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22:15 (금)
[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121] 우리의 필요는 사회를, 우리의 사악함은 국가를 출현시킨다
[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121] 우리의 필요는 사회를, 우리의 사악함은 국가를 출현시킨다
  •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저술가
  • 승인 2022.12.26 08: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토머스 페인Ⅱ

 

토머스 페인의 『상식』은 미국 독립 전쟁기에 나온 2천여 종의 정치 팜플릿 중 하나지만 출간 3개월 만에 10만부가 팔렸다. 그는 『상식』에서 "사회를 만든 것은 우리의 필요이고, 정부를 만든 것은 우리의 악함"이라고 말했다. 사진=위키미디어 

페인 논의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페인이 당대 사람들 대부분과 달리 정부의 해악을 인식했다는 점이다. 그의 글 대부분은 정부의 잘못을 폭로한 것이다. 따라서 페인은 최초의 아나키스트다. 그는 저서 중 가장 초기작이라 할 수 있는 『상식』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사회는 우리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지만, 국가는 우리의 사악함 때문에 만들어진다. 사회는 우리의 애정을 결합해 ‘적극적으로’ 우리의 행복을 북돋우지만, 국가는 우리의 악을 억제해 ‘소극적으로’ 행복을 북돋운다. 사회는 상호교류를 조성하지만, 국가는 상호차별을 야기한다. 사회는 보호자지만, 후자는 처벌자다.  

사회는 그 모든 상태에서 사회는 축복이다. 그러나 국가는 최선의 상태에서도 필요악에 불과하고, 최악의 상태에서는 견딜 수 없는 악이 된다. ‘국가가 없는’ 상황일 때서 겪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던 불행을 ‘국가에 의해’ 겪거나 당하게 되면, 자신에게 불행을 끼칠 것을 스스로 만들었다는 생각으로 인해, 우리의 비참함이 더욱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국가는 옷처럼 순결의 상실을 나타내는 표식이고, 왕의 궁전은 낙원이 무너진 폐허 위에 세워진 것이다. 만약 양심이 분명하고 한결같이 작용하고 무조건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인간은 다른 입법자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21쪽)

문명화 정도에 따라 국가 필요성은 줄어든다

페인에 의하면 사회는 자연상태이고 국가 및 정부는 인공상태이다. 즉 자연상태인 사회로부터 인민은 자발적이고 자유로운 계약에 의해 국가를 형성한다. 따라서 국가란 정치적으로 조직된 사회일 뿐이다. 국가를 형성함에 의해 인민은 자연 상태로부터 정치공동체 구성원으로 넘어가고, 이 단계에서 국가 업무 수행의 상설적 대행 기관인 정부를 형성한다.

토머스 페인은 『상식』에서 국가는 우리의 사악함 때문에 만들어진다고 봤다. 또한, 『인권』에서는 인류를 지배하는 질서의 대부분을 국가가 만든 것이 아니라고도 했다. 사진=위키미디어 

사회는 정의와 양심이 지배하는 한 지속되나, 그것에 결함이 나타나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국가 조직의 필요성이 생긴다고 페인은 본다. 따라서 국가는 필요악이고, 문명화 정도에 따라 그 필요성은 줄어든다. 사회로부터의 국가에의 전환은 구성원의 계약에 의하는 것이지, 통치자와 피통치자간의 계약에 의한 것이 아니다. 구성원간 계약에서 개인은 정신권을 비롯한 인권을 그대로 지닌다.

그러한 사회계약에 의해 성립된 국가가 선거와 대표에 의한 대의제 공화국이고, 이에 반하는 것이 세습적 계승에 의한 전제국 또는 귀족국의 독재국가이다. 『상식』이나 『인권』의 상당 부분이 영국과 프랑스의 전제주의를 비판한 글임에서 알 수 있듯이 페인의 최대 관심은 전제주의의 타파와 공화국의 수립이었다. 

공화국이란 공익, 즉 인권과 정의의 기본적 원리에 의해 창설되고 운영된다. 따라서 공익은 사익과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사익의 총화에 불과하다. 그러나 페인은 재산권에 대해서는 그 사회적 책임을 강조함으로써, 나아가 재산가들로부터 빈민층을 보호하는 보호자로서의 기능을 국가에 부여한다. 그러나 페인의 『인권』은 더욱 아나키즘적이다. 2부 1장 처음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류를 지배하는 질서의 대부분은 국가가 만든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의 원리와 인간의 자연적 본질에서 비롯됐다. 그것은 국가 이전에 존재했고, 국가라는 형식이 없어진다고 해도 존재하리라. 인간이 인간에 대해, 그리고 문명사회의 모든 부분이 서로에 대해 가지는 상호의존과 상호이해 관계는 그들을 하나로 통합시키는 거대한 연쇄를 만들어낸다. 지주, 농민, 제조업자, 상인, 무역업자, 그리고 그 밖의 모든 직업인들은 서로 남의, 그리고 전체의 도움으로 번영하게 된다. 공동의 이해관계가 그들의 관계를 규정하고, 그들의 법을 형성한다. 이렇게 일반 관습으로부터 형성되는 법률은 국가가 제정하는 법률보다 더욱 큰 영향력을 가진다. 요컨대 국가가 한 것으로 간주되는 거의 모든 일은, 사실은 사회가 스스로 수행한 것이다.(236쪽) 

