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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IL은 탈레반과 국제사회의 주선자가 될 것인가
ISIL은 탈레반과 국제사회의 주선자가 될 것인가
  • 정진한
  • 승인 2021.09.30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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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
탈레반 통치의 최대 명분은 미군이라는 외세를 축출한 것이다. 국제사회의 아프간내 대테러 활동은 아프간의 경제사회 안정에 되움이 되는 외교와 경제활동 등으로 한정될 전망이다.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작전 모습이다. 사진=위키미디어

아프간 정부가 탈레반에 항복을 선언한 지 보름이 채 못 된 2021년 8월 26일,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의 코라산 지부(IS-K)가 수도 카불의 국제공항의 테러를 자행하면서,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을 둘러싼 국제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특히 이번 테러는 지금껏 비인도적 무장 세력인 탈레반과이들이 세운 정권과의 외교관계 설정에 어정쩡한 태도를 보였던 국제사회가, 국제테러조직의 소탕이라는 명분으로 탈레반과 협조할 것이라는 전망이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역학 관계 기류의 변화 조짐을 들어다보면 그간 숱하게 반복되어온 유사 사례들이 줄줄이 떠오르며 기시감을 느낀다. 

대표적으로 십여 년 전 아랍 전역을 휩쓸던 아랍의 봄 당시, 군주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아랍 독재자들이 무너지는 상황에서도, 미국의 미움을 가장 많이 샀던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ISIL의 왕성한 활동이었다. 당시 국제사회는 전대미문의 잔혹함과 확장성으로 전 세계를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고, 실질적으로 서방에 물리적 위협을 가할 수 있는 ‘거악’인 ISIL을 제거하는 것을 가장 우선시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작은 악으로 여겨지던 시리아 정부를 함락시키기 위한 노력에 소홀했고, 심지어 아사드 정권을 지원하면서 반 ISIL 섬멸 작전의 협조를 끌어냈다. 마찬가지로, 탈레반이 국제사회의 협조를 받는 가장 빠른 길은 아마도 ISIL의 준동일 것이다.

탈레반이 아프간 전역을 장악하는데도 IS-K의 활동은 일정 부분 유용하다. 아프가니스탄과 같은 다인종?다민족 국가들은 일반적으로 외세의 침략 앞에서는 단결하고, 외세를 몰아낸 후에는 내부 분열을 겪는다. 이 혼돈은 대부분 민주적으로 권력을 분점한 정부보다는 철권 통치를 휘두르는 독재자들만이 극복해냈다. 이 시각에도 중동 내 내전을 겪지 않는 나라 대부분은 왕이나 군인 대통령 한 사람이 무소불위의 권력 행사를 통해 여타 세력들의 준동을 통제하고 있다. 20세기 아프가니스탄 역시 소련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단결하였지만, 소련이 물러난 후에는 다시 여러 종파와 종족으로 분열되어 내전을 겪었다. 많게는 7개까지 쪼개진 군벌들은 이합집산을 거듭하던 끝에, 초반에 열세에서 출발한 탈레반이 최종적으로 국토의 대부분을 수중에 넣게 되었다. 이후 탈레반은 미국이 침공하기 이전까지 강력하게 주민들을 억압하고 반대세력을 고립시킴으로써 안정을 획득했다. 

미군이라는 외세를 몰아내고 공동의 외적이 사라진 아프간은 이내 내부 파벌간의 노선 투쟁이나 국내 반탈레반 세력들과의 전투에 대비해야 한다. 이 시점에 마침 국제테러조직이 정부의 장악력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활동한다면 이는 탈레반 내의 우후죽순처럼 솟아오를 수 있는 이견들을 당장은 외적과의 투쟁에 주력하자는 방향으로 설득시킬 명분이 된다. 런던에 본부를 둔 쉬아 연구소(The Shi’ah Institute)의 라비아 라티프 칸 연구원 역시 국제 테러리즘의 위협이 확실히 다수의 국가들을 탈레반에게 협조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보았다.

국제 평화를 위해 아프간의 안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중동에 기반을 둔 대부분의 국제테러조직들은 테러활동이 불가능한 치안과 행정력이 안정된 국가를 떠나, 자신들의 장악이 가능한 무법지대에 똬리를 틀어 왔다. 과거 소련군이 철수한 후 여러 국가로 흩어졌던 무장전사들은, 9·11 테러 이후 정권이 무너진 아프간과 이라크에서 대규모로 성장했다. 상대적으로 아프간이 안정을 찾아가자 테러리스트들은, 극도로 사회가 불안정했던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ISIL이라는 사실상의 국가를 만들어냈다. 연합군의 집중 타격으로 근거지가 궤멸되고 이라크와 시리아가 조금씩 안정화를 되찾아가자 이번엔, 무장 세력들이 또 다른 내전 지역들로 이동하고 대테러군들이 이들을 추격해 함께 이동하면서, 결국은 양측이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형국이다. 여기에 가뜩이나 국가 주요 수입원이 마약인 아프간이 대혼란으로 빠진다면 이는, 국제테러와 범죄조직들을 대규모로 양성하는 꼴이 된다.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국제사회는 우선은 아프간을 정상적이고 안정된 체제로 안착시킨 후 인권이나 민주화 같은 과제를 장기적으로 추진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탈레반과 국제사회의 대테러 공조가 공동군사활동으로까지 비화될 조짐은 적다. 탈레반 통치의 최대 명분은 미군이라는 외세를 축출한 것이다. 따라서 대테러 공조를 위해 외국의 군대가 다시 들어오는 것은 그야말로 탈레반의 자기 정체성 부정이자 지지기반의 붕괴이다. 최근 들어 파키스탄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북부에서 활동 중인 반탈레반 연맹과의 전투에 개입했을지도 모른다는 소문만으로도 아프간 국민들의 여론이 요동치고 있다는 것은 탈레반이 국제공조에 매우 신중해야 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따라서 국제사회의 아프간내 대테러 활동은 아프간의 경제사회 안정에 도움이 되는 외교와 경제활동 등으로 당분간 한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진한 단국대 GCC국가연구소 연구원
요르단대와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문명교류사와 중동학을 전공했고 한국이슬람학회 편집이사를 맡고 있다. 「이슬람 세계관 속 신라의 역사: 알 마스우디의 창세기부터 각 민족의 기원을 중심으로」 등 논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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