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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날개’가 맴돌던 그곳엔 ‘랜드 마크’ 위용만
이상의 ‘날개’가 맴돌던 그곳엔 ‘랜드 마크’ 위용만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2.12.24 15: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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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한국을 만든 40곳] 소설과 영화에 그려진 서울역, 그 먼 풍경

 

▲ 경성역에서 서울역으로, 그리고 다시 ‘구서울역사’로 바뀐 근대공간 서울역. 이제는 문화재가 돼 관람의 대상이 됐다.
염상섭의 「만세전」(1922),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1934), 이상의 「날개」(1936), 조해일의 「뿔」(1972), 그리고 최근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2008) 등에는 풍경으로서의 서울역이 잠깐 등장한다. 그리고 이 풍경은 어느 순간 한국 근대사의 한 장면으로 우뚝 서기도 한다. 그것은 식민지의 창백한 지식인의 귀향의 정점이기도 했다가(「만세전」), 곧 어쩔 수 없는 ‘가짜 근대’의 속도 앞에 절망적 탈출을 꿈꾸는 장소성, 또는 무기력하게 끌려갈 수밖에 없는 새로운 삶의 공간으로 변환하기도 하고(「날개」,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밀려드는 산업화의 바람 속에서 고단하게 삶을 살아가야 하는 팍팍한 일터가 되기도 하고(「뿔」), 갑자기 익명의 무리들 속에서 엄마를 잃어버리는 낯설고 두려운 곳(『엄마를 부탁해』)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좀 더 시각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1934년 개봉된 무성영화 「청춘의 십자로」(감독 안종화)를 기억할 수 있다. 마침 이 영화는 지난 9월 26일부터 10월 13일까지 ‘문화역서울283’에서 상영한 바 있다. ‘현존하는 最古’ 영화라는 평을 받는 이 영화는 조선극장에서 에른스트 루비치 감독의 「생활의 설계」와 함께 개봉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무성영화에 주요하게 등장하는 공간이 바로 경성역(서울역)이다. 역이라는 근대적 공간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群像들이 깊은 이미지로 스며들어 있다.

「청춘의 십자로」가 던지는 시사점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1934년 경성, 서울역에서 수하물 운반부로 일하는 영복에겐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꿈에도 잊지 못할 고향에서 봉선네 집 데릴사위로 들어가 7년 동안 뼈 빠지게 일했으나 배신당하고, 늙은 어머니와 누이동생을 둔 채 고향을 떠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영복은 근처 개솔린 스탠드(주유소)에서 일하는 계순을 만나 꽁꽁 얼어붙었던 마음을 열려고 한다. 계순 역시 병든 부친과 어린 동생을 데리고 근근이 살아가는 불우한 처녀였다. 한편, 고향에 남은 영복의 동생 영옥은 모친을 잃고 서울로 오지만, 오빠는 만나지 못한 채 카페의 여급이 된다. 어느 날 영옥은 주명구의 술책에 넘어가 주명구와 어울려 지내는 악덕사채업자 개철에게 능욕을 당한다.

설상가상으로 계순마저 실직한 몸으로 직장을 찾아 헤매다 개철 일당에게 걸려든다. 우연히 계순의 소식을 알게 된 영복은 개철의 집에 달려가고, 뜻밖에도 영옥을 만나 그간의 사정을 듣고 하늘을 우러러 통탄한다. 영복은 개철 일당을 응징하려 하지만… (http://blog.naver.com/silent_film 참조) 경의선 철로를 따라 북에서 남으로 내려오는 육중한 증기기관차를 배경으로 ‘手荷物’이라는 한자가 쓰인 모자를 눌러쓰고 제복을 입은 주인공 영복이 민첩하게 움직인다. 잡다한 물건을 파는 행상 소년들, 역 앞 ‘가고일 모빌오일(Gargole Mobile)’이란 간판을 건 주유소, 서구식 바에 앉아 맥주를 마시는, 난봉꾼처럼 보이는 두 명의 부르주아 사내들…. 기차는 쉼 없이 농촌 사람들을 실어 나르고, 이렇게 시골 촌놈들은 대도시 ‘경성’의 문턱을 넘게 된다. 이 경성역은 가히 ‘랜드 마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청춘의 십자로」에 나타난 서사구조는 이후 산업화의 경로를 밟게 되는 한국사회의 비극적 단면을 예고하는 하나의 묵시록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끈다. 근대화의 상징이자, 삶의 애환이 녹아든 공간 서울역의 또 하나의 장소성은 정치적 변혁 공간이란 의미를 획득한다.

멀리는 몰락한 대한제국의 시간에서부터 가깝게는 1980년대 ‘서울의 봄’ 온통 거리를 메웠던 대학생들의 진군이 또한 좌절된 공간이기도 하다. 1980년대에서 2010년대로 시간축 변화와 함께 농민, 노동자, 대학생 등의 다양한 집회가 이곳에서 잇따랐다. 18대 대선이 있기 하루 전, 12월 18일 전국의 PC방 주인들도 바로 이곳에 모여 ‘한국마이크로소프트 규탄 집회’를 벌이기도 했다. 현대식 구조물로 바뀐 지금, 대규모 대중들이 들어설 공간은 제한받게 됐지만 ‘서울역’은 이렇게 이 나라 民意가 분출되는 한 공간으로 기능해왔다.

주변 재개발로 장소성 희석
‘근현대 한국을 만든 40곳’으로서의 ‘서울역’과 관련, 하나의 기억을 덧붙이는 게 좋겠다. 바로 노숙자들이다. 서울역에서 삼각지로 이어지는 공간은 곧 재개발에 들어갈 것이다. 오래된 건물들이 가득해서 여전히 비용이 저렴한 곳이라 만화방, PC방이 이어져 있는 이 공간은 자칫 ‘노숙’으로 전락할 수 있는 우리시대의 핍진한 삶이 웅크린 공간이기도 하다. 어느 겨울 하염없이 눈이 내리던 밤 열한시, 풍찬노숙에 지친 한 노숙인 그 눈발 속에 소주병을 들고 어둔 하늘을 올려다보던 그런 풍경이 맴돌던 곳. 기차들은 모였다 다시 흩어져서 각자의 목적지로 돌아가지만, 이들은 지금도 떠돌고 있다. 근대화와 산업화의 상징공간 서울역이 성장으로 가는 관문인 동시에, 그 좌절의 그늘이란 점은 역설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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