모두가 갖고 있으나, 누구도 독점할 수 없는 권리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The Making of English Working Class)』에서 톰슨은 1780년대에서 1832년 사이에 영국 노동자계급의 형성을 탐구했다. 1792년 페인의 『인권』이 판금 되었지만 그 판금은 동시에 ‘가장 가난한 사람’이 가지는 ‘생득권’이 인권으로 의식된 것을 뜻했다고 톰슨은 말한다(나종일 외 옮김, 상권-33쪽). 이어 톰슨은 『인권』을 “잉글랜드 노동계급 운동의 원천을 이루는 저작”으로 평가한다(상권-130쪽). 『상식』에서는 로크에 따라 국가를 ‘필요악’으로 보았으나, 『인권』에서는 아나키즘과 비슷한 태도로서 필요한 것은 국가의 개혁이 아니라 국가의 폐지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다(상권-133쪽). 

영국의 사학자 에드워드 파머 톰슨(Edward Palmer Thompson)은 국가에 대한 페인의 미묘한 입장의 차이를 『인권』과 『상식』에 있다고 주장했다. 사진=위키미디어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평등한 자연적 인권을 타고났다는 페인의 인권론은 1775년 『아메리카의 아프리카 노예제』에서 “그들이 자유를 박탈당하도록 선고를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은 여전히 자유에 대한 자연적이고도 완전한 권리를 갖는다”라고 한 점에서부터 나타났다. 이어 1780년의 『노예 해방』에서도 인간의 피부가 다른 것은 신의 창조에 의한 것에 불과하므로 인간이 그것을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가 말하는 자연권은 첫째, 한 국민의 주권으로서 이를 근거로 그는 미국의 독립을 주장했다. 둘째, 개인적 자유권, 셋째, 선거권(따라서 선거권에 대한 재산에 따른 차별은 부당하다), 넷째, 언론의 자유, 다섯째, 혁명권이었다. 

이러한 자연 상태에서 나오는 자연권과 구분되는 것이, 자연 상태로부터 정치공동체로 넘어감에 따라 갖는 시민권이다. 이러한 시민권은 자연권에 근거하는 것으로서, 자유, 평등, 안전, 재산, 사회적 보호, 압제에 대한 항거를 그 내용으로 한다. “자유란 타인의 자연권에 위반되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권리”이고, “평등은 모든 사람이 동질의 권리를 누림”이며, “안전은 사회가 모든 시민들에게 그 생명, 재산, 권리를 보존해주는 사회적 보호”를 말한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이 주권과 혁명권이다. 페인은 모든 사람이 사회계약에 참여하므로 그들은 주권을 가지고 국민이 싫어하는 정부를 개폐할 권리를 갖는다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주권은 주권자인 각 개인이 가지지만, 그것을 어느 누구도 독점할 수 없다고 본다. 이는 루소의 일반의사와 같은 논리이지만, 루소가 일반의사와 특수의사(전체의사)를 대립시켜 전체주의로 흐르는 반면, 페인은 다수지배의 원리를 통해 주권의 단일성과 최고성을 주장한다.

사회에 의해 생긴 재산은 사회에 반환해야

톰슨은 『인권』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제2부 제5장이라고 한다. 즉 페인이 상업과 산업활동을 찬양하고 식민지지배를 탄핵하며 형법을 비판하고 폐쇄적인 특허장, 신분단체, 독점 등을 규탄하며 세금 부담을 강력히 비난한 뒤 여러 가지의 사회개혁을 제시한 부분이다. 페인은 군사비의 삭감, 국세 및 지방 구빈세의 철폐, 누진소득세에 의한 추가세금의 징수, 빈민 구제를 위한 지출 등이다. 

그리고 가족보조금, 모든 아동의 일반교육을 가능하게 하는 공공기금, 노년연금을 권리라고 주장한 것을 지적하면서 톰슨은 이것이 페인의 가장 강력한 모습이라고 평가한다. 즉 “20세기의 사회적 입법을 위한 출발점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페인이 영국 민중에게 준 것은 급진적 평등주의의 새로운 수사법이었다고 톰슨은 말한다(상권-133-135쪽).

에릭 홉스봄은 인간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었던 페인에게 존경했다. 사진=위키미디어

물론 경제의 사회화를 주장하지 않은 점에서 그는 사회주의자는 아니다. 즉 노동가치설을 주장한 마르크스가 초과이윤이 노동자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 것과 달리, 페인은 재산이 사회적으로 생긴 것이므로 사회에 반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18세기말에서는 가장 혁신적인 것이었고, 21세기의 지금에도 의의가 있다. 

톰슨과 함께 현대 영국 최고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인 홉스봄(Eric Hobsbawm)은  『저항과 반역, 그리고 재즈』에 실은 페인에 대한 글 마지막에서 말했다. “우리가 여전히 인간을 신뢰한다면, 어찌 지금이라도 페인에게 갈채를 보내지 않을 수 있을까?”(김동택 외 역, 13쪽) 인간의 상식과 인권에 대한 신뢰만으로도 그는 우리의 친구이자 동시대인이 아닐까?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저술가

일본 오사카시립대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 영국 노팅엄대, 독일 프랑크푸르트대에서 연구하고, 일본 오사카대, 고베대, 리쓰메이칸대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영남대 교양학부 명예교수로 있다. 전공인 노동법 외에 헌법과 사법 개혁에 관한 책을 썼고, 1997년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받았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