로운 미학적 관점을 반영했다. 즉 예술은 기독교 시대에 세상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종교적 관점을 반영해야 하는 도덕의 확장이고, 또한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문학사가와 전기작가는 톨스토이의 생애 후반에는 도덕주의가 예술을 압도한다고 비판했다. 심지어 우리나라에도 번역된 톨스토이 전기를 쓴 A.N. 윌슨은 '톨스토이에서 의도적인 상식의 부재는 궁극적으로 그의 예술적 상상력의 죽음'이라고 주장했다.

두호보르파는 러시아 정교회의 분리파 중 하나이다.'영혼을 위해 싸우는 자'들이란 의미로 이들은 러시아 제국주의 시절 양심적 병역거부로 탄압을 받았다. 사진=위키미디어

그러나 이것은 너무 단순한 견해다. 톨스토이의 위대한 초기 소설과 단편 소설『이반 일리치의 죽음』(1886), 『주인과 인간』(1895), 단편 소설 『하지 무라드』(1911)와 같은 후기 소설의 많은 부분에는 항상 강한 도덕적 주제와 함께 그의 상상력이 끝까지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가장 무식한 농민도 이해할 수 있도록 간단명료하게 글을 쓰기로 한 그의 결정은 종종 그의 최고의 이야기에 강력한 힘을 부여한다. 더욱이 단순한 말투로 자신을 표현하는 그의 능력은 후기의 도덕적, 정치적 작품들에 독특한 강점을 부여한다.  

종교재판·사형을 비판하며 정교회서 파문당한 톨스토이

도덕 사상가이자 종교 개혁가로서 톨스토이는 지상의 권위를 거부하고 악에 대한 비폭력 저항을 촉구한 산상 수훈에 기초한 기독교의 한 형태를 계속 발전시켰다. 그는 기독교에서 신비주의를 없애고 이성적인 사람에게 호소할 수 있는 도덕규범으로 바꾸려고 했다. 결국 1901년 러시아 정교회에서 파문당했다. 그리고 이와 같이 말했다.

 “나는 내가 영혼으로, 사랑으로, 만물의 근원으로 이해하는 하나님을 믿는다. 그가 내 안에 있고 내가 그 안에 있다. 나는 하나님의 뜻이 가장 분명하고 명료하게 인간 예수의 가르침에 표현되어 있다고 믿는다. 그를 하나님으로 여기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가장 큰 신성 모독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사람의 참된 복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있으며, 하나님의 뜻은 사람이 서로 사랑하여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 중에 율법과 선지자가 있다고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나는 모든 사람의 삶의 의미는 그 안에 있는 사랑을 증가시키는 데서만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이 사랑의 증가는 사람을... 지상에 신의 나라를 건설하는 방향으로 인도한다. , 즉 현재 지배하고 있는 불화, 기만 및 폭력이 자유로운 합의, 진실, 그리고 서로에 대한 형제 사랑으로 대체될 삶의 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것이다.”  

톨스토이의 파문은 그의 명성을 해치기보다는 러시아는 물론 세계적으로 더욱 유명하게 했다. 무저항은 톨스토이의 새로운 정치 신조의 핵심이 되었으며 시민 불복종에 관한 소로의 에세이는 그를 감동시켰다.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에서 그는 정부, 교회, 애국심, 전쟁에 무저항 사랑의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했다. 그는 특히 일어날 수 있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은 무력으로 악을 막을 수 있는 오만한 사람들이 초래하는 악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특히, 종교 재판, 정치범 수용소, 정부의 사형, 혁명가의 폭탄에 대해 비판했다. 참 기독교는 혁명적이지만 폭력적인 사회 혁명이 아니라 개인의 도덕적 개혁을 추구한다고 톨스토이는 믿었다. 그리고 톨스토이는 기독교를 아나키즘으로 만든 것은 인간이 어둠에서 빛으로 가는 영적 여정에서 역사의 통치적 단계를 넘어선다고 생각했다. 

톨스토이는 종교 재판, 정치범 수용소, 정부의 사형, 혁명가의 폭탄에 대해 비판했다. 사진=위키미디어

경찰·군대·법원은 시민을 억압하기 위해 커진다

모든 개인에게 심어진 사랑의 신성한 법칙이 삶의 충분하고 유일한 지침이기 때문에 참된 그리스도인은 모든 인간적 권위로부터 자유롭다고 본 톨스토이는 고드윈만큼 국가가 시들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으며 그와 마찬가지로 국가가 몰락한다고 보는 여론이 커진다고 확신했다. 톨스토이는 ‘평등의 기독교 원칙(인간의 형제애, 재산의 공동체, 폭력에 의한 악에 저항하지 않음)이 가족, 사회생활, 민족생활이 자연스럽고 단순한 것처럼 나타날 때가 이미 오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러므로 생활 원칙의 진정한 의미는 각 개인이 진리를 단순하게 고백함으로써 신의 나라의 건설을 촉진하여 세상을 섬기는 데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정부와 국가가 설 자리가 없다.  

