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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가고 유학가야 하는데 … “빚지느니 꿈을 팔겠다”
대학원 가고 유학가야 하는데 … “빚지느니 꿈을 팔겠다”
  • 최성욱 기자
  • 승인 2011.02.28 14: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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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금 특집

한 학기 등록금이 5백만원에 육박하자 대학은 생기를 잃어가고 있다. 강의실이든 학과·동아리 방이든 악착같이 살맞대고 맞붙어 앉아 ‘대학의 낭만’을 노래하던 광경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 자리엔 악다구니 써가며 졸업을 벼르는 학생들이 차지하고 있다. 또 다른 한켠에서는 낸 만큼 돌려받기라도 하자며 새 학기를 벼르는(?) 학생들도 눈에 띈다. 이제 학생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등록금의 시대가 왔다.

<교수신문>은 한국 대학의 등록금 문제를 놓고 논쟁의 장을 꾸려봤다. ‘깎느냐, 깎이느냐’라는 경제적 시선에서 조금은 자유롭게, 그러나 핵심은 놓치지 않으려 했다. 이제 등록금 문제를 푸는 데 대학교육에 활력을 불어넣을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연세대 중앙도서관
실습실 창밖으로 해가 기운다. 벌여놨던 실습도구를 챙길 시간이다. 과제를 바리바리 싸던 미대생들은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하는 친구들을 물색했다. 좁은 자취방으로 옮겨진 실습과제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자취방 창밖으로 해가 떠오르면 실습도구를 챙겨 학교로 돌아가곤 했다.

겨우내 실습실은 늘 싸늘했다. 전기세를 아낀다는 이유였다. 난방은 둘째치고 오후 6시가 되면 강의실을 잠궈버리니 도리가 없었다. 해가 떨어지면 강의실을 비워줘야 하는 건 밤샘작업이 많은 미대생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난해 수도권 ㅅ대 미술대학을 졸업한 ㅇ씨(25세, 시각디자인 전공)는 “난방비, 전기료 아끼려고 추위에 떨고, 과제도 맘 놓고 못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학교 건물만 늘었어요. 교육의 질은 개선될 기미가 없는데 매년 등록금은 오르죠.”

ㅇ씨는 사실 등록금을 제 손으로 마련해 본 적이 없다. 게다가 휴학 한 번 없이 4년을 내리 다녔다. 등록금이 매년 오르니 휴학하는 것보다 빨리 졸업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부모의 권유 때문이었다. 거액의 등록금 부담을 안은 가족들과 ㅇ씨는 주위를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졸업한 지 어느새 1년이 지났고, ‘학자금 빚’도 없지만, 등록금 얘기를 꺼낼 때마다 붉어지는 눈시울은 어쩔 수 없어 보였다.

ㅇ씨의 부모는 500만원이 넘는 등록금을 마련하려 통장을 따로 만들었다. 중학교를 다니던 동생의 학비와 4인 가족 생활비를 빼더라도 3~4개월마다 등록금 납입일자를 맞춰야 했다. 등록금의 굴레는 미술대학을 선택하면서부터 시작됐다. ㅇ씨가 입학을 앞둔 해, 겨울방학 입시특강(학원비)에 300~400만원을 쏟아부었다. 합격자 통보를 받고 입학비와 등록금으로 600만원을 냈다. 입학날짜가 다가오면 1천만원이 필요하다.

운이 좋게도 ㅇ씨는 졸업과 동시에 취업에 성공했다. 미술학원 강사자리가 났다. 대학입시준비반에서 고등학생들을 지도한다. 지금 ㅇ씨의 목표는 ‘유명한 학원강사’다. 명문대 진학률을 높이면 본인의 몸값도 오를 것이라 믿고 있다. 학생이나 학부모들은 일단 대학에 붙여놓고 보자는 식이다. 그 마음을 아는 ㅇ씨는 학생들을 보면 안쓰럽다. 언제부턴가 재수를 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게 제1의 목표가 됐다.

