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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 교육론자의 오만함
마르크스주의 교육론자의 오만함
  • 김종영
  • 승인 2023.09.07 08: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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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주먹 ⑬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현대국가는 지식국가다. 지식은 대학에서 나온다. 그런데 대학과 학문이 붕괴되고 있다. 한국만큼 대학에 투자하지 않는 국가도 없다. 대학과 학문, 교육에 대한 비판적이고 통찰력 있는 분석이 필요한 때다. 최근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쓰고, ‘지식과 권력’ 3부작을 내놓았던 김종영 경희대 교수(사회학과)가 도발적인 문제 제기에 나섰다. 학문과 정책(정치)의 연결에 대한 고민을 던진다.

인터넷, 반도체 핵심기술, mRNA 백신, MRI 등 현대사회와 경제를 바꾼
무수히 많은 기술과 지식이 대학에서 나왔다. 대학이 곧 경제다.
마르크스주의자의 주장은 교육을 창조권력으로 보지 못하고 
단지 자본주의의 하수인으로 보는 허무맹랑한 것이다. 

마르크스는 역사상 성격이 가장 괴팍한 사회과학자 중 한 명이었다. 질투심도 무척 강했다.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가차없이 비판했다. 믿을만한 친구는 엥겔스뿐이었다. 얼굴도 우락부락해서 별명이 ‘악마’였다. 박사학위는 있었으나 직업이 없는 룸펜이었다. 자신의 아이가 굶어 죽을 정도로 가난했다. 그런데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지식인이라고 확신했다. 심각한 인지부조화의 전형이었다.  

“누가 뭐라든 자신의 갈 길을 가라!” 왜 마르크스는 『자본』 서문의 마지막에 단테를 인용했을까? 마르크스는 1848년 혁명이 실패로 끝나자 31세에 영국으로 망명했지만 환영받지 못한 이방인이었다.

반면에 단테는 피렌체 최고위원으로 전도유망한 정치인이었으나 정치적 음모에 휩싸여 모든 것을 잃고 35세의 나이에 피렌체에서 쫓겨나 망명생활을 시작했다. “우리 인생길 반 고비에/올바른 길을 잃고서 난/어두운 숲에 처했었네.” 단테 『신곡』의 첫 문장이다.

인생길 반 고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31세의 마르크스는 35세에 모든 것을 잃은 단테에 감정이입이 될 수밖에 없었다. 마르크스의 원래 꿈은 작가였고 특히 단테·셰익스피어·괴테를 좋아했다. 

공부, 마르크스 비장의 무기

나에게 마르크스·베버·뒤르켐을 가르치는 사회학 이론 수업의 계절이 왔다. 최근 소설을 출판한 까닭에 사상가 마르크스가 아니라 ‘인간 마르크스’가 보이기 시작했다. 베버는 25세에 박사학위를 받고 30대 초반에 명성이 자자했던 하이델베르크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뒤르켐은 파리고등사범에서 수학하고 소르본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젊은 나이에 보르도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훗날 그는 당대 최고의 소르본대학의 교수가 되었고 자기의 막강한 연구팀을 꾸려 ‘소르본의 지배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쯤 되면 비극적 운명에 처한 룸펜 마르크스가 어떻게 에베레스트·K2·안나푸르나를 합친 것보다 더 험한 역경을 뚫고 사회과학의 최고봉이 될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든다. 

마르크스에게 비장의 무기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공부, 또 공부, 오로지 공부였다. 마르크스는 수십 년간 오전 9시에 대영박물관 열람실에 도착해서 문을 닫는 저녁 7시까지 공부했다. 그는 집에 돌아와서도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돈도 없고 인맥도 없고 인기도 없고 직업도 없었던 그가 한 일은 오직 공부였다.

망명 18년째 되던 해 그는 드디어 가난, 역경, 서러움, 무시, 따돌림을 끝낼 뿐만 아니라 역사를 바꿀 비장의 무기 『자본』을 완성했다. 그 원고가 너무나 소중했던 터라 1867년 4월 10일 그는 런던에서 배를 타고 이틀이나 걸려 독일 함부르크에 도착해 출판사에 직접 원고를 넘겼다. 나머지 이야기는 이제 전설이 되었다. 

마르크스는 좌파로부터 ‘신격화’되었고, 우파로부터 ‘악마화’되었다. 하지만 절대다수가 인간 마르크스를 똑바로 보지 못했다. 그의 인생은 최선을 다해서 공부와 실천을 연결시킨 삶이었다. 그에게 비장의 무기는 독일 철학, 프랑스 공산주의, 영국 경제학으로 이루어진 삼지창이었다. 역사적 유물론은 철학이기도 하고 정치적 프로젝트이기도 하고 경제학이기도 했다.