톨스토이에 의하면 정부가 본질적으로 폭력에 기반을 두고, 조세나 징병제를 도입할 때마다 국민의 의사와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도록 강요하며, 더욱이 국가권력은 늘 새로운 형태의 폭력을 도입하기 때문에 사적 폭력을 구제할 수 없고 국가가 강해질수록 국가가 자행하는 폭력은 더 커진다. 톨스토이는 사람들이 확립된 법률에 복종하게 만드는 것은 물리적인 힘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법은 위반자가 구타를 당하거나 자유를 잃거나 살해당하는 경우 조직적 폭력을 통해 통치하는 사람들이 만든 규칙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것들은 만인의 의지가 아니라 권력을 가진 자들에 의해 권력을 가진 자들의 이익을 위해 언제 어디서든 만들어진다고 본다. 

정부는 인민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해로운 영향력만 행사하고 형벌을 가할 도덕적 권리를 주장함으로써 그것은 단지 부도덕한 수단으로 나쁜 행동을 좋게 보이게 하려고 시도할 뿐이다. 정부에 대한 톨스토이의 주된 비판은 그것이 전쟁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모든 정부는 경찰, 군대, 법원 및 감옥 형태의 폭력에 기반을 두고 있다. 군사 조직으로서 그것의 주요 목적은 전쟁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들은 외부의 적뿐만 아니라 억압받는 신민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군대를 증가시킨다. 

정부에 대한 톨스토이의 주된 비판은 정부가 전쟁과 불가피한 관계를 갖고 있다는 데 있었다. 사진=위키미디어

따라서 톨스토이는 “사실상 전쟁은 군대가 존재하기 때문에 불가피한 결과이다. 그리고 군대는 오로지 자신의 노동계급을 지배하기 위해 정부에게 필요하다.'고 봤다. 게다가 전쟁이 재산의 불평등한 분배와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잘못된 가르침으로 인해 발생한다는 것을 인식했다.

톨스토이는 애국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톨스토이는 정부를 지지하는 애국심을 어떤 이유로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른 민족보다 자기 민족을 사랑하는 자발적인 애국심은 항상 무례하고 해롭고 부도덕하다. 『기독교와 애국심』(1894)에서 그는 정부가 전쟁을 지원하기 위해 국가적 애국심을 어떻게 부추기는지를 강력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애국심은 노예의 한 형태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가장 단순하고 명확하며 가장 의심할 여지가 없는 의미의 애국심은 통치자들에게는 야망과 탐욕스러운 욕망을, 피지배자들에게는 인간의 존엄성, 이성, 양심의 포기, 그리고 권력자들에 대한 노예적인 애착을 얻는 수단일 뿐이다. 

톨스토이는 독립을 위해 싸우는 노예 국가들의 애국심까지 거부했다. 자기 민족에 대한 선호는 인간 평등과 인간 존엄성에 대한 인식을 무시하기 때문에 결코 선하거나 유용할 수 없다. 따라서 목표는 독립을 위한 민족주의적 투쟁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피정복국이 정부의 폭력적인 조치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하여 스스로를 해방하는 것이어야 한다. 톨스토이는 『애국심과 정부』(1900)에서 전쟁을 준비하면서 평화를 요구하는 강대국의 위선적 공언을 폭로했다. 그는 끔찍한 파괴 도구의 발명이 전쟁을 종식시킬 것이라는 억지 주장(핵무기 옹호론자들에 의해 인기를 얻은 이후로)을 거부하면서, 궁극적인 폭력 도구인 정부를 없애는 것이 유일하고 지속적인 해결책이라고 주장했다. 

‘끔찍하고 날로 증가하는 군비와 전쟁의 악으로부터 인간을 구출하기 위해 우리는 정부라고 불리는 폭력 도구의 파괴를 원하고 인류의 가장 큰 악이 흘러나오기를 원한다.' 보편적인 군축이 없다면 톨스토이는 더 끔찍한 전쟁이 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저술가

일본 오사카시립대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 영국 노팅엄대, 독일 프랑크푸르트대에서 연구하고, 일본 오사카대, 고베대, 리쓰메이칸대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영남대 교양학부 명예교수로 있다. 전공인 노동법 외에 헌법과 사법 개혁에 관한 책을 썼고, 1997년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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