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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받는 지배자』가 『한국에서 박사하기』에게
『지배받는 지배자』가 『한국에서 박사하기』에게
  • 김종영
  • 승인 2023.05.03 0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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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주먹 ⑨

현대국가는 지식국가다. 지식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대학에서 나온다. 그런데, 대학과 학문이 붕괴되고 있다. 한국만큼 대학에 투자하지 않는 국가도 없다. 대학과 학문, 교육에 대한 비판적이고 통찰력 있는 분석이 필요한 때다. 최근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쓰고, ‘지식과 권력’ 3부작을 내놓았던 김종영 경희대 교수(사회학과)가 도발적인 문제 제기에 나섰다. 학문과 정책(정치)의 연결에 대한 고민을 던진다.

‘한국에서 박사하기’는 글로벌 렌즈만으로도 
로컬 렌즈만으로도 이해될 수 없다. 
학문의 글로벌·내셔널·로컬의 구조와
 상호작용에 의해서 다층적으로 이해돼야만 한다. 
한국의 학계는 미국 대학의 글로벌 위계와 
한국의 SKY라는 로컬의 위계로 이루어진다. 
개인의 학문적 열정으로 극복하기에 매우 힘든 장벽이다.

‘교수보다 훨씬 낫네!’ 내가 『한국에서 박사하기』를 읽고 난 후에 느낀 전체적인 소감이다. 한국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거나 갓 박사학위를 받은 8인이 한국의 대학과 학계에 펀치를 날렸다. 이 책은 도발적이고, 재미있고, 또한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 준다. 교수보다 훨씬 나은 이유는 이들의 문제의식 때문이다.

논문을 찍어내는 ‘생활인으로서의 교수’들은 아이러니하게 한국의 학계와 대학에 대해서 깊게 생각할 정도로 여유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책에서도 지적하듯이 한국 교수들은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다. ‘어떻게 알았지?’ 나는 책을 읽다가 여러 번 빵 터졌다. ‘논문 양치기’(양으로 때우는 사람들)이기에 생각할 시간이 없다.

정치적이고 발랄한 정책도 제시

이 책은 그저 학계 경계인들의 경험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가속화된 학계’(필립 보스탈), ‘철장 속 일차원적 연구자’(베버와 마르쿠제), ‘시민사회와 단절된 게토로서의 대학과 학계’ 등 상당한 이론적 통찰력도 제공한다.

이 책은 또한 한국의 대학과 학계를 변혁하기 위해 정치적 의사 결정에의 참여, 인문·사회 연구자의 사회적 역할 확장, 사회적 아젠다를 주도할 수 있는 슈퍼스타 만들기 등의 정치적이고 발랄한 정책도 제시한다.

하지만 이 책은 한편으로는 걱정·불안·우울로, 다른 한편으로는 도전·희망·학문에의 열정으로 널뛴다. 이런 현상은 내가 이미 『지배받는 지배자: 미국 유학과 한국 엘리트의 탄생』에서 심도 있게 설명한 것이다. 학문은 ‘감정적 작업’이며 이는 학문 공동체로부터 부여받는 학문 자본(부르디외)과 학문에 대한 집단적 열정(뒤르케임)에 의해 유지된다. 따라서 학문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것이다. 

교수 집단조차도 어쩔 수 없는 장벽

‘한국에서 박사하기’는 글로벌 렌즈나 로컬 렌즈만으로는 이해될 수 없다. 이는 학문의 글로벌·내셔널·로컬의 구조와 상호작용에 의해서 다층적으로 이해돼야만 한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한국의 학계는 미국 대학의 글로벌 위계와 한국의 SKY라는 로컬의 위계로 이루어진다. 이는 개인의 학문적 열정으로 극복하기에 매우 힘든 장벽이다.

