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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 한체대 교수] 국제대회 金 14개... 지금은 '삶의 金' 정조준
[김진호 한체대 교수] 국제대회 金 14개... 지금은 '삶의 金' 정조준
  • 이진영
  • 승인 2020.03.20 10: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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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OC 선정 ‘여성과 스포츠상’ 수상 김진호 한체대 교수
25세 선수은퇴 후 모교 교수로 후진 양성
한국 스포츠계의 여성 권익 향상에 기여
한국체육대학교 김진호 체육학과 교수. 사진제공=대한체육회
한국체육대학교 김진호 체육학과 교수. 사진제공=대한체육회
1986 서울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김진호 교수. 그는 이 대회 3관왕을 끝으로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사진=대한체육회
1986 서울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김진호 교수. 그는 이 대회 3관왕을 끝으로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사진=대한체육회

4년마다 올림픽 연승 기록을 새로 쓰는 한국 여자양궁. 그 금빛 신화의 시작은 1979년 세계무대에 깜짝 등장한 고등학교 3학년 소녀궁사 김진호 선수였다.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그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전 종목을 석권하며 5관왕에 올라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것이다. 계속해서 83년 LA 세계선수권대회 5관왕, 84년 LA 올림픽 개인전 동메달에 이어 86년 서울 아시안게임 3관왕을 차지한 그녀는 짧지만 강렬한 기억을 남긴 채 25세에 조용한 은퇴를 선택했다. 

그로부터 34년이 흐른 2020년, 세계 여성의 날인 3월 8일을 하루 앞두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올해의 ‘여성과 스포츠상(The Women and Sports Awards)’ 수상자로 김진호 한국체대 교수(59)를 선정했다. 이 상은 스포츠계 내에서 여성의 권익 향상과 스포츠 참여 확대에 공헌한 인물에게 수여된다. 

IOC는 김 교수가 은퇴한 국가대표 선수들의 모임인 한국여성스포츠회와 대한체육회 여성체육위원회 등에서 꾸준히 활동해오며 한국 스포츠계 내에서 여성의 권익을 높이는데 힘써온 사실을 높이 평가했다. 또한 올림픽 양궁 메달리스트 모임인 명궁회를 결성해 많은 청소년들이 양궁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온 부분도 선정 결과에 반영되었다고 밝혔다. 이번 수상을 가능하게 했던 삶의 이야기를 듣고자 그의 연구실 문을 두드렸다.  

 

황금빛 은퇴 이후 교육자로 살아온 삶

양궁은 자기가 쏜 만큼 점수를 얻는 기록경기이다. 심판이 승패를 결정할 수도 없고, 순간의 기지를 발휘해 승부를 가를 수도 없다. 단시간 내에 한두 번의 시도로 승리를 기대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오직 자신을 절제하면서 한 발 한 발 과녁을 향해 곧게 쏘는 것이 최선인 운동이다. ‘바르게 쏘아야 명중할 수 있다’던 그의 말처럼 은퇴 후 그가 걸어온 삶은 과녁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을 닮았다. 

25세에 현역에서 은퇴한 그는 모교인 한체대 대학원에 진학해 교육자의 길을 걷는다. 1995년 모교의 교수로 임용되었을 때는 결혼도 하고 자녀를 둔 엄마이기도 했다. 1977년 개교한 한체대에 여성 교수가 많지 않던 시절이었다. 대학에서는 교수였지만 집에 오면 주부이자 엄마로, 동네에서는 평범한 이웃으로 사는 삶이었다. 스스로는 ‘부족한 게 많았다’고 하지만 각각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태도만은 양궁에서 배운 그대로였다. 일찌감치 운동을 통해 절제를 배웠기에 하고 싶은 일도 그만둘 줄 알았고, 귀찮고 힘들어도 지속할 수 있었다.  

학생들을 가르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도 바른 태도였다. 예의와 인성이 토대가 되어야 기술적인 훈련지도에 들어갔다. 대학을 ‘운동선수를 기르는 곳’ 이전에 ‘사람을 가르치는 곳’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제자들이 사회에 나가기 전 마지막으로 교육받는 곳이란 생각으로 운동과 삶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고, 전공 특성상 매일 만나며 오랜 시간 함께 있다 보니 부모 같은 마음이 든다고 했다.  

대한체육회 자료영상에서 캡처
대한체육회 자료영상에서 캡처

세계적인 흐름이 한국 스포츠에도 영향

김 교수가 처음 활을 잡은 70년대와 비교하면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스포츠계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특히 여성의 지위 측면에서 보면 남녀선수 비율처럼 눈에 보이는 수치에서도 그렇지만 문화나 의식처럼 보이지 않는 부분의 변화는 더욱 극적이다. 

미투 운동에서 다른 종목 여성 선수들이 당해온 어려움이 드러나 사회적 공분을 샀을 때는 함께 아파하면서도 그만큼 정화의 계기가 되리라는 희망도 품었다고 한다. 남녀가 서로 존중하며 공존하지 않고서는 스포츠계가 건강하게 발전하기 어렵다고 믿어서이다. 이러한 변화의 계기가 되었던 어린 후배들의 용기를 대할 때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IOC에서 꾸준히 남녀선수 수와 개별 종목의 성 균형을 찾아가기 위해 도입해온 여러 시도들도 알게 모르게 한국 스포츠계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그는 말한다. 이러한 흐름을 볼 때 여성들이 더욱 실력을 갖춰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기회의 문이 더 많이 열릴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으로 남고 싶은 소망

한체대 홈페이지 교수소개란에는 그가 지난 25년간 가르치고 지도해온 선수들의 성과가 빼곡하다. 화려한 관심을 받는 자리에서 내려온 이후에도 그가 얼마나 양궁을 사랑했고 정성껏 제자들을 길러왔는지 말없이 웅변하는 것 같았다. 이제는 스포츠계에서 선배보다 후배가 더 많아진 시기, 이번 수상은 그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 의미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제가 받을 자격은 안 돼요(웃음). 제가 노력해서 받은 상도 아니고요. 그런데 왜 이 상이 내게 주어졌을까….” 신실한 기독인인 그는 신앙인으로서, 교육자로서, 선배 여성으로서 더욱 바르게 살아야겠다는 책임감을 깊이 느꼈다고 말했다. 개인 김진호에게 주어졌다기보다는 한국 스포츠계에서 지난 시간을 함께 해온 이들을 대표해서 주어진 상이란 생각이 든다고 했다. 

김진호 교수는 늘 자신의 노력보다 더 많은 것들을 사회로부터 받으며 살아온 것 같다고 말한다. 그래서 늘 감사한 삶이었고, 그것을 나누고 싶은 마음도 늘 있었다고 한다. 지금의 바람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욕심 안 부리고 과하지 않게 사는 거. 좋은 사람으로,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라는 답이 돌아왔다. 지금까지 한 발 한 발 신중하게 걸어온 것처럼 앞으로도 꾸준하게 걸어가고자 하는 원조 명궁의 소박한 소망이었다. 


<김진호 교수 약력>
1961 경북 예천 출생
1978 방콕 아시안게임 양궁 개인전 금메달
1979 베를린 세계양궁선수권대회 5관왕
1983 LA 세계양궁선수권대회 5관왕
1984 LA 올림픽 양궁 개인전 동메달
1986 서울 아시안게임 양궁 3관왕
1995 한국체육대학교 교수(현)
2018 대한민국 스포츠영웅 헌액(대한체육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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