마르크스는 좌파로부터 ‘신격화’되었고 우파로부터 ‘악마화’되었다. 하지만 절대다수가 인간 마르크스를 똑바로 보지 못했다. 그의 인생은 최선을 다해 공부와 실천을 연결시킨 삶이었다. 사진은 런던 하이게이트 묘지 동편에 있는 카를 마르크스 석묘다. 사진=위키피디아 

임금 격차는 도대체 어디서 오는가?

“서울대 10개 만들기 하면 뭐합니까. 학력에 따른 임금 격차를 줄여야 합니다. 교육은 사회의 종속변수입니다.” 이런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지적과 비판을 종종 듣는다. 나는 속으로 외친다. ‘마르크스처럼 공부 좀 합시다! 책 좀 읽고 토론합시다, 제발!’ 

임금 격차는 도대체 어디서 오는가? 경제학자들은 임금 격차가 교육과 기술의 차이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데 동의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식경제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대졸이 고졸보다, 대학원졸이 대졸보다 임금이 훨씬 높다. “유럽처럼 고졸만으로도 잘 살게 해 줘야 합니다.”라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근거 없는 주장이 한국에서 판친다.

2020년 OECD 국가별 대졸과 고졸의 임금 격차는 다음과 같다. 독일 66.5%, 미국 62.9%, 프랑스, 41.8%, 영국 39.9%, 한국 38.3%, 스위스 31.2%. OECD 평균 43.8%다. 한국에서는 절대다수가 대학에 진학하기 때문에 서울의 명문대와 나머지 비명문대의 임금 격차가 크다.

마르크스의 『자본』을 계승했다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은 질적으로 높은 대학교육과 전문교육에의 투자가 임금 격차를 해소할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한다. 종합하면 한국의 임금 불평등, 지역 불평등, 젠더 불평등을 해소할 최고의 정책은 ‘서울대 10개 만들기’다.    

교육은 사회의 종속변수일까?

그럼 교육은 사회의 종속변수일까? 이 또한 공부와 담쌓은 막무가내 주장이다. 마르크스주의자에게 사회란 곧 경제이고, 경제는 자본가와 노동자와의 착취적 관계다. 따라서 경제를 바꾸어야 사회가 바뀌는 것이지, 교육을 바꾼다고 사회가 바뀌지는 않는다는 논리다.

근대는 산업혁명과 정치혁명으로 이루어졌다. 미국의 교육학자 데이빗 베이커는 사회과학자들이 주목하지 않는 혁명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교육혁명’이다. 왜 우리는 이것을 눈치채지 못했을까? 산업혁명과 정치혁명은 거대한 갈등 속에서 시끄럽게 이루어졌지만, 교육혁명은 사회 구성원 절대다수가 동의한 ‘조용한 혁명’이었기 때문이다. 

베이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교육은 사회의 종속변수가 아니라 독립변수라고 주장한다. 곧 교육이 지식사회와 지식경제를 만들고 사회 자체를 변화시켰다는 것이다. 라투르식으로 표현하면 교육과 사회는 공창조(co-creation) 또는 공동생산(co-production)의 과정이지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주장처럼 단선적인 관계가 아니다.

인터넷, 반도체 핵심기술, mRNA 백신, MRI 등 현대사회와 경제를 바꾼 무수히 많은 기술들과 지식들이 대학에서 나왔다. 대학이 곧 경제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주장은 교육을 창조권력으로 보지 못하고 단지 자본주의의 하수인으로 보는, 사실적으로도 맞지 않고 이론적으로도 맞지 않는 허무맹랑한 것이다. 

마르크스는 생전에 자신은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했다. 대다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마르크스를 자세히 공부하지 않고 단순하게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는 공부하지 않는 자들의 오만함을 싫어했다. 그는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역경 중의 역경을 공부, 오직 공부로 돌파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신도 아니고 악마도 아니다. 그는 공부하고 또 공부하고 끝까지 공부한 인간이었다.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황우석 사태를 연구하다 영감을 받아 ‘21세기 파우스트’ 『문두스』(소설)를 오랫동안 집필하여 최근 출판했다. 교육지옥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사회적 요구에 대한 응답으로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출판해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EBS 다큐멘터리 K <서울대 10개 만들기> 방영). 지식과 권력 3부작인 『지배받는 지배자: 미국 유학과 한국 엘리트의 탄생』, 『지민의 탄생: 지식민주주의를 향한 시민지성의 도전』, 『하이브리드 한의학: 근대, 권력, 창조』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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