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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정의의 여신 디케의 눈을 가렸는가
누가 정의의 여신 디케의 눈을 가렸는가
  • 김민지
  • 승인 2023.10.18 08: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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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중심에서 심리학을 외치다_ ‘법에도 마음이 있다’② 오판의 심리학
김민지 숙명여대 심리학과 교수

‘내 삶의 심리학 마인드’와 <교수신문>이 함께 ‘세상의 중심에서 심리학을 외치다’ 공동 기획을 마련했다.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주제를 다양한 관점으로 들여다보는 주제탐구 방식의 새로운 기획이다. 한 주제를 놓고, 심리학 전공 분야의 마음 전문가들이 다양한 시각과 분석을 통해 독자의 깊이 있고 입체적인 이해를 돕는다. 마음 전문가의 눈에 비친 세상의 모습은 길을 잃은 현대인에게 길잡이가 될 것이다. 몸과 MBTI, 학교 정글, 중독에 빠진 대한민국, AI시대의 심리학, 웰에이징 시대에 이어 일곱 번째 주제로 ‘법에도 마음이 있다’를 다룬다. 김민지 숙명여대 심리학과 교수의 두 번째 글이다. 

과연 정의의 여신인 디케는 눈을 계속 가려야 할 것인가, 
아니면 눈가리개를 벗고 눈을 부릅떠야 할 것인가? 
디케는 자신의 칼로 눈가리개를 벗겨낼 수 있지만, 
아직은 바보가 씌워준 눈가리개를 쓰고 있기를 원하는가? 

한 인터넷 포털에서 여러 뉴스를 읽다가 「“마침내 자유” 50년 만에 강간범 누명 벗자…판사도 검사도 고개 숙였다」라는 기사를 보고 혹시 한국 사례인가 싶어서 서둘러 링크를 눌러보았다. 확인해보니 한국 사건은 아니었다.

미국에서 실제 범인이 아니었음에도 잘못된 유죄판결을 받았다는 것이 밝혀진, 매우 전형적인 오판 사례를 소개한 뉴스였다. 1975년 5월 뉴욕주 한 마을에서 발생한 여고생 성폭행 사건의 범인으로 유죄판결을 받아 7년간 억울하게 복역했던 레너드 맥이 인권단체인 이노센스 프로젝트의 도움을 받아 48년이 지난 2023년 9월이 되어서야 무죄판결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그들은 죄가 없었다

미국의 경우 1989년 이후부터 2020년 1월까지 잘못된 유죄판결을 받은 사례가 이노센트 프로젝트에 의해 확인된 것만 375건이다. 피해자들은 평균 14년간 수감되어 있었고 이들 중 10%는 25년 이상 수감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노센스 프로젝트가 잘못된 유죄판결을 받았다는 점을 입증하는 방법은 증거물에 대해 DNA 분석을 재실시하는 것이다. 미국의 국립오판기록원의 경우는 DNA 재분석 등의 다양한 방법을 통해 밝혀진 오판 사례를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있다. 1989년부터 미국 내에서 밝혀진 오판 사례는 2023년 9월 현재 3천370건에 이른다. 

미국뿐만 아니라 북미를 비롯해 유럽과 아시아 국가에서도 오판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한국의 삼례나라수퍼 사건과 약촌 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도 대표적인 오판 사례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사건은 「그것이 알고 싶다」와 같은 시사고발 프로그램이나 「재심」이라는 영화로 다뤄지기도 했고, 2021년 1월에는 오판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도 내려졌다. 그러나 오판으로 인해 억울하게 10년간 교도소에 수감됐다면, 어느 정도의 배상이 적절한 것인가? 과연 충분한 배상은 가능한 것인가?

대법원 청사의 대법정 출입문 위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 칼 대신 법전을 들고, 눈을 뜨고 있다. 외국의 법원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디케 동상은 대부분 눈을 가리고 있는데, 한국 대법원의 경우는 이례적으로 눈가리개를 벗고 있다. 사진=대법원

오판의 원인은 무엇일까

어떻게 범인이 아닌 사람이, 재판에서 잘못된 유죄 판결을 받게 되고 억울하게 교도소에 수감될까? 이노센트 프로젝트에서 초기 325개의 오판 사례를 분석해본 결과, 오판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목격자가 범인을 잘못 지목한 경우였다. 다음은 순서대로 잘못된 법과학 증거를 사용하거나 법정에서 법과학 분석 전문가가 잘못된 증언을 하는 경우, 허위자백, 잘못된 정보원이나 밀고자의 정보가 원인이었다. 그 외에도 경찰·검사의 위법행위나 변호사의 부적절한 변호 사례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례에서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오판에 이르게 된다. 위 뉴스에서 다뤄진 레너드 맥의 사례도 목격자이며 피해자가 레너드 맥을 범인으로 잘못 지목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하지만 그 밖에도 재판에서 법과학 분석관의 법정 증언 오류, 흑인인 레너드 맥에 대한 인종적 편견, 레너드 맥이 범인이 아니라는 점을 알려주는 다양한 증거나 증언을 수사관이 무시한 채 범인이라는 증거만 고려해 종합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게 만든 터널 시야(또는 터널 비전)를 오판의 원인으로 꼽고 있다.

알브레히트 뒤러, 유스티티아(디케)의 두 눈을 가리개로 감싸는 바보. 1494년, 판화.

디케는 진실만 봐야 한다

정의의 여신인 디케(Dike)는 누구에게나 엄격하게 법을 적용하라는 뜻으로 한 손에는 칼, 다른 손에는 옳고 그름을 공정하게 판단하라는 의미로 저울, 그리고 불의를 꿰뚫어 보라는 의미로 눈을 뜨고 있었다. 1494년 세상에 존재하는 백 명이 넘는 바보들을 가득 태운 배가 바보들의 유토피아를 찾아가다 난파한다는 이야기를 담은 제바스티안 브란트의 『바보 배』에 정의의 여신인 디케가 등장한다. 한 바보가 탐욕·사회적 특권· 편견·어리석음을 보지 말고 마음대로 정의의 칼을 휘두르라는 의미로 디케의 눈을 가려버린다.

현재 외국의 법원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디케 동상은 대부분 눈을 가리고 있는데, 이는 정의를 자의적으로 해석하지 말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한국의 대법원의 경우는 이례적으로 눈가리개를 벗고 있다고 한다. 오판 사례의 가장 큰 원인으로 목격자가 범인이 아닌 다른 사람을 잘못 지목할 수 있다는 점, 심리학에서 이전부터 연구되어 왔던 기억의 불완전성·편견·인종차별·터널 시야와 같은 현상이 수사나 재판과정에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 수많은 오판 사례와 법심리학적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과연 정의의 여신인 디케는 눈을 계속 가려야 할 것인가, 아니면 눈가리개를 벗고 눈을 부릅떠야 할 것인가? 디케는 자신의 칼로 눈가리개를 벗겨낼 수 있지만, 아직은 바보가 씌워준 눈가리개를 쓰고 있기를 원하는가? 

김민지 숙명여대 심리학과 교수
법심리학자. 미국 뉴욕시립대에서 법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형사사법체계나 법체계의 문제점, 형사사법체계 내에서의 의사결정 및 판단, 오판과 관련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 『유죄 오판: 심리학의 교훈(역서)』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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