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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차이나는 한·일 우주기술…우주로켓 꿈꾼다
30년 차이나는 한·일 우주기술…우주로켓 꿈꾼다
  • 유만선
  • 승인 2023.06.15 08: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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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만선의 ‘공학자가 본 세상’ ㉑

2006년에 필자는 기계공학 박사과정의 끝자락에 있었는데, 때마침 단기 해외연수를 갈 기회가 주어졌다. 연수기관으로는 2001년 약 두 달 정도의 짧은 기간으로 다녀온 일본의 항공우주연구소가 떠올랐고, 당시 랩을 이끌던 분이 흔쾌히 허락해 ‘일본항공우주개발기구(JAXA, Japan Aerospace eXploration Agency)’라는 연구기관으로 6개월간 연수를 떠나게 됐다. 2006년 2월, 박사학위를 위한 실험을 끝마치느라 정신없던 연구실에서 빠져나와 하루 만에 일본의 조용한 시골마을 기차역 벤치에 커다란 여행가방을 곁에 두고 앉아 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일본 연구소에서 본 오래된 항공우주 실험장치. 사진=유만선

연구소에서의 생활은 낯설면서도 정말 즐거웠다. 필자를 초청해 준 랩장님이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어 차 없이 뚜벅이로 생활해야 했음에도 연구소에 쉽게 출퇴근할 수 있어 편했다. 같은 랩의 동료들과도 금방 친구가 되어 볼링을 치러 가거나 새벽까지 술을 마시며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였다. 한 나이 많은 일본 연구자분이 술에 취해서 한국인들의 뛰어난 ‘열정’이나 ‘소통능력’이 부럽다며 이야기할 때는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도 했다. 일본연구소의 편안한 근무환경 그리고 친절하고 상냥한 동료들 속에서 즐거웠지만, 연수기간 중에 내 마음을 무겁게 한 것도 있었다.

처음 연구소에 가서는 실험 장치를 보고 입이 벌어졌다. 당시 필자가 마음껏 실험을 해 볼 수 있었던 장치는 공기를 소리 속도의 8배 정도까지 빠르게 하여 실험용 모델을 지나가게 할 수 있는 ‘초음속 풍동(supersonic wind tunnel)’이었는데, 이러한 장치를 이용하면 로켓(rocket)이나 램젯(ramjet)과 같이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비행체 안팎에서 생기는 열역학적-유체역학적 현상을 관찰해 볼 수 있었다. 당시 한국에서 다니던 대학이나 관련 연구기관에서 이런 장치는 쉽게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일본연구소에서 처음 만난 초음속 풍동 장치는 이미 이곳저곳이 빨갛게 녹슬어 있었다. 이미 수십 년간 일본의 항공우주분야 연구자들에게 온갖 실험 결과를 내주며 제 역할을 다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6개월 간 관련된 실험을 하면서 그곳 연구자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전문성에 다시 한번 놀랐다. 그곳에서 했던 실험에 대해 6명 정도의 연구자와 기술자가 함께 지원했다. 하루에 약 4~5차례의 실험에 대해 기계장치, 통신, 데이터확보 등 각자 맡은 파트대로 척척 움직이는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다. 어느 날인가 초음속 풍동에 들어가는 공기를 압축하는 집채 만한 크기의 압축기성능이 궁금해서 현장 기술자분께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자기 방으로 안내해서 책장에 꽂혀있는 수십권의 노트 속에서 관련된 기록을 찾아내는 것을 보고는 학교 연구실에서 필요한 데이터만 대충 뽑아내 논문을 쓰던 필자의 모습이 생각나 부끄럽기까지 했다.

당시 일본과 한국의 항공우주기술 차이가 30~40년이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일본에서는 오래된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었던 실험 장치를 보면서, 또 수십 년간의 많은 경험을 바탕으로 실험을 조언하고, 지지하던 전문성 넘치는 일본 연구자들과 함께 일하면서 필자가 들은 말에 조금의 과장도 없다고 믿게 됐다.

마지막으로 두 나라의 항공우주기술 격차에 대한 생각에 쐐기를 박게 된 계기가 있었다. 어느 날 한 일본인 동료가 구경시켜줄 곳이 있다며, 필자가 일하던 연구지역과 마주 보고 있는 차 길 건너 편의 다른 연구지역으로 안내하였다. 조금 걷다 보게 된 그곳에는 수백 미터는 되어 보이는 길이의 거대한 터널이 있었는데 분명히 실험시설의 일부로 보였다. 일본인 동료는 그곳이 일본의 대표 우주로켓인 H-II로켓의 2단 엔진을 지상에서 실험하기 위한 곳이라고 알려주었다.

우주로켓의 2단 엔진은 지상이 아닌 우주공간 가까운 곳에서 연소가 되기 때문에 공기가 희박한 곳에서 실험을 해야 한다. 거대한 터널 속에 로켓엔진을 놓고 점화 및 연소를 하게 되면, 마치 빨대를 입으로 세게 불 때 빨대 속의 압력이 낮아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터널 속의 공기밀도가 매우 낮아지게 된다. 지상에서도 마치 우주공간과 같은 높은 곳에서의 환경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그곳을 빠져나오면서 일본 동료는 필자에게 한국에도 비슷한 시설이 있는지 물었다. 순수한 질문일 수도 있었겠지만 거대한 연구비를 지원받아 이런 시설을 만들고 운영하는 나라의 연구자가 아직 우주로켓을 꿈만 꾸고 있던 한국에서 온 초라한 예비 공학자에게 던진 질문이었기에 무척 마음이 무겁고 슬펐던 기억이 난다.

지난달 25일 오후 6시 24분, 누리호가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되는 모습이다. 우리나라는 세 계 7번째의 자력 위성 발사국이 됐다. 사진=한국항공우주연구원

얼마 전 누리호의 3차발사가 전남 외나로도 우주센터에서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심지어 탑재부에는 진짜 인공위성을 싣고서 말이다. 세계 7번째의 자력 위성 발사국이 되었다는 뿌듯함과 함께 2006년의 침울했던 내게 이렇게 외치고 싶다. “조금만 기다려 보라고! 우리도 금방 멋진 우주로켓을 갖게 될 거야!”

 

 

 

유만선
서울시립과학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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