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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자를 위한 총체적 회복”…공감 경제학을 꿈꾼다
“가난한 자를 위한 총체적 회복”…공감 경제학을 꿈꾼다
  • 김흥현
  • 승인 2023.06.16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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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자비 경제학: 구약성경과 하나님 나라 경제학』 김회권 | PCKBOOKS | 456쪽

기본소득은 신적 경제 정의 실천하는 자비 경제학
‘가난에 대한 태도’가 국가에 영향 끼치는 절대 원인

“자비 경제학은 가난한 자를 위한 경제 정의의 회복을 꿈꾸는 공감 경제학이다.”

 

1. 서언: 폭력경제에 맞서는 신적 『자비 경제학』 

세계 정치는 정의의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것 같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그 핵인(核因)을 말해보라면 나는 경제정의의 와해라고 말하겠다. 가장 심각한 것은 타인의 안위를 보호하지 않고, 배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모든 사람을 자기 유익을 쟁취하기 위한 경쟁상대로만 보기 때문이다. 자신의 안정을 위해 타인의 삶을 뿌리째 흔들고 위협하는 것이 현실 속에서  정의로 간주된다. 그 거짓 정의가 위협적인 경제폭력으로 스스럼없이 작동한다.

알려진 대로 경제(economy)는 원천적으로 자기 집을 관리하는 ‘청지기 삶(oikonomos)’에서 파생했다. 돌이켜보면, ‘경제’라는 용어에는 신에게서 부여받은 삶을 신실하게 관리해야 하는 인간의 책임이 투영되어 있다. 달리 보면 사람들의 상호 관계가 만들어내는 조화로운 인간 질서를 신의 의지에 순응시키려는 인간의 능동적인 윤리 행동이 담겨 있다. 그 윤리는 욕망을 따라 위로만 오르려는 욕망을 허물고 땅의 사람들에게로 항구적으로 하향하는 신의 시선을 따르려는 자발적 수고다. 어원으로 보자면 인간 역사에서 경제는 인간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는 소유 욕망의 벽을 허무는 일이었다. 균형 잡힌 정의를 상호유지하려는 의지가 공유된 청지기의 삶이었다. 

하지만 경제 개념에 굳게 유지해야 할 청지기 정신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소유의 욕망은 갈수록 경쟁을 유발했다. 경쟁은 타자를 배제하는 탐욕으로 작동했다. 인간에게 능력 차이는 경쟁력의 균형추를 일방적으로 기울어지게 했다. 힘의 불균형이 삶을 지배했다. 경제는 또 다른 폭력의 무기가 되었다. 그뿐만 아니다. 경제력을 자기 삶에 강력하게 탑재한 인간은 신의 정의 의지에 대항할 힘을 가졌다고 스스로 간주하였다. 설상가상으로 신은 자신의 섭리가 무효가 되는 것을 무력하게 응시만한다는 오해를 초래했다. 

2023년 초반 한국 사회를 강타한 ‘빌라왕’ 사건은 이러한 신의 무관심으로 해석될 수 있는 인간 탐욕의 결정판이다. 어그러진 소유 욕망이 다른 이의 지극히 일상적 소유를 태연하게 강탈한 것이다. 무엇보다 이 세계에 대한 신뢰로 자기 미래를 안전하게 탐색해야 할 청년들의 터전을 분쇄해 버린 것이다. 이 음울한 사건을 타의에 의해 강제로 온몸으로 겪어내야만 하는 그들은 하늘을 향해 탄원하고, 땅의 정치에 항변했다. 그러나 세계는 그 폭력으로부터 무심히 고개를 돌려버렸다. 이 땅은 정의로운 인간, 공의로운 사회를 지속하려는 신의 통치가 완전히 무력해졌다는 것을 입증하며 변질하였다. 하지만, 우리는 완전히 절망하지는 않았다. 아직 신의 분투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2022년 코로나 펜데믹 상황에서 출간된 『자비 경제학』은 이 암울한 욕망에 휩쓸리는 인간의 시대에서 정의를 위한 신의 투쟁이 계속된다는 것을 학술적으로 논증한 역작이다. 본서는, 숭실대 인문대학 기독교학과에서 성서학을 강의하는 김회권 교수가 2010년부터 최근까지 한국 경제의 다양한 상황을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발표한 일곱 편의 소논문을 일관된 주제로 최종 편집한 모음집이다. 저자의 학문적 준거는 이른바, ‘하나님 나라 복음에 근거한 신학’이다. 이 주제에 천착하여 자신의 신학적 사고를 인문 사회적 관점과 접목하면서 학문융합을 치밀하게 분석한다. 본서는 인간 소유 욕망이 그물망처럼 뒤엉킨 경제계 안에 아직 신이 의도하는 정의 실현의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것을 변증한다. 기독교 신학에 근거하지만, 그 범주에 머물지 않고 일반적 자본주의 경제학까지 그 사고를 확장한다. 나아가 경제폭력에 시달리는 땅의 사람들을 위한 실천적인 대안을 모색한다.  