따라서 교수들은 대학원생들에게 ‘유학을 가라’(91쪽)고 조언할 수밖에 없다. 이 장벽은 교수 집단조차도 어쩔 수가 없는 불가항력적인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국에서 박사하기』는 패배주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한국의 학계와 대학을 저격한 책으로 대단히 뜨겁게 달구어져 있다. 하지만 나는 매우 차갑게 이를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한국의 학계와 대학을 저격한 사람은 많지만, 똑바로 쏜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세계 대학사를 연구하면 세계적인 대학 시스템의 구축은 똑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경쟁과 특성화의 원칙에 의해 연구중심대학을 전국에 세우는 것이다. 독일·미국·중국이 19·20·21세기에 똑같은 방식으로 세계적인 대학 체제를 구축했다. 연구중심대학은 대학원 중심대학이며 이공계뿐만 아니라 인문사회계도 포함한다. 

이를 위한 최상의 방책은 당연히 ‘서울대 10개 만들기’다.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최대의 수혜자는 학문 후속세대다. 왜냐하면 전국에 1만 명의 교수를 뽑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중 절반은 인문사회계에 돌아갈 것이다.

나는 ‘SKY’ 교수들이 책도 읽어보지 않고 비판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이는 누가 보더라도 황당한 짓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자기 제자들의 밥상을 걷어차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학문의 자식들에게 밥을 먹여주지는 못할망정 남이 차려준 밥상은 차지 말자.  

물론 학문 후속세대 모두가 교수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대학 인프라의 확장은 교수들뿐만 아니라 대학과 학계에 종사하는 모두에게 이득을 준다. 한국의 박사들에 대한 구조적인 차별 때문에 40~50% 정도의 교수직은 일정 기간 동안 쿼터제를 도입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는 대부분의 미국 유학파 교수들도 동의하는 사안이다. 왜냐하면 이들도 한국 제자들을 길러내고 있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예산과 정치적 설득

문제는 예산과 정치적 설득이다. 예산 문제는 매우 복잡한 사안이지만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방안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에 대학지원을 넣는 것이다. 국세의 20.79%를 초중등교육에 강제적으로 배당하기 때문에 한국의 초중등교육 1인당 투자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반면 한국 대학은 이 책에서 지적하듯 기득권 대학과 학계의 무관심 때문에 아사 직전이다. 이 법이 매우 경직되어 있기 때문에 기획재정부조차 반드시 바꾸어야 할 법으로 인식하고 있는 마당에 새로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을 만드는 것은 가능성이 거의 없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에 대학지원을 넣는 것은 큰 정치적 싸움이다. 이를 위해 누가 싸울 것인가? 가장 답답한 사람들이 싸워야 한다. 8명이 모였으면 80명, 나아가 800명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박사하기』 저자들은 대학원에서 인권·여성·노동 문제 등으로 운동을 해 온 사람들이다. 이들 중 일부는 학계와 대학에 대한 정치적 의사 결정에 직접 참여해본 경험이 있어 정치인·원로들과의 연대 형성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여기서 나는 이들이 결정적으로 사태를 잘못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문재인 정권 당시 진보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이 교육부·국가교육회의·교육청을 완전히 장악해 교육 권력의 삼위일체를 성취했다. 하지만 대학과 학계에 이들이 이룩한 업적은 무엇인가? 아무것도 없다. 정말 아무것도 없다. 있다면 반박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비빌 언덕은 없다

이 책의 저자들도 이를 알고 있다. 하지만 학계의 주류가 아니라 경계인들이기에 비빌 언덕이라도 찾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비빌 언덕은 없다. 이것이 이들의 비극이다. 이들 젊은 세대의 문제 제기는 훌륭하였으나 똑같은 실패의 역사를 반복하려 한다. 이들이 새로운 성공의 역사를 쓸 수 있을까? 조직적으로 끝까지, 정말 끝-까-지 싸운다면 나는 조그마한 승산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 앞에 놓인 거대한 장벽을 똑바로 바라보아야 한다. 또한 이상주의는 간직하되 『지배받는 지배자』의 마지막 결론을 명심하는 편이 좋으리라. Academia Immunda(학문은 더럽다).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교육지옥’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사회적 요구에 대한 응답으로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최근 출판했다. 지식과 권력 3부작인 『지배받는 지배자: 미국 유학과 한국 엘리트의 탄생』, 『지민의 탄생: 지식민주주의를 향한 시민지성의 도전』, 『하이브리드 한의학: 근대, 권력, 창조』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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