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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산산히 부서진 자들…‘환대의 정치’가 위로
마음이 산산히 부서진 자들…‘환대의 정치’가 위로
  • 김흥현
  • 승인 2023.07.14 10: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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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파커 파머 지음 | 김찬호 옮김 | 글항아리 | 327쪽

모든 비극적 간극에서 희망 담지하는 민주주의
정치 체제를 감성화로 축소시킬 위험성은 유의

2014년 8월 광화문, 당시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단식 농성을 벌이던 유력 정치인 옆에 놓였던 한 권의 책이 화제였다. 그 책은 파커 파머의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이었다. 저자인 파머는 미국 사회를 교육 문제로 관찰 분석하며 대안을 모색하는 사회 운동가이다. 그의 주장은 교육의 핵심 가치는 ‘사랑’에 근거한 용기를 불어넣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그는 정치 체제 역시 용기를 핵심 덕목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오늘날 정치가 환대와 배려를 북돋는 삶을 창발하는 용기의 발현체가 되도록 애쓰자고 제안한다. 용기는 마음(cor)과 연동된 저자의 핵심 개념이다. 책의 결론인 8장에서 저자가 결론적으로 ‘희망’을 말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 희망은 마음이 부서진 자들을 위협하는 숱한 긴장 상태에서도 또 다른 마음이 부서진 자들을 향해 자기 마음을 여는 용기로 창출된다. 

이 책의 제목은 세 개의 단어로 구성되었다. 치유(힐링), 마음, 민주주의다. 제목을 직역하면 ‘민주주의의 마음의 치유’다. 풀어 읽으면 ‘민주주의 정치의 마음은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치유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이다. 이 책에서 민주주의, 마음, 치유는 이 책 전체 내용을 견인하는 동기어(Leitwort)로 기능한다. 그런데 번역본의 제목은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이다. 여기서 ‘비통한 자(the brokenhearted)’는 ‘마음이 부서진 자’, ‘마음이 애통으로 가득한 자’를 의미한다. 이 ‘비통한 자’는 마음이 부서짐으로써 고통 중에 있지만 오히려 이 세계를 향해 마음이 열리는 이중적 행동을 실현하는 자를 함의한다. 

이 책은 모두 여덟 장으로 구성되었다. 1∼3장 개념과 이론, 5∼7장 구체적인 실천, 4장 민주주의의 배양, 8장은 결론이다. 4장을 중심으로 1∼3장과 5∼7장이 이어진다. 첫째, 1∼3장에서는 핵심 개념으로서 마음(cor)’과 ‘용기(courage=Cor+age)’를 다룬다. ‘용기’는 ‘앎의 방식’이 결실로 드러나는 행동이다. 둘째, 5∼7장은 구체적인 실천이다. 낯선 이·타인(5장), 교실·종교(6장), 미디어·사이버 공간(7장)이라는 실제 공간이 제시된다. 셋째, 4장이다. 민주주의의 기원과 성장을 주목한다. 민주주의는 ‘긴장’을 창조적으로 끌어안을 때 제대로 태생하고 유지된다. 마지막 8장은 결론이다. 모든 ‘비극적 간극’에서 민주주의 정치는 ‘희망’을 담지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장점은 두 가지를 제시할 수 있다. 첫째, 민주주의 정치 체제를 마음에 최근접해야 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의 주장은 ‘마음’과 관련해 두 가지 대상을 동시에 아우른다. 한편으로 ‘인간’의 마음이다. 정치는 인간의 마음을 주목할 때 정치답다는 것이다. 산산이 부서진 마음을 보듬어 새로운 세계를 향해 전진하는 힘을 추동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정치’의 마음이다. 정치가 생물이라는 속설을 받아들인다면, 정치 역시 마음으로부터 자기 의지를 발현하기 때문이다. 

둘째, 오늘날 세계 정치는 ‘거기에서’ 일어나는 일로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국경을 초월해서 ‘바로 여기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다. 국소성의 원리(principle of locality)를 초월한다는 사실을 환기시킨 것이다. 반면에 한계이자 유의해야 할 것도 있다. 오늘날 미국 정치력에 기반한 이 논의를 미국 밖의 다른 세계들의 정치 상황에 가감없이 제시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다. 또한 정치의 마음이라는 관점에서 정치 체제를 감성화로 축소시킬 위험성이다. 종합하면, 이 책은 오늘날 우리 정치도 비통한 자들의 마음을 다독여 용기를 북돋는 환대의 정치로 발전해야 한다는 것을 자극한다. 

한편, 2023년 이 책이 우리 현실에 남긴 과제는 명확하다. 우선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는 사회적 책임이면서 동시에 신학과 교회의 의무라는 것이다. 즉 정치란 인간을 환대하는 신학적 기본 테제에 근거한 현실 위로적 삶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학적 정치학은 공의와 정의에 근거하여 약한 자와 연대하고 그들의 용기를 북돋는 인간위로학이기 때문이다. 

 

 

김흥현 
한국성서학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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