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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연기 메소드를 향한 비움의 미학
진정한 연기 메소드를 향한 비움의 미학
  • 이승건
  • 승인 2021.09.10 0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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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말하다_『강만홍 연기 메소드』 | 강만홍 지음 | 연극과 인간 | 422쪽

비움과 채움, 상생미학이라는 한국적인 예술혼
없음의 미학에서 있음의 의미를 찾으려는 여정

평생 한 분야에서 창작활동을 이어온 예술가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책을 출판하는 일은 자주 목격되는 광경은 아니다. 그러나 연기자 강만홍 선생은 연기수업에서 강의한 내용들을 차곡차곡 채록하여 편집한 연기 전문서적을 내 놓았다. 연기자 겸 예술교육자로서 저자의 자화상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이 책은 연기의 개념(‘연기라는 것’)으로부터 진정한 연기자의 초상(‘연기자가 갖춰야 할 것들’)과 동서양을 넘나드는 연기이론(‘연기교실’, ‘5행’, ‘단전’) 그리고 비움의 미학(’빈 거울‘, ’비우기‘) 등 연기의 기초부터 심도 깊은 과정에 이르기까지 저자만의 연기에 관한 40여 년 동안의 다채로운 무대경험과 교육현장에서의 연기 인생을 응축하는 강만홍식 버전을 속삭이듯 제시하고 있다. 

우선 이 책에서 시선을 사로잡는 단어는 단연 ‘비움’(zero experience)과 ‘메소드’(method)이다. 후자는 요즘 방송매체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트랜디한 용어이자 연기분야의 전문용어이기도 한데, 알려진 것처럼 이 용어는 배우가 극중 배역에 몰입해 연기하는 방법을 뜻한다. 연기에서의 메소드는 배우가 정신과 육체 등 모든 면에서 배역에 온전히 이입되어 배우와 배역이 하나가 되는 형태의 연기 방법으로, 베테랑 배우들에게도 때론 쉽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매소드 연기가 이처럼 힘든 만큼,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관객들이 메소드 연기를 펼친 배우에게 박수갈채를 보내며 열광하는 만큼, 배우들에게 메소드 연기에 대한 갈망은 그만큼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많은 배우들이 자신의 예술적 무게중심에 매소드 연기를 위치시킨다고 한다. 이와 같은 매소드 연기에 대해, 저자는 이 책에서 분명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즉 진정한 연기자를 꿈꾸는 연기학도들에게 몸과 마음을 비울 것을 제안한다. 연기에 대한 욕심으로부터 그리고 온갖 잡념으로부터 비우는 행위를 강조한다. 그리고 들숨과 날숨을 쥐고 있는 숨의 상태를, 이어 그 ‘비우기’(zero experience)의 세계를, 저자 자신이 오랫동안 연기를 하며 체득한 자신만의 경험담을 풀어내며 연기의 아우라로 우리를 초대한다. 

원래, ‘메소드’라는 용어는 17세기 중반 철학분야에서 의미심장하게 사용된 역사성을 지닌다. 즉,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496~1550)가 근대철학의 아버지로 등극하는데 견인역할을 한 자신의 저서 『방법서설』(Discours de la Méhode, 1637)에서 이성에 의한 철학하는 방법을 통해 확실한 지식, 다시 말해 진리를 확보할 수 있다는 그의 야심찬 계획의 심연에 자리 잡은 핵이 바로 ‘방법’(méhode) 이라는 용어와 개념이었다. 이후 20세기 중반, 가다머(Hans-Georg Gadamer, 1900~2002) 역시 근대 과학의 객관주의적 방법론으로 포착되지 않는 진리의 경험과 그 정당성을 밝히는 『진리와 방법』(Wahrheit und Methode, 1960)에서, 서구 인문주의 전통을 비판적으로 조망하면서 진리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역동적인 인간경험의 역사성에 기초한 이해의 산물이라는 새로운 철학적 지평을 제시하기 위해 사용한 개념 또한 ‘방법’(Methode) 이었다. 그러하기에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이 두 철학자들의 야심과 동일한 소망을 연기 분야에서 이루길 원하며 그 자신 이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을지도, 우리는 이 책으로부터 연기의 본질에 다가가는 핵심 방법이 ‘연기 매소드’임을 자연스레 직감할 수가 있다.

이 책에서 눈에 띠는 또 하나의 단어는 ‘비움’이다. 저자는 ‘제로’(zero) 개념의 비움과 ‘엠티니스’(emptiness) 개념의 비움을 통해 연기자의 비움을 역설한다. 때로는 창작을 위한 순간적인 비움(제로)을, 그리고 때론 영원성을 위한 해탈의 비움(엠티니스)을 제시한다(22쪽).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두 가지 비움 모두는 비움과는 정반대의 개념인 ‘채움’(fullness)과 만나도록 하고 있다. 즉, 지워버린 그 자체로서 비움(제로)이지만, 이 비움(제로)은 새로움의 자궁 같은 공간이라는 철학적 사유를 피력한다. 따라서 저자에게 비움(없음)은 ‘모든 공간을 잉태하는 시작이며 연기자가 잉태한 극중 인물을 태어나게 하는 자궁 같은 공간’이라고 주장한다(148쪽). 이와 같은 저자의 ‘비움’에 대한 사유는 ‘있음’(有, 存在)을 다루는 서양미학의 내용과는 전혀 다른 의미체계를 구성하는 ‘없음’(無, 虛)의 예술, 즉 부재(不在)의 미학을 드러낸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 전통수묵화의 ‘빈 공간’(虛)으로서 ‘여백’(餘白)은 말할 것도 없고, 김소월의 「금잔디」(‘가신님 무덤가’)나 한용운의 「님의 침묵」(‘님은 갔습니다’) 더 나아가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에서처럼, 즉 ‘없음’(無, 비움)에서 ‘있음’(有, 채움)의 의미를 찾으려는 우리의 전통적인 예술성향처럼, 저자는 비움과 채움의 상생미학이라는 한국적인 예술혼과 맞닿아 있는 듯 보인다. 

여러모로 『강만홍 연기 메소드』는 독특하다! 앞서 언급한 내용에서도 그렇거니와, 책을 기술해 나가는 서술방식에서도 특이하기 때문에 그렇게 불릴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예술이론서는 통상 문어체로 서술한다. 왜냐하면 문어체가 일상대화의 구어체보다는 좀 더 논리적이라고 느껴지기 때문에 학술풍의 글은 문어체를 선호한다. 그러나 이 책은 구어체로 구성되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이 책의 독자층(문어체에 익숙하지 않은 연기전공 예비예술가)을 고려한 저자의 배려라고 생각되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저자가 이 책 「머리말」(“전형적인 글로 만들어져야 되겠다는 생각보다는 노래처럼 또 춤추듯이 그렇게 다가가고 싶었다.”)에서 밝히고 있듯이, 즉흥 공연을 하듯 강의를 하면서, 저자의 경험을 보따리 풀 듯 구어체로 풀어내어, 딱딱하지 않고 자유스럽게 구성하고 싶은, 저자의 의도가 짙게 깔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을 비우고 내면의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내 안의 본능을 찾아가는 과정은 비단 연기를 꿈꾸는 예비 연기자들에게만 요구되는 사항은 아니다. 이는 다양한 예술장르에서 미래의 예술가를 꿈꾸는 수많은 예술학도들에게도 동일하게 해당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일상을 영위해 가는 일반인들에게도 필요한 사항일 것이다. 우리 모두 이 책을 통해 자신을 비우고, 또 다른 자신을 채울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길 기대해 본다.

 

 

 

이승건
서울예술대 교수ㆍ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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