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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에게 보낸 진정서 … “사학 설립자 노력 정당하게 대접해야”
대통령에게 보낸 진정서 … “사학 설립자 노력 정당하게 대접해야”
  • 교수신문
  • 승인 2008.06.09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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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비사] 최찬식의 ‘청구대학’ 증언⑥

<大統領 閣下  (I)>
 靑丘大學의 來歷에 대해서는 閣下께서도 大略은 짐작하실 줄 믿습니다만 … 先烈의 정신적 遺産을 바탕으로 … 가난한 농민의 아들들과 勤勞靑年들의 晝耕夜讀의 학문의 殿堂으로 자라잡고, 민족의 精氣가 서린 학교로 자처하여 … 18年, 3千餘名의 졸업생을 조국 근대화의 역군으로 배출할 때까지, 설립자가 문자 그대로 심혈을 기울여 온 사업이었습니다.

[관련기사] ⑤ 大邱에서도 의아해했던 ‘청구-대구 합병’… 설립자 의사 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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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① “2代 理事長, 설립자 배신하고 靑丘를 청와대에 넘겨”

 

 私學은 어느 나라 없이 설립자 나름대로의 창립정신에 矜持를 가지는 것은 다시 말할 필요조차 없을 줄 압니다. 국가, 민족을 위해서도 이것은 말살되어서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靑丘大學의 전통과 역사는 향토 大邱의 자산이오, 자랑이기도 했습니다.

 5.16 개혁때 불행히도 靑丘는 부당한 措置를 받은 일이 있어, 이 難關을 타개하고, 이어서 이것을 계기로 새로운 摸索하여 한 동안 東奔西走 한 일이 있는데, 이 틈에 학교내에서 문제가 생겼던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여, 몇 不平敎授들과 經理不正을 저지른 職員들이 몰지각한 理事들을 사주하여 학교의 경영권을 橫領케 하더니, 新築中의 校舍가 倒壞하는 椿事를 맞자, 그들은 설립자를 제외한 각서 한 장으로 학교를 송두리째 넘겨버린 것입니다.

 靑丘大學은 負債에 넘어 간 것도 아니고, 紛糾 끝에 빼앗긴 것도 아니었습니다.
설립자는 즉시 大統領 閣下와 李厚洛 실장에게 사태의 진상과 비리를 설명하는 陳情書를 올리고, 수차 面會의 기회를 요청했으나 소원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결국 과거 靑丘大學이나 大邱社會와는 인연 없는 中央政界人士로 새 理事陣이 편성되고, 대통령 학교라는 선전마저 돌기 시작하니, 이곳 시민들은 驚愕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大統領 閣下의 뜻이라고는 믿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大靑丘를 만든다고 하더니, 未久에 大邱大學을 합치면서 兩大學의 전통을
抹殺하는 것을 일로 삼고, 지금은 官學인지 私學인지 분간도 못하게 되어 시민들의 빈축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설립자의 피땀어린 文化洞 校舍를 매각하여 慶山에 敷地를 마련한다고 남의 농지와 先山을 官權으로 買收하니 郡民들의 怨聲이 높습니다. 사람들은 이 일련의 불행한 사건들이 모두 共和黨의 처사이며, 청와대의 指令일까고 疑訝하는 것입니다.

 靑丘大學의 進上과 大邱大學과의 합병의 과정은 실로 윤리적, 事理的 汚點에 얼룩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모자라, 現 理事陣은 여러 방면으로 설립자 개인에게 迫害를 가하고 있으니, 이것은 人道의 한계를 넘은 처사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71年 선거를 앞두고 이런 일들이 모두 大統領 閣下에 累가 될 것을 염려하고,
嶺南大學의 건전한 발전을 바라는 마음으로, 설립자는 그 동안 삼년의 침묵을 깨고 如此 陳情을 하매, 현 사태를 收拾하는데 최소한 필요한 조건으로, 다음 사항을 要望하는 바입니다.

                                   <요 망 사 항>

 1. 靑丘, 大邱 兩大學 관계 인사 各 3人씩을 理事陣에 배당할 것.
 2. 靑丘大學 引受時 靑丘工業專門學校만은 설립자에게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이행할 것.
3. 學校 引受當時 엄연히 學校負債에 屬하는 件으로 지금 와서 本人을 괴롭히는 일을 즉시 중단할 것.
 4. 平地로 시작하여 18年동안, 피와 땀으로 靑丘大學을 일구어 논 사람에게 應分의 보상이 있을 것.

                                    1970年 4月 10日
                                                       靑丘大學 設立者 兼 前學長
                                       
                                                                        崔 海 淸. 

