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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와 유니버스
메타버스와 유니버스
  • 유만선
  • 승인 2021.06.28 09: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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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만선의 ‘공학자가 본 세상’ ⑤

 

가상세계의 친밀함이 오프라인으로 확장돼
멀티버스와 유니버스 사이의 균형이 필요

내가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를 다녔던 1980년대 어린이들에게 인기있었던 곳은 ‘지능계발’, ‘인공지능’ 등의 사인이 붙어있던 동네 오락실이었다. 당시 오락실에는 지금 보면 픽셀이 훤히 보이는 수준의 비행기를 조종해서 외계에서 온 악당들을 물리치거나 막대기를 좌우로 움직여 가며 공을 받아쳐 내어 벽돌을 깨는 등 단순하기 짝이 없는 수준의 게임들이 어린이들의 코 묻은 돈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일상에서 빠져나와 그곳에 머무는 동안은 현실과 떨어진 또 다른 세상을 즐기는 재미가 쏠쏠했다. 심지어 가끔 무서운 형들을 만나 돈을 빼앗기는 위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렇게 나는 어릴 때부터 작은 가상세계에서 놀곤 했다.

성인이 되어 대학 생활을 즐기던 1990년대 후반, 하이텔이나 나우누리와 같은 PC통신 서비스를 통해 비록 글자를 통해서이지만 ‘네트’로 연결된 훨씬 더 넓어진 세계를 맛볼 수 있었다. 그곳에 가면 좁은 학교 동아리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전국 단위의 영화나 연극모임 클럽에서 활동할 수 있었고, 실제 가상세계에서의 ‘뜻맞음’이 오프라인 모임 등으로 연결되면서 서로 평생 알고 지낼 수 없었던 사람들이 먼거리에서도 생각을 공유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PC통신 속 ‘채팅방’에서 이루어진 두근거리는 남녀 간의 채팅도 빼놓을 수 없는 ‘가상세계’에서의 즐거움이었던 것 같다.

2003년 출시된 3차원 가상세계 세컨드라이프 화면 캡처. 

최근 들어 발달된 기술들이 적용되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퍼지고 있는 실감나는 ‘가상세계’로서 ‘메타버스’라는 개념이 인기다. 메타버스는 크게 네 종류로 구분하는데 가상의 물체가 현실에 덧씌워져 표현되는 증강현실과 실재 나의 삶의 조각들을 영상이나 사진, 음성, 글로 인터넷에 올리고 타인과 공유하는 라이프로깅, ‘맛집지도 서비스’나 ‘택시 서비스’와 같이 현실에 기반하여 내가 스스로 알기 어려운 정보를 덧씌운 가상세계를 제공해 주는 미러월드, 마지막으로 초등학교 때 내가 즐겼던 게임과 같이 세상과 완전히 분리된 새로운 세상인 버추얼월드가 있다. 

새롭게 창조된 버추얼월드 또한 현실세계의 영향을 받는데 얼마 전에 수억 명의 가입자를 보유한 메타버스 서비스회사의 직원과 나눈 대화가 이를 뒷받침한다. 그 회사는 이용자 간의 소통공간으로서 버추얼월드를 제공하고 있었는데 세계적으로 다양한 나라에서 아바타를 통해 접속한 이용자들이다 보니 ‘가상세계’ 서비스임에도 실제 세상 속 각 나라의 사회문화적 배경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그는 그 사례로 아랍권에서 접속한 여성들은 히잡 아이템을 자주 구매한다는 것이나 이란과 파키스탄 국적의 이용자들이나 한국, 중국, 일본 국적의 이용자들은 현실 세계에서의 국가 간 갈등 때문인지 서로 잦은 다툼이 있다는 것 등을 말해 주었다. 

 

가상세계지만 사회문화적 배경도 반영

어찌 되었건 시간이 흐를수록 ‘가상세계’ 속에서의 경험이 커져가는 상황은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세계적인 현상이다. 실제 가상세계에서의 경제, 문화활동은 세계적으로 큰 증가추세에 있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달, 그리고 그 속에서 생겨나는 새로운 인간의 욕구가 가상세계의 규모를 크게 키웠다. 그 욕구는 ‘인간 세상으로부터의 도피’와 관련된 것일 수도 있고, ‘인간관계의 확장’과 관련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로 인해 ‘가상세계’에 생성된 정보의 총량은 2020년 기준 약 64.2제타바이트(1제타바이트는 10억 테라바이트)에 달한다고 하는데 이는 미국 의회도서관에 소장된 자료의 9천 배가 넘는 양이라고 하니 그 규모를 가늠키 어려울 정도이다. 또한, 이곳에서의 경제활동 규모도 크게 늘어나는 중인데 국제무역협회의 자료에 따르면 2019년 전자상거래 시장규모는 2조 달러로 글로벌 소매유통 시장의 13%를 넘게 차지하고 있다.

스스로 만든 가상세계 속 커져가는 인간들의 활동과 그로 인한 경제적 효과를 바탕으로 다시 더욱 커지는 가상세계의 순환구조 속에 자칫 실제 세상에 대해 이해하려는 노력과 투자가 낮아질까 염려되기도 한다. 외계의 지적생명체가 지구에 나타나지 않는 이유가 외계인들이 스스로 만든 가상세계 속에 안주하다 보니 우주탐사를 중단해서 그럴 것이라는 한 지인의 재미난 해석이 그럴듯하게 들리는 요즘이다. ‘멀티버스’와 ‘유니버스’ 사이에 적절한 균형이 필요한 때이다.

 

 

 

 

유만선 
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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