ㅇ씨는 처음부터 학원강사가 꿈은 아니었다. 대학 다닐 땐 광고·기획 대행사에서 아트디렉터가 되고 싶었다. “대학원을 진학하거나 유학을 가야 하는데 더 이상 부모님께 손 벌릴 수 없었어요. 빚을 지자니 ‘빚이 빚을 낳을 것’ 같아서 결단을 내리지 못했죠.”

등록금 4천만원 받아 1천만원 적립
ㅇ씨가 4년간 낸 등록금은 어림잡아도 4천만원(500만원×8학기)이 훌쩍 넘는다. ㅇ씨 입장에서는 3개월에 500만원을 내고 교육을 받는데 추위에 떨고 강의실을 쫓겨나야하는 게 상식 밖이다. ㅇ씨는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유학을 갈 수 없었을까.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내내 박탈감을 느끼고 살아야 할 만큼 ‘4천만원’은 적은 금액이었을까.

ㅇ씨가 졸업반이던 2009년, 이 대학은 548억원을 적립했다. 자금수입 총액의 37.4%에 달한다. 중고교 과학실에서나 볼법한 의자에 앉아 서너 시간씩 수업을 듣거나 추위에 떨고 강의실을 쫓겨났던 이유다. 이 대학은 이런 식으로 대학을 운영하면서 무려 2천575억원의 적립금을 모았다. 누적적립금 규모로 전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이 대학의 2009년 등록금 수입은 1천억원을 조금 넘는다. 기부금은 10억원에 못미치는 9억9천400만원에 불과했다.

적립금은 등록금, 기부금, 법인전입금, 국고보조금 등으로 조성한다. 사용처가 정해져 있는 법인전입금과 국고보조금은 적립금에 거의 반영되지 않는다. 임희성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의 말은 이 분석을 뒷받침한다. “기부금을 모두 적립했다고 해도 등록금에 비해 금액이 아주 낮다. 적립금의 많은 부분을 등록금으로 파악하는 이유다.”

적립금으로 ㅇ씨가 낸 등록금 ‘4천만원’의 사용처를 추적해 보면 더 흥미로운 셈법이 나온다. 다시 적립금 548억원을 보자. 이 대학은 재학생 수가 약 1만명이다. 1년이면 2만여 명의 학생들이 등록금을 낸다. 적립금 548억원을 2만명으로 나누면, 학생 1인당 평균 274만원을 적립금에 보탰다는 계산이 나온다. 휴학없이 4년을 내리 다닌 ㅇ씨는 매년 274만원을 적립금으로 낸 셈이다. 4년이면 ‘1천96만원’. ㅇ씨는 대학원에 진학할 등록금이 없어서, 유학갈 빚을 낼 수 없어서 아트디렉터라는 꿈을 꺾었다.

학생들의 꿈 밟지는 말아야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김춘진 민주당 의원은 최근 ‘사립대 용도별 적립금 현황’을 공개하면서 “대학이 곳간에 돈을 쌓아두고 건축 등 외형성장에만 치중하고 있다. 적립금을 풀어 장학금을 확대하고 등록금 인상률을 억제하는 것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학이 적립금을 조성하는 데 학생 등록금이 한 푼도 들어가선 안 된다는 게 아니라 대학의 예산운영이 기본적으로 ‘과다책정’돼 있다는 말이다.

등록금 문제는 비단 경제적인 면에 국한하지 않는다. 등록금 1천만원 시대가 도래한 지금, 학생들은 꿈을 포기하고 있다. 빚걱정(학자금대출)에 애면글면하면서 경제적 박탈감에 사로잡혀있다. 이 문제를 외면한 채 대학의 경쟁력을 논할 순 없다. 학생들의 꿈을 북돋을 교육, 여기에 등록금 문제의 해법이 있다.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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