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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하이머, 국가의 무기로서의 대학
오펜하이머, 국가의 무기로서의 대학
  • 김종영
  • 승인 2023.08.14 08: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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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주먹 ⑫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현대국가는 지식국가다. 지식은 대학에서 나온다. 그런데 대학과 학문이 붕괴되고 있다. 한국만큼 대학에 투자하지 않는 국가도 없다. 대학과 학문, 교육에 대한 비판적이고 통찰력 있는 분석이 필요한 때다. 최근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쓰고, ‘지식과 권력’ 3부작을 내놓았던 김종영 경희대 교수(사회학과)가 도발적인 문제 제기에 나섰다. 학문과 정책(정치)의 연결에 대한 고민을 던진다.

최근 대입에서의 킬러 문항 논란은 
한국인이 가진 대학에 대한 너무나 편협한 시각을 드러낸다. 
지난 100년 동안 대학을 오직 서열과 지위 경쟁의 
장으로 여기는 풍토가 지속되었다. 
대학은 학벌을 주는 지위 권력에서 
새로운 지식·경제·국가를 만드는 창조 권력으로 재탄생해야 한다. 

“남한 GDP가 북한 GDP의 100배가 넘는다고 해도 핵무기를 이길 수 없어. 언제까지 미국의 핵우산에 기댈 거야. 영원한 우방이라는 게 세상에 어디 있어. 『총균쇠』를 그렇게 읽고도 1532년에 있었던 역사적 교훈이 뭔지도 모르고 있어.” 나의 소설 『문두스』에 나오는 구절이다. 줄기세포 원천기술을 가진 조선 최대의 비밀결사조직 삼문대는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와 ‘빅이스트 딜’(biggest deal)을 한다. 삼문대는 모사드가 원하는 예수 복제를 해주는 대신 이스라엘로부터 핵무기를 얻는다. 

제라드 다이아몬드는 『총균쇠』에서 근대사의 가장 큰 충돌은 1532년 잉카 제국의 8만 군대와 스페인의 168명의 카하마르카 격돌이라고 썼다. 총과 칼로 무장한 168명의 군대가 손도끼와 나무 곤봉으로 무장한 잉카의 8만 군대를 순식간에 무찔렀다. 아무리 좋은 화살이라도 총을 이길 수 없었다. 수천 대의 전투기와 수십 대의 항공모함일지라도 핵무기를 이길 수 없다.

과학기술학의 대가 앤드류 피커링은 이를 ‘물질적 불가공약성’(material incommensurability)이라고 부른다. 토마스 쿤의 저 유명한 ‘패러다임의 불가공약성’을 물질 세계에 적용한 것이다. 핵무기는 모든 무기를 뛰어넘는 전혀 다른 패러다임의 무기라는 뜻이다. 

핵무기로 엮인 거대한 미스터리, 오펜하이머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오펜하이머」가 미국에서 개봉됐다. 한국에서는 광복절을 맞이하는 8월 15일에 개봉될 예정이다. 원자 폭탄의 아버지, 로버트 오펜하이머(1904~1967)는 2차 세계대전을 끝낸 미국의 영웅이자 매카시즘의 광풍에 휩쓸려간 비극적 물리학자다.

이 영화는 카이 버드와 마틴 셔윈이 공저하고 최형섭 교수가 탁월하게 번역한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퓰리처 상 수상작)를 원작으로 만들어졌다. 놀란 감독의 영화가 한국에서 상영되면 남한 자체의 핵무장에 대한 거센 논란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원자 폭탄의 아버지,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2차 세계대전을 끝낸 미국의 영웅이자 매카시즘의 광풍에 휩쓸려간 비극적 물리학자다. 사진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의 한 장면이다. 

오펜하이머의 생애는 과학·대학·국가·전쟁·정의·사랑·충성·배신·공산주의·파시즘, 그리고 핵무기로 엮인 거대한 미스터리다.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유년 시절의 뉴욕과 자신의 모교 하버드에서의 반유대주의 경험 때문에 진보적 학생 클럽에 가입했다.

오펜하이머는 훗날 노벨상 수상자인 퍼시 브리지먼을 지도 교수로 수학했고, 1923년에는 덴마크 물리학자 닐스 보어의 하버드에서의 강연을 직접 들었다. 그는 화학 전공으로 하버드를 최우등 졸업하고, 케임브리지에서 물리학을 공부했지만 정신 불안과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는 라이덴대학의 짧은 연수기간 동안 독일 괴팅겐대학의 막스 보른을 만나 그 대학으로 적을 옮겼다.  

