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1-05-07 16:51 (금)
‘김범수이론물리연구소’를 기대하는 마음
‘김범수이론물리연구소’를 기대하는 마음
  • 교수신문
  • 승인 2021.04.21 08: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과학기술 사각지대를 비추다 ②

“가만 놔두면 도태될 
기초과학 분야, 
정부가 적극 보호해야 한다”

일전에 김범수 카카오 회장이 자기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하겠다는 뉴스를 보고 어느 일간지에 ‘김범수이론물리연구소’를 기대한다는 글을 실은 적이 있었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김 회장 의 기부액이 최소 5조 원에서 최대 10조 원을 넘을 수도 있다고 한다. 국내 대표적인 이론과학연구소(수학부, 물리학부, 계산과학부)인 고등과학원의 경우 연간 예산이 2~300억 원 정도니까 3조 원만 써도 고등과학원급의 연구소를 100년 또는 그 이상 운영할 수 있다. 

일본의 고바야시와 마스카와에게 2008년 노벨상을 안긴 벨(Belle) 실험, 즉 전자와 양전자를 충돌시키는 실험에 들어간 돈은 초기 10년 동안 모두 7천 억 원 정도였다. 2015년 중력파를 검출해 킵 손 등의 과학자에게 노벨상을 안긴 미국의 레이저간섭중 력파관측소(LIGO)에는 약 1조 원이 투입되었다. 인류가 만든 사상 최대 규모의 과학 설비인 유럽원자 핵연구소(CERN)의 대형강입자충돌기에는 10조 원이 소요되었다. 

우리나라에 그런 큰돈이 어디 있냐고 누군가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이명박 정부 시절엔 4대강 사업에 22조 원을, 이른바 자원외교에는 30조 원을 넘게 썼다. 이제 5조 원 정도는 성공한 한 기업인이 기부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돈이 없어서 기초과학을 지원하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문제는 정부와 사회의 의지가 얼마나 있느냐이다. 

카카오를 창업한 김범수 이사회 의장은 자신의 재산 절반 이상을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사진=연합

돈이 없어서 기초과학 지원을 못한다? 

흔히 한국 정도의 나라가 성공하려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들 한다. 기초과학은 그 ‘선택’을 받지 못했다. 2019년 언론보도에 따르면 전국 4년제 대학 중 물리학과는 겨우 47곳(서울 16, 수도권·지방 31)으로 미설치 비율이 73.9%에 달하며 화학, 수학, 생물학과가 없는 대학도 60%가 넘는다. 물리학과의 교수 숫자도 많지 않다. 서울대의 경우 50명이 채 되지 않으며 카이스트가 30명 남짓, 연세대나 고려대가 20명 남짓이다. 60명이 넘는 하버드, 80명이 넘는 MIT, 100명 정도의 도쿄대학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누군가는 인구대비 혹은 GDP 대비 적정한 숫자가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한국의 반도체와 조선산업이 지금 세계 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이유는 인구나 GDP 대비를 뛰어넘는, 말도 안 되는 비대칭적 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인구나 GDP 대비 규모에만 만족하라는 말은 그냥 지금 수준을 유지하라는 말이다. 한국의 기초과학이 원래 강했다면 이런 주장이 성립하겠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돈이든 사람 수든 이 모두는 그저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냥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기술에만 매진 하면 되지 않느냐는 생각이 곳곳에 뿌리 깊게 박혀 있다. 불행히도 정책을 담당하는 정부 관료들은 기초(또는 순수)과학을 이후 응용연구나 개발연구의 첫 단계, 또는 결국 로열티를 받을 수 있는 원천기술개발 연구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다. 그 결과는 참담하다. 예컨대 대학의 기초과학분야가 저렇게 무너지고 있음에도 주무부서인 교육부에서는 오히려 산업현장에 당장 투입할 인력을 키우겠다며 대학 구조조정을 강제하고 있다. 산업현장에 당장 투입  인력이 필요하면 산업계가 대학에 투자해야 할 사안이 아닌가? 정부는 단지 관련 제도만 정비하고 감독하면 될 일이다. 정부가 할 일은 산업계의 관심이 없는, 그래서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도태될 기초 과학분야를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정부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만들 수 있는가 

지금 우리는 빠른 추격자가 아니라 최초 선도자로서 선진국에 이미 발을 들인 상태이다. 내가 생각하는 선진국과 개도국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만들 수 있는가이다. 그것이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바이기도 하다. 기 초과학은 돈벌이 수단으로서의 기술이 아니라 그 자체가 자연과 인간에 관한 ‘정보’이다. 기술은 그 정보를 현실화할 수 있는 제반 능력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선진국에서 만든 교과서에 적힌 정보를 이용해 그것을 현실화하는 능력을 키워왔고 성공적이었다. 여기서 한발 더 나가려면 우리 스스로가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조만간 한국에서도 한국형 GPS 사업을 시작한다고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위치정보 시스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잘 알려져 있듯이 GPS 위성의 시계에는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의 시간변화 효과가 동시에 적용된다. 이미 최초의 양자컴퓨터가 모습을 드러냈고 양자역학의 신비로운 성질을 이용한 통신과 보안기술도 조만간 세상을 크게 바꾸어 놓을 것이다. 전국 대학에 물리학과가 불과 4분의 1밖에 없다는 현실이 자꾸 눈에 밟힌다. 

 

이종필 
건국대 교수·입자물리학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에서 입자 물리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고등과학원, 연세대, 고려대 등에서 재 직했으며 현재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는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의 아주 특별한 상대성 이론 강의』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