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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에서 배우는 나이듦의 지혜
게임에서 배우는 나이듦의 지혜
  • 도영임
  • 승인 2023.07.21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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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중심에서 심리학을 외치다_ 여섯 번째 주제 ‘웰에이징 시대’②
도영임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초빙교수

‘내 삶의 심리학 마인드’와 <교수신문>이 함께 ‘세상의 중심에서 심리학을 외치다’ 공동 기획을 마련했다.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주제를 다양한 관점으로 들여다보는 주제탐구 방식의 새로운 기획이다. 한 주제를 놓고, 심리학 전공 분야의 마음 전문가들이 다양한 시각과 분석을 통해 독자의 깊이 있고 입체적인 이해를 돕는다. 마음 전문가의 눈에 비친 세상의 모습은 길을 잃은 현대인에게 길잡이가 될 것이다. 몸과 MBTI, 학교 정글, 중독에 빠진 대한민국, AI시대의 심리학에 이어 여섯 번째 주제로 ‘웰에이징 시대’를 다룬다. 도영임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초빙교수의 두 번째 글이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무수한 절망의 순간에서 벗어나 
자기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듦의 지혜는 특별한 사람만 누리는 희귀한 선물이 아니다. 
모두에게 열려 있고 한평생 반복되는 배움의 결과이다. 

인생은 참으로 신비로워서 시작점에 서 있을 때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지만, 지나고 나서 되돌아보면 마치 이미 예정되었던 길을 따라왔던 것이 아닌가하고 느껴진다. 인생에서 만난 수많은 우연이 마치 필연이자 운명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우연이 필연이 되는 인생

지난 현충일에는 오랜만에 돌아가신 지도교수의 산소에 잠시 다녀왔다. 26년 전 겨울, 홀연히 세상을 떠났던 당시의 교수님보다 나는 나이를 한 살 더 먹은 중년이 되었다. 성인발달 과정과 나이듦의 신비 그리고 인간 행동의 변화를 이해하고 싶은 호기심과 열망에 이끌려 박사 과정에 진학했다. 그러나 나를 기다리던 현실은 갑작스러운 지도교수의 상실과 연구 중단이었다. 
그 후 새로 부임한 지도교수 덕분에 사이버 공간, 디지털 세상, 게임 문화에 눈 뜨게 되었다. 최근에는 박사 학위를 마친 제자와 함께 중노년층 게임 플레이어의 마음과 행동을 이해하는 연구를 할 수 있었다. 20대에 멈춰 섰던 노년 심리 연구를 50대에 게임학과 융합해 다시 시작하게 된 것이다. 아마도 그때보다 지금이 이 주제 연구를 더 갖춰진 마음으로 잘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느 게임이 주는 질문, ‘삶의 의미’

「고로고아」는 삶의 숨은 의미가 무엇인지 질문하는 퍼즐 게임이다. 소프트웨어 개발자 제이슨 로버츠가 6년에 걸쳐 자기 손으로 한 장씩 그린 그림을 모아서 만들었다. 「고로고아」의 그림 이야기 퍼즐은 다양한 기억의 조각이 서로 교차하면서 우연히 연결되었다가 흩어지고, 그것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숨겨진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마음의 흐름을 보여준다. 이 게임은 인간 경험의 재창조 과정이 가진 신비로움을 생생하게 그려내는 시적 은유를 담고 있다.

2017년 개발된 내러티브 퍼즐게임인 「고로고아」. 4개의 칸 위에 그림을 조절하면서 그림 사이에 숨겨진 내러티브를 찾는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매 순간 파편화된 과거·현재·미래의 시간을 동시에 마주한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5가지 색깔의 과일을 차례로 모으는 과제를 해결하고 미지의 용을 찾아야 한다. 게임을 처음 시작할 때는 젊은이가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인가 생각했다. 그런데 뒤로 흘러갈수록 한 노인이 삶을 되돌아보며 젊은 시절의 자신과 다시 만나 무언의 대화를 나누는 인생 회고의 과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5가지 색깔의 과일은 인생의 단계를 상징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게임을 구성하는 하나의 활동 단위가 된다. 각기 다른 색깔은 각기 다른 가치를 담고 있다. 빨강은 아동기이자 희생의 가치를, 녹색은 청소년기이자 구원을, 노랑은 청년기이자 추구를, 파랑은 중년기이자 의례를, 그리고 마지막 보라는 노년기의 창조를 뜻한다. 인생의 각 시기마다 겪는 삶의 도전과 성취, 상실과 극복, 그리고 절망과 환희의 양극성을 표현한다.

게임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노인은 하늘을 우러르며 지혜의 용이 가진 눈이 상징하는 보이지 않는 것을 꿰뚫어 보는 통찰의 힘과 하나가 된다. 한평생에 걸쳐 그렇게 그리워하고 애타게 찾아 헤매던 바로 그 용을 그렇게 만나는 것이다. 

절망을 넘어서는 삶의 통합

이러한 합일의 경험은 어떤 위대한 사람만 달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숨은 희망을 발견하고, 다리를 다쳐 몸이 불편해도 구도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나와 타인을 위해 작은 촛불을 켤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면 된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삶을 지키며 오롯이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 있는 깨달음의 기회임을 「고로고아」는 말없이 보여준다. 

전생애 발달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은 인생의 8단계 이론을 제시하면서 가장 마지막 단계로 ‘자아통합 대(對) 절망’이라는 양극성을 설명했다.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자기의 부족함과 한계에 대해서, 인간의 유한성과 사회적 제약에 대해 단 한번도 절망해 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오히려 그러한 절망에도 불구하고 그만하면 괜찮다고 스스로 위로하고 내 인생에 최선을 다한 것이라고 자기에게 나지막이 속삭여 줄 수 있다면 그는 자기의 삶을 통합하는 지혜의 빛을 발견한 것이다. 

나이듦의 지혜는 철학자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모두에게 열려 있고, 한평생 반복되는 배움의 결과다. 렘브란트의 「명상 중인 철학자」, 1606년, 패널에 유채.

모두에게 열려 있는 나이듦의 지혜

게임에 비춰 잠시 생각해 보니 나는 지난 현충일에 돌아가신 지도교수만 만나고 돌아온 것이 아닌가 보다. 갑작스러운 상실과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해 깊이 절망하던 20대의 나를 함께 만나고 돌아온 것이다. 이제는 상실의 고통을 담담히 마주하고 젊은 날의 내 모습을 스스로 안아줄 수 있을 만큼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보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무수한 절망의 순간에서 벗어나 자기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듦의 지혜는 특별한 사람만 누리는 희귀한 선물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삶을 잠시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그 뜻을 되새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다면 모두에게 열려 있고 한평생 반복되는 배움의 결과가 될 것이다. 

도영임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초빙교수
연세대 심리학과에서 온라인 게임 이용자의 자기 인식과 자기 변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카이스트 Serious Game Lab 선임연구원을 거쳐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Games and Life Lab을 이끌며 디지털 게임 경험과 삶의 경험이 연계되며 발생하는 플레이어의 행동 및 인식 변화와 사회 문화 현상을 전생애 발달 심리학적 접근으로 분석하는 연구를 수행한다. 최근에는 라이프 미디어로 미래 게임의 진화를 상상하면서 ‘게임의 예술적 경험에 대한 플레이어 선호 유형’, ‘게임과 메타버스의 접근성과 포용성’, 그리고 ‘게임과 메타버스의 지속 가능성과 확장성’을 탐구하고 있다. 대표 공저서로 『포스트 메타버스』(2022), 공역서로 『디지털 시대의 청소년 읽기』(201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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