“괴팅겐대학의 과학 수준은 케임브리지보다 훨씬 낫다. 전반적으로 평가해 보면 전 세계에서 이보다 더 나은 곳을 찾기는 어렵다”고 오펜하이머는 썼다. 2차 세계대전 전까지 독일의 대학은 세계 최고의 대학으로 미국 대학을 압도했다.

원자 폭탄의 아버지 오펜하이머는 독일 괴팅겐대학에서 물리학자로 태어났다. 이 대학에서 그는 하이젠베르크, 디랙, 파울리, 요르단 등 양자 역학을 확립한 사람들과 연구했다. 괴팅겐대학의 박사학위는 그가 미국으로 돌아왔을 때 스타로 만들어준 결정적인 과학자본이었다.

오펜하이머는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국가적 영웅에서 빨갱이로 낙인찍혀 몰락했다. 그의 생애사는 필립 로스의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보다 훨씬 강렬한 핵폭탄급 이데올로기 스릴러다. 자신의 애인과 동생은 공산주의자였고, 그 자신도 공산당과 여러모로 관계가 있었다.

그는 독일어로 된 맑스의 『자본론』 3권을 모두 읽었고 레닌 전집까지 읽었다. 그는 39세의 나이에 맨해튼 프로젝트의 총책임자가 되었고 전쟁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 초인적 노력과 의지를 발휘했다.

그는 강렬한 감정적 에너지를 가진 물리학의 비트겐슈타인이었고, 그것이 그의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그의 절친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라비는 오펜하이머를 “대단히 현명하지만, 그보다 더 멍청할 수 없었다”고 평했다. 결국 그는 물리학의 드레퓌스로 조국으로부터 배신당했다.  

대학은 국가가 가진 최고의 무기

맨해튼 프로젝트는 한 과학자로 환원될 수 없는 국가·과학·전쟁·이념, 그리고 대학 간의 복잡하고 예측불가능한 드라마였다. 한국이 일본 제국주의에서 벗어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1945년 8월에 투하된 원자 폭탄이었다.

하지만 이제 한국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국가의 운명을 위협받게 되었다.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번역한 최형섭 교수는 “핵무기는 한반도에 거주하는 우리 모두의 머리 위에 매달려 있는 단검 같은 존재”라며 섬뜩하게 설명한다.    

맨해튼 프로젝트의 총책임자는 오펜하이머였지만, 그것은 대학에 재직한 연구자들의 공동 작업이었다. 캘리포니아대학-버클리(로버트 오펜하이머, 어니스트 로런스), 시카고대학(엔리코 페르미, 존 맨리), 코넬대학(한스 베테), MIT(로버트 바커), 프린스턴대학(리처드 파인만, 로버트 윌슨), 하버드대학(조지 키스티아콥스키) 등 당대 최고의 대학 교수들과 연구원들이 최초의 핵무기 개발에 참여했다.

대학은 곧 국가의 무기였다. 미국은 냉전 시기에 있었던 스푸트니크 충격을 극복하기 위해 미국 대학의 기초 연구에 올인했다. 왜냐하면 미국은 2차 세계대전에서 입증된 너무나 명백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대학은 국가가 가진 최고의 무기다. 

최근 대입에서의 킬러 문항 논란은 한국인이 가진 대학에 대한 너무나 편협한 시각을 드러낸다. 대학을 오직 서열과 지위 경쟁의 장으로 여기는 풍토가 지난 100년 동안 지속되었다. 1810년 독일 대학은 900년 대학 역사상 가장 중요한 혁명을 일으켰다.

대학은 학벌을 주는 지위권력에서 새로운 지식·경제·국가를 만드는 창조권력이 되었다. 미국 대학은 100년 동안 이를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오펜하이머를 비롯한 무수히 많은 미국 학생들이 독일에서 교육받고 미국으로 돌아왔다. 그 덕분에 미국 대학은 백년 동안의 고독을 이겨 내고 결국 독일 대학을 극복한 창조권력이 되었다.

한국 대학은 또 다시 백년의 고독을 맞을 것인가. 아니면 창조권력으로 재탄생할 것인가. 대학은 국가의 무기다. 아니 대학은 국가가 가진 최고의 무기다. 이를 깨닫지 못하는 국가는 망한다. 왜냐하면 현대국가는 지식국가이기 때문이다.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황우석 사태를 연구하다 영감을 받아 ‘21세기 파우스트’ 『문두스』(소설)를 오랫동안 집필하여 최근 출판했다. 교육지옥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사회적 요구에 대한 응답으로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출판해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EBS 다큐멘터리 K <서울대 10개 만들기> 방영). 지식과 권력 3부작인 『지배받는 지배자: 미국 유학과 한국 엘리트의 탄생』, 『지민의 탄생: 지식민주주의를 향한 시민지성의 도전』, 『하이브리드 한의학: 근대, 권력, 창조』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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