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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만선의 ‘공학자가 본 세상’ ④] 생각 읽는 칩
[유만선의 ‘공학자가 본 세상’ ④] 생각 읽는 칩
  • 유만선
  • 승인 2021.05.19 0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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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기술과 숫자에는 익숙하지만 연애에는 아마추어인 공돌이로서 가장 어려운 것이 ‘여자 사람’의 생각을 읽는 것이었다. 소개팅이나 미팅에서 만난 상대 여성에게 잘 보이고 싶어도 떨리는 마음에 꺼낸 썰렁한 농담이나 지금 생각하면 상대가 당황할 몇몇 행동들로 인해 원하던 것과 정반대의 결과를 맞이했던 경험이 많았다. 

이런 경험 때문인지 다음 소식이 나에게는 꽤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지난달 9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회사 ‘뉴럴 링크(Neuralink)’는 페이저(Pager)라 불리는 9살짜리 원숭이가 생각만으로 비디오 게임을 하는 장면을 유튜브를 통해 공개 했다. 페이저의 뇌에는 ‘링크0.9(LINK0.9)’라는 칩이 심겨졌는데 이 칩은 동전보다 약간 큰 형태로 쉽게 눈에 띄지 않으며 수천 개의 채널을 통해 뇌에서 발생하는 신호를 빠르게 읽어 들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무선충전 방식으로 칩을 충전하고, 하루 종일 사용할 수 있어 휴대성도 뛰어나다. 

작년 뉴럴링크는 이미 거트루드(Gertrude)라 불리는 돼지의 뇌에 링크0.9를 심어 뇌 신호를 읽는 데 성공했지만 이번에는 단 순한 신호추출이 아닌 뇌 신호를 분석하여 원숭이가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었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었다. 작년 발표 때에는 뇌에 칩을 심는 브레인 임플란트(brain implant) 로봇 ‘V2’도 함께 선보였는데 이 로봇은 뇌 속의 혈관을 피해가며 지름 5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 미터)의 미세한 전기선을 심어 1시간 내에 칩과 뇌를 연결할 수 있다고 한다. 회사 측은 미래에 뇌에 칩을 심는 행위가 ‘라식 수술’과 같이 간단하고 안전해질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브레인칩 링크(LINK)를 뇌에 삽입한 원숭이 페이저가 게임하는 장면. 오른쪽 아래 조이스틱에 선이 분리된 것 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뉴럴링크사 유튜브 캡처 

뇌 신호로 원숭이의 생각 읽어내 

뇌에 칩을 이식하는 브레인 임플란트의 시초는 1870년 독일의 과학자인 에드워드 히치(Eduard Hitzig)와 구스타프 프리체 (Gustav Fritsch)까지 올라간다. 이 둘은 마취를 하지 않은 개의 대뇌 이곳저곳에 전기자극을 주었을 때 개의 특정 근육이 수축되는 것을 관찰함으로써 대뇌의 어떤 곳에는 신체 운동을 담당하는 신경이 위치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1953년 올즈(James Olds)와 밀너(Peter Milner)는 캐나다의 맥길대에 박사 후 과정 연구를 하던 도중, 쥐의 뇌 특정 부위에 전극을 꽂아 두고, 쥐가 실험영역에 들어오면 전기 자극을 주는 조건을 만들었더니 쥐가 실험영역 내에 계속 머무르려고 하는 것을 관찰하였다. 뇌의 특정 영역을 자극하면 쾌락을 준다는 것을 알아낸 순간이었다. 

한편, 뉴럴링크의 성과와 같이 뇌의 신호를 읽어낸 성공적 사례로 2016년 데니스 디그레이(Dennis Degray)가 보낸 휴대폰 문자가 있다. 그는 10여 년 전, 불행한 추락사고로 신체마비 환자가 되었으나 미세전극을 뇌의 운동피질(motor cortex)에 시술받은 후, 화면에 있는 자판을 뇌로 선택하여 입력함으로써 친구의 휴대폰에 문자를 보낼 수 있었다. 

뉴럴링크는 앞선 기술성과를 바탕으로 신체가 마비된 환자들의 컴퓨터나 휴대 전자기기 사용을 돕는 사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계속된 투자를 통해 자판의 조작과 같은 운동 능력뿐 아니라 시각 및 청각과 같은 다른 감각 부위에 문제가 생긴 환자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쪽으로 기술 개발 방향을 확장시킬 것으로 보인다. 

마비 환자 등에 대해 큰 희망을 주는 뇌 신호 측정 및 분석기술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메시지를 던진다. 우리 인간이 생각하고, 느끼는 대부분의 심리적 활동이 실은 뇌를 구성하는 세포 즉 뉴런들의 광대한 네트워크 위를 흐르는 전기화학적 신호들에 불과하다는 것 말이다. 조이스 틱을 움직이는 것과 같이 사람 간의 차이가 적은 ‘생각’ 외에 ‘사랑’이나 ‘정의’와 같이 사람마다 차이가 있는 보다 추상적인 ‘생각’들도 전부 일반화하는 것이 가능하냐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목소리도 있지만, 뉴럴링크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 창업자 일론 머스크의 꿈인 인간 뇌 와 AI의 결합에 이르기 위해서 말이다. 

 

 

 

유만선 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

연세대에서 기계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3년 국내 최초 공공 메이커 스페이스인 ‘무한상상실’을 운영했으며, 팟캐스트와 유튜브에서 공학과 과학기술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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