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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사학의 침략성과 근대성은 상호배타적인가
식민사학의 침략성과 근대성은 상호배타적인가
  • 김종준
  • 승인 2022.08.15 09: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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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식민사학을 비판한다 ② 식민사학의 근대성

올해로 광복 77주년을 맞이했다. 일제강점기로부터 해방된 지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대한민국은 여전히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식민지 근대화론과 좌우 대립 등 이념 갈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과연 한국인은 당파 싸움만 하며 전통만 고수하다가 나라를 빼앗겼을까. 이번에 출간된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 시리즈는 그동안 온전히 드러나지 않았던 일제 식민사학의 실체를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대학·언론·박물관·철도주식회사·조선총독부 등은 과연 어떤 식으로 식민사학을 개발해왔는지 알아본다. 
두 번째는 식민사학의 근대성에 대한 논쟁이다. 서영희 한국공학대 교수는 『조선총독부의 조선사 자료수집과 역사편찬』를 통해 사료의 편향성을 토대로 식민사학을 지적했다. 그래서 식민사학이 과연 ‘실증’적인지 문제를 제기한다. 특히 서 교수는 식민사학을 제국주의와 연동시킨 근대역사학의 침략적 본성이 과소평가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종준 청주교대 교수는 서 교수의 지적은 기존의 ‘식민사학론’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밝혔다. 즉, 식민사학이 근대적 실증을 내세웠으나 결국 침략적 왜곡에 불과하다는 비판은 줄곧 있어왔다. 따라서 그는 실증을 위한 사료 선별에서의 ‘선험적 역사인식’을 따져봐야 한다고 언급했다. 김 교수는 한국사학이 식민사학을 극복하려면 파시즘적 역사인식을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영희 한국공학대 교수의 「식민사학의 근대성, 정말 ‘실증’ 되었나」 읽기

2004년 『교수신문』에서 벌어졌던 ‘고종시대 논쟁’에 참여한 바 있는 서영희 교수는 『조선총독부의 조선사 자료수집과 역사편찬』을 통해 그동안 연구자들이 막연하게 인지하던 일제 식민당국과 관변 학자들의 혐의들을 아주 세밀하게 논증해냈다. 

대표적으로 『고종순종실록』의 부실함이 수집한 자료들조차 ‘의도적으로’ 빠뜨리는 ‘왜곡’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밝혀냈다. 그리고 그러한 ‘역사 왜곡의 의도성’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규명하기 위해 병합 전후의 구관조사사업과 규장각 자료 정리부터 1910년대 『조선반도사』와 1920년대 조선사학회의 『조선사대계』 편찬 작업 등을 거쳐 조선사편찬위원회와 조선사편수회 활동에까지 이어지는 과정에서 참여 인물들의 연속성을 꼼꼼하게 추적했다. 『고종순종실록』 편찬에 앞서 『이태왕실록』이 비밀리에 만들어졌고 양자가 서로 관련되어 있음을 밝힌 점도 사실관계 규명 차원에서 중요해 보인다. 

이 책에서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식민사학의 고종시대사 서술 분량이 적고 중복되는 이유를 밝힌 대목으로, 이는 내가 10여 년 전부터 의문을 품었던 사항들에 실마리를 제공해주었다. 오다 쇼고는 전통적 형식의 『고종실록』을 담당하고, 구로이타 가쓰미의 추천을 받은 다보하시 기요시가 근대적 방식의 『조선사』 제6편 제4권을 담당하는 것으로 역할 분담을 했으며, 이들이 의도적으로 고종과 대한제국의 근대화 노력을 누락시키는 왜곡을 행했다는 것이다. 

 

 

 

얼마나 실증을 잘했는가로 ‘근대성’ 여부 밝히기 어려워

그런데 이러한 작업들의 연구사적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드는 의문 중 하나는 이 연구가 역사학적으로 ‘새로운’ 의미를 갖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큰 틀에서 일제가 제국주의 침략과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한국사를 왜곡했고, 그들의 주장만큼 ‘근대적인 실증이 아니었다’는 비판은 줄곧 있어왔기 때문이다. ‘실증’은 사실을 선별하는 과정에서 ‘선험적인 역사인식’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 ‘선험적인 역사인식’이 무엇인지 따져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근래 ‘식민주의 역사학’이란 용법은 일본의 근대 역사학 전체를 아우르는 조망 속에서 근대주의와 식민주의의 관계성을 탐구하자는 문제의식에서 나온 것인데, 이 책의 주장은 식민사학이 ‘근대적 실증’을 내세웠지만 ‘침략적 왜곡’에 불과하다는 기존의 ‘식민사학론’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은 듯하다.

저자의 이와 같은 문제의식 속에서 해법은 실증 여부를 검토하는 데에 있다. 『조선사』, 『이태왕실록』, 『고종순종실록』 각각에 대해 수집 자료를 제대로 활용했는지 일일이 대조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고종순종실록』을 대신할 ‘근대적 형식의 고종시대사 사료집’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워낙 방대한 작업이라 쉽지 않겠지만, 만약 이러한 ‘새로운 사료집’ 편찬 작업이 이루어진다면 고종시대의 ‘자주적 근대화’ 모습을 복원하는 데에만 치중하지는 않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기존 연구자들이 과연 『고종순종실록』의 역사 왜곡 때문에 고종시대의 ‘자주적 근대화’를 부인하고 식민사학의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인가? ‘민족사학’은 식민사학과 달리 신문이나 근대정부기록류 자료를 제대로 활용하여 실록 편찬에 나설 수 있었을까? ‘식민지배의 정당성’이나 ‘고종시대의 자주적 근대화’라는 역사인식 둘 다 당대 지역민들의 ‘진짜’ 삶과 생각에 무관심하기는 마찬가지라고 본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역사인식으로 귀결된다. 

 

선험적 역사인식의 성격을 규명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

이 책에는 식민사학이 상고사와 최근세사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대의 민족적 기원과 근현대 대외적 요인의 과장은 파시즘적 역사인식의 특징이다. 사실 파시즘은 민주주의의 수사법을 전유하고 자유주의의 폐해를 극복하려 한다는 점에서 나름 ‘근대적’인 이데올로기다. 식민사학이 침략적이면서 동시에 근대적일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는 식민사학을 강력히 비판해온 한국사학이 식민사학을 근본적으로 넘어서지 못한 까닭은, 식민사학의 침략성이 여전히 제대로 규명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파시즘적 역사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한국 역사학에서 ‘파시즘의 잔재’를 더 엄정하게 규명해야 한다고 본다. 

끝으로 간단히 두 가지를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식민사학 편찬 조직의 변모 과정에 조선인들의 참여가 늘어난다는 점에 주목했는데, ‘친일 인사, 친일파 귀족, 친일 단체’ 같은 선험적 역사인식에 얽매이지 않는다면 이들 활동의 자율성을 좀 더 다양한 측면에서 드러낼 수 있지 않을까? 둘째, 기존 연구에 따르면 기쿠치 겐조가 1930년대 쓴 책의 내용은 1910년의 글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일부 사실 오류가 바로잡혔을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기쿠치 겐조가 실록 내용에 직접 관여하고 편찬 과정에서 획득한 자료를 이용해 책을 썼다는 대목은 확인이 필요해 보인다. 

김종준 
청주교육대 사회과교육과 교수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한국근대사로 석·박사를 했다.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을 역임했다. 『고종시대 군주권과 민권의 관계: 고종과 일진회』, 『식민사학과 민족사학의 관학아카데미즘』 등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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