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뺏고, 으르고… 중동은 백신 전쟁 중
뺏고, 으르고… 중동은 백신 전쟁 중
  • 정진한 단국대 GCC국가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21.03.05 14: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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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_단국대 GCC국가연구소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 이 말은 세계화(Globalization)와 지방화(Localization)의 합성어다. 세계 각 지역 이슈와 동향을 우리의 시선으로 살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국내 유수의 해외지역학 연구소 전문가의 통찰을 매주 싣는다. 세계를 읽는 작은 균형추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지난달 16일 가자지구 남단 라파에서 코로나19 검사용 면봉을 정리 중인 팔레스타인 보건 노동자. 사진=AFP/연합

 

 

 

작금의 COVID-19 사태는 바이러스와 면역 체계 간의 투쟁일 뿐 아니라, 국가의 명운을 건 방역 비상 사태인 동시에,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백신 외교’의 전장이다. 특히 코로나 사태 이전에도 복잡하고 지난한 갈등을 표출해온 중동 지역은 바이러스의 대유행으로 인한 백신 외교전까지 가세되면서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올해 1월 4일, 한국의 원유운반선 MT 한국 케미호가 호르무즈 해협에서 이란 혁명수비대에게 나포, 억류되었다. 초기에 이란은 해당 선박이 해양환경법을 위반하였다는 구실을 들었지만, 정작 협상이 시작되자 한국이 동결한 이란 자산을 백신 등의 현물의 형태로 돌려달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다수의 전문가들은 이번 나포 사건이 ‘경제 제재로 인해 코로나 19 백신 구매에 난항을 겪은 이란이 동결된 자금을 활용해 백신을 확보하고자 한 사건’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이 해석에 따르면 이란은 그간 제재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에도 참을성 있게 인내하며 한국과의 외교 관계를 이어나갔었지만, 폭증하는 환자를 관리하고 동요하는 민심을 달래기 위해서 나포라는 극단적 무리수를 둔 셈이다.

 

미국 걷어차고 러시아 손잡은 이란

 

현재 백신 생산과 구매는 단순히 질병을 관리하는 차원이 아니라, 국가의 자존심과 능력을 대결하는 링이다. 한때 세계 3위의 환자 수를 보유했던 이란은, 앞서 전통적 앙숙이었던 미국에게 15만 도스의 백신을 구매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최고지도자의 성명을 통해 이를 철회했다. 올해 1월 9일 아야톨라 하메네이는 미국과 영국 및 프랑스를 신뢰할 수 없는 국가로 규정하면서 “그 밖의 국가들이 생산하는 백신을 수입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이어 이란의 로하니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외국 기업들이 이란에 백신을 주고 이란 국민들을 대상으로 백신을 실험하려 했지만 국가가 나서 이를 막았다”고 주장하며 “이란은 안전성이 검증된 백신만을 수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윽고 이란은 가장 먼저 러시아의 백신 수입을 승인하였고, 국내 공동 생산도 추진했다. 또한 이란은 자국이 3가지 백신을 개발 중이라고 발표하면서 향후 이란이 코로나 19 백신 생산의 주요 센터가 될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얼마 후인 2월 18일 이란은 인도의 코백신(Covaxin) 백신과 함께 영국의 아스트라제네카와 옥스퍼드가 공동개발한 백신의 수입도 긴급 승인하였다. 


최근 중동에서 입지를 늘려가고 있는 중국은 백신 외교에서도 역시 활발한 행보를 이어가는 중인데 상대국들도 적극 화답하고 있다. 중국의 제약사 시노팜이 개발한 ‘BBIBP-CorV’는 중국보다도 먼저 세계최초로 아랍에미리트가 접종을 승인하였다. 뒤이어 바레인이 두 번째 승인국가가 되었으며, 세 번째 중국을 이은 네 번째 승인국가 역시 이집트였다. 특히 아랍에미리트는 총리이자 부통령이면서 두바이의 통치자인 셰이크 무함마드 빈 라시드 알-막크툼이 직접 백신을 맞는 장면을 공개하였다. 또한 아랍에미리트는 자국 인공지능 및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 그룹42(Group 42)와 아부다비 보건청이 중국 시노팜의 백신 3상 임상시험을 진행하여 보건청장이 이를 접종하는 장면을 언론에 선보이기도 했다.

 

가자 지구 틀어막고 백신 거래한 이스라엘

 

백신의 생산과 공급은 이를 둘러싼 다양한 윤리적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가자지구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에 공급될 예정인 백신 수송이 늦어지자 이를 고의로 지연시켰다는 의혹과 비난을 샀다. 특히 이스라엘의 외교국방위원장 트즈비 하우저 의원이 백신 전달의 최소 조건으로 “가자 지구에 포로로 잡혀있는 2명의 이스라엘 시민에 대한 정보를 전달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혹은 더욱 증폭됐다. 반면 언론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협상을 통해 러시아에서 비밀리에 백신을 들여와 자국민 수감자 네 명과 교환했다고 한다. 이 두 사건은 생명을 지키기 위해 인도적으로 사용되어야 할 약품마저도 자신들의 이해관계만을 따라 이용한다는 논란을 불렀다. 


백신 여권의 도입으로 인해 외교전은 더 뜨거워질 전망이다. 바레인은 지난달 17일 ‘비어웨어(BeAware)’ 앱을 출시함으로써 세계에서 가장 먼저 디지털 백신 여권을 도입한 국가들 중 하나가 됐다. 이스라엘은 백신 접종 증명서인 ‘그린 패스’를 통해 자국민들마저 국내 공공시설을 이용하는 데 차등을 두고 있다. 하지만 이 ‘여권들’은 발급국과 입국 국가 사이 협정과 백신의 종류에 따라 유효성과 유효기간에 차이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즉, 백신 여권에는 일정 국가 사이에 통하는 일종의 ‘백신 비자’가 있을 것이고, 현재 이를 둘러싼 해킹과 데이터 위변조 및 유출과 같은 위험 역시 상존하는 것이다.

 


 

 

정진한
단국대 GCC국가연구소 연구원

요르단대와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문명교류사와 중동학을 전공했고 한국이슬람학회 편집이사를 맡고 있다. 「이슬람 세계관 속 신라의 역사: 알 마스우디의 창세기부터 각 민족의 기원을 중심으로」 등 논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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