                                                                                   
<大統領 閣下 (II)>

 조국 근대화의 새 역사 창조에 寧日이 없으신 閣下에게……

 前 靑丘大學 문제의 특수성, 즉 향토의 엄연한 一私學을 마치 기업체다루듯 他大學과 통합하는 과정에서, 理事陣의 편성과 前學長 崔海淸씨에 대한 대우에 심히 事理에 맞지 않는 點이 있어 閣下의 통찰을 바라 如此하는 바이올시다.  以下, 這番 사정을 다시한번 설명드리고, 아울러 그 是正을 위한  저희들의 견해와 소망을 아뢰고자 합니다.

 1. 해방후 혼란기, 靑年指導에 活躍하시던 崔海淸 先生님은 “굳건한 독립정신과 이 나라 장래를 擔當할 인재양성”을 목표로 삼아 靑丘夜間大學을 설립하시고 18년, 그 학교의
눈부신 발전은 오로지 先生의 피와 땀의 결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 보통, 육영사업에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재단을 구성하고, 연후에 經營 責任者를 초빙하는 것이 常例입니다마는, 靑丘大學의 경우는 이와 반대로 설립자이자 經營 責任者인 崔海淸 先生이 理事會를 구성하게 되었습니다. 그 시시비비는 여기서 姑捨하고, 성격상 그 理事會는 인적으로, 물적으로 실질적 도움을 주기보다 학교설립을 위한 필요조항을 충족시키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처음부터 理事會는 형식적인 존재였고, 학교육성에 따르는 나날의 惡戰苦鬪는 설립자이자 학長 한 사람의 차지였습니다. 理事會도 이 현실에 적응하여 경영에 관한 일체 사무를 학장에게 일임한다는 결의를 成文化하고, 주로 학교의 士氣를 돕는데 傍助를 해 왔습니다.

      이러한 理事會로서 取한 這番의 처사는 순전히 명의를 빌린 형식적 행위일뿐, 事理的으로, 도의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실질적으로 그럴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 동안 학장이 일궈논 약 20억으로 추산되는 학교의 자산과 5,000명의 학생을 고스란히 남에게 넘겨 줄 수가 있겠습니까. 그들은 설립자에게는 일언반구 없이, 秘密裏에 覺書를 李厚洛쎄에게 건내주었습니다. 이것이 '합법적'이 될 수 있다면, 이제 누가 法 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들이 그 卑劣한 행위의 대가로 嶺南大學校 理事會에게 보상금을 청구하고, 그것을 받아 나눴다는 사실은 이 地方에서는 공공연한 巷間의 화제가 되어있습니다.

 3. 問題는 嶺南大學의 現理事陣에도 있다고 보입니다. 靑丘大學의 舊 理事들을 相對로 그런 行爲를 받아드리고, 設立者를 平理事로만 看做한 것은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고 그들의 低劣한 行爲에 同參했다고밖에 形容할 수가 없습니다. ……

 現 理事陣은 一般의 기대에 반하여, 靑丘, 大邱 兩大學의 旣存財産을 처분하는 것을 能事로 삼고 있으니, 이것도 실망을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官權을 동원하여 敷地를 買入하고, 嶺南大學은 대통령의 학교라는 風說을 날리는 등 행위는 閣下에 대한 累가 되지않을까 염려되는 바이올시다.

 4. 이런 사태를 是正하기 위하여 저희들은 다음과 같은 條項들을 감히 進言드리고저 합니다.

 가) 嶺南大學의 건전한 발전을 위하고, 官權背景의 인상을 불식하기 위하여도 靑丘, 大邱 兩大學의 설립자를 理事陣에 迎入하는 것이 도리라 생각합니다. 특히 靑丘大學의 경우
설립자가 半平生의 노력과 정력을 쏟은 것이라, 사리적으로, 인도적으로 이것은 당연한 처사라 생각합니다.

 나) 靑丘工專은, 統合當時 그 주역을 맡은 李厚洛씨가 崔海淸 先生의 요구대로 돌려주겠다고, 본인뿐 아니라 同窓代表와 타협하는 자리에서도, 公席私席間에 누차 약속한 것인만큼, 하루빨리 履行하는 것이 宜當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약속이 아니더라도 설립자에게 이만한 대접은 당연한데, 이것마저 違約이 될 때는 嶺南大學의 陋名을 더할까 염려되는 바입니다.

 다) 本  靑丘大學件은 非但 어느 학교나 개인의 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私學 전체의 風土에 영향을 주는 일이라, 以上 소견은 일반 민심을 반영하는 것임을 다시 말씀드리고 閣下의 英斷과 선처를 仰望하는 바입니다.
                           
                       1970  5.25
                                            陳情人 代表: 前 靑丘大學 同窓 代表
                                                         前 靑丘大學 後援會長
                                                         有志一同 代表
                                                                                                                   
 
 '大統領의 學校' 란 風說이 아닌 것이 장차 드러난다. “설마 이것이 대통령의 뜻이 아닐 것인데…” “대통령께 累가 될까봐 염려 운운” 하고 있는데, 만약 이것이 대통령의 意中과 같은 것이었다면, 그도 읽으면서 苦笑했을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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