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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만선의 ‘공학자가 본 세상’③] AI와 인간, 세심한 ‘마늘 까기’ 대결
[유만선의 ‘공학자가 본 세상’③] AI와 인간, 세심한 ‘마늘 까기’ 대결
  • 유만선
  • 승인 2021.03.02 08: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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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과 공익은 인간 최후의 영역
직업의 47%, AI로 타격 입는다

최근 미국의 인공지능 회사인 ‘OpenAI’에서 신기한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선보여 화제가 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아보카도 안락의자’나 ‘무용치마를 입고 강아지와 걷는 무’ 등 사용자가 입력한 글을 읽고, 마치 사람이 머릿속에 관련된 그림을 떠올리듯 입력된 글에 들어맞는 그림을 완성하여 화면에 나타내었다. 인공지능이 그린 그림이 얼마나 근사하던지 회사에서는 유명한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이름을 빌려 이 인공지능의 이름을 달리(DALL-E)라고 지어주었다.

인간에게 쉬운 일이 인공지능에겐 어렵고, 그 반대도 성립한다. 일명 '한스 모라벡의 역설'이다.
그는 로봇공학자로서 카네기멜론대 교수다. 사진=한스 모라벡 홈페이지(카네기멜론대)

재미있는 사실은 인공지능 화가 ‘달리’가 대중에게 보여준 것보다 훨씬 많은 작품을 만들어 내며, 만들어 낸 작품에는 의뢰인의 요구에 맞지 않는 졸작들이 다수 섞여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또 다른 인공지능 ‘클립(CLIP)’의 역할이 중요해 진다. ‘클립’은 언어-이미지 대조를 위한 사전학습(Contrastive Language-Image Pre-training) 프로그램으로 인간이 평범한 언어로 표현한 것에 맞는 이미지를 찾는 훈련을 받았다. 인공지능 ‘달리’가 만들어 낸 많은 작품들에 점수를 매겨 졸작들은 걸러내고 표현된 언어에 맞는 작품들을 찾아내는 일을 ‘클립’이 한다. 사람들을 놀라게 한 인공지능의 예술 작품은 두 인공지능의 협업으로 탄생한 것이다.

클립은 보다 괜찮은 예술작품을 걸러내는 역할도 하지만, 자율주행차의 인공지능 학습을 위한 이미지 추출에도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개발자 측의 이야기다. 차가 도로를 다니면서 겪게 될 많은 상황들, 예를 들면 ‘주행신호인데 사람이 횡단보도에 뛰어 들어온다’던가 ‘좌회전 중에 반대편 차선의 차가 다가온다’와 같은 문장으로 표현되어야 할 나름 복잡한 상황들에 대해 인공지능을 학습시킬 수 있는 적절한 이미지들을 클립은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클립, 인공지능 결과물 걸러내

인공지능 ‘달리’의 활약을 보면 인간의 창의성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창의성은 ‘새롭고, 독창적이고, 유용한 것을 만들어 내는 능력’으로 정의된다. 유명한 동물학자 제인 구달 박사가 도구를 사용하는 침팬지를 관찰하여 인간이 아닌 동물들에도 창의성이 있음을 확인시킨 바 있지만, 이제는 인간이 만든 기계조차도 독창적인 그림을 그려내는 능력을 보이며 창의적 존재의 반열에 올라서는 상황이다. 한때, 지구 상에서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 스스로를 인식하고, 자만하던 인간이 겸손해져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생긴 것 같다.

높은 수준의 사고를 필요로 하는 창의적 활동에서 두각을 보이는 고등한 AI가 나타났으니 이제 인간과 비교하여 못하는 일이 있을까 싶다. 하지만, 의외의 곳에서 AI는 쩔쩔맨다. 예를 들면, ‘마늘 까기’가 그렇다. ‘마늘’을 정의하고, ‘마늘’이라는 단어를 이용한 멋진 글짓기를 하며 심지어 식탁 위에 놓인 물건들 중에서 ‘마늘’을 정확히 분별해 낼 수는 있겠으나 아직까지 AI는 마늘을 인간처럼 세심하게 다듬을 수 없다. AI에게 감정이 있다면 부엌에서 칼을 쥐고 둥그스름한 마늘을 뭉개지지 않게 적절한 힘으로 잡은 후, 그 얇은 껍질을 하나씩 벗겨내는 작업을 어렵지 않게 수행하는 인간의 모습에 무한한 경이감을 가지리라!

인간과 AI의 이러한 차이는 1980년대 미국의 과학기술자인 한스 모라벡(Hans Moravec)에 의해 이미 설명된 바 있다. 모라벡은 “컴퓨터가 지능 테스트에서 성인 수준의 성능을 보이게 하는 것은 비교적 쉽지만 오히려 지각하고 이동하는 등의 쉬운 기술을 제공하기는 더 어렵거나 아예 불가능하다”라고 했다. 인간에게 어려운 지적 활동이 컴퓨터에게는 쉽고, 인간에게 쉬운 감각적, 신체적 활동이 컴퓨터에게는 어렵다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최고 의사결정하게 될 AI

한편, 창의적, 지적 영역에서 AI의 도약은 미래 직업 환경의 변화에 대해서도 생각할 바를 던져준다. 기존 컴퓨터 기능만으로도 거대한 조직에서 중간 관리자들의 역할은 위협받아 왔다. 2013년 프레이(Frey)와 오스본(Osborne)은 「직업의 미래: 컴퓨터화는 직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라는 옥스포드 마틴스쿨의 논문에서 약 47%의 직업이 컴퓨터화에 영향을 심하게 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에는 영업 및 관리업, 서비스업 등이 포함되어 중간 관리직들의 위기를 재확인시켰다. 이와 더불어 컴퓨터 속 AI의 발달은 주어진 조건에서 최고의 효과를 내는 방법을 찾는 추론능력 등에서 인간을 앞서며 단순관리 능력을 넘어 멀지 않은 미래, 최고 의사결정 과정에 있어서도 일부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렇다면 남아있는 인간의 영역은 무엇일까? 인간사회에서의 ‘도덕적, 공익적 가치 판단’에 대한 부분이 AI에게 그 역할을 넘기지 않은 채 최후까지 남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인간다움’이라던가 ‘함께 살아가기’와 같은 주제들에 대해서는 누구나 공감하지만 막상 ‘방역을 위한 활동제한 범위’라던가 ‘기본소득 도입여부’와 같은 구체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는 살아가고 있는 시대나 장소에 따라 일관된 답이 없어 시민들의 많은 생각과 토의 그리고 합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유만선 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

연세대에서 기계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3년 국내 최초 공공 메이커 스페이스인 ‘무한상상실’을 운영했으며, 팟캐스트와 유튜브에서 공학과 과학기술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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