우리가 알듯이 ‘경제’라는 실명사는 고대사회의 기록에서는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구약 성경에도 그 용어가 나타나진 않는다. 하지만 그 기저에는 경제와 직결된 현실이 흐르고 있다. 신학자인 저자의 인문학적 기여는 바로 이 점이다. 구약 성경의 신앙적 시선을 종교적 시선에만 치우치지 않고 하늘의 시점을 따라 오늘날 경제학의 관점으로 치환시켰다는 것이다. 이런 학문적 융합을 통해 저자는 구약 성경이 종교적 사회의 문서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경제라는 틀에서 인문・사회과학적 관점을 내재한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구약 성경이 종교적 신앙 지침을 넘어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기는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서 실현하려는 신적 사회 구성체론이라는 것을 효과적으로 논증한다. 

그러므로 『자비 경제학』은 하나님 나라 신학을 함의한 신적 정치 경제 체제에 근거하여 오늘날 폭력화된 자본 우월경제를 비판적으로 분석한 신적 경제학이다.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인간의 기본 삶을 안전하게 보호하려는 일반적 현대 경제학과 대화하려는 저자의 노고가 깃들어 있다. 학문 융합적으로 의미 있는 시도를 보여준 기독교 경제 인문서인 것이다.   

2. 『자비 경제학』의 핵심 주제로서 ‘자비’ 그리고 공평과 정의   

본서를 관통하는 신적 경제학의 핵심 개념은 ‘자비’이다. 이 개념을 지탱하는 관련 요소는 공평과 정의이다. 저자는 이를 토대로 결론에서 그 구체적 실천 방안을 사회적 기본소득으로 제시한다. 이 논의에서 저자가 천착한 것은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횡행했던 ‘자비’의 붕괴다. 이것이 공평과 정의의 와해로 이어졌다는 것을 관찰한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국가 생멸과 직결되었다는 통찰이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의 멸망과 국가적 포로방랑은 ‘자비’라는 경제 가치가 붕괴하고 연쇄적으로 공평과 정의가 와해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저자의 주장은 경제 자비의 상실이 사회 구성원 상호 간 땅의 침탈을 초래했고, 그 결과 국가체제가 붕괴하는 결정타로 작동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자비’는 인간의 긍휼함이 서려있는 감정활동에 국한되지 않는다. 서로 다정하게 돕고 살자는 상호부조에 그치지 않는다. 국가에는 개인의 복지정책 실현을 위한 구호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신적 섭리에 따라 이 피조 세계를 정의롭게 유지하려는 근원적 속성을 추동하는 동기어(Leitwort)로 기능한다. 

이를 좀 더 효과적으로 논증하기 위해 저자는 ‘자비’ 개념을 토라의 형평법과 예언자들의 선포와 연동하여 주목한다. 더욱 중요한 점은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자비의 붕괴와 와해가 곧 국가 생멸에 결정적 원인을 제공했다는 것에 착안하여 오늘날 현실 경제가 타인과 소유 욕망의 경쟁에만 몰두하면서 점차 폭력적 성향으로 전개된다는 것을 분석하는 해석학적 준거로 활용하는 시도이다. 

본서의 주요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저자는 이른바 비가시적 하나님의 통치를 가시적 경제 이념으로 신실하게 따르는 신학에 근거하여 그 신적 통치의 정치 경제적 함의를 제시한다. “하나님 나라는 정의(체데크)와 공의(미쉬파트)의 주초 위에 건설되는 나라이다” (6). 저자는 ‘자비 경제학’의 구성요소로서 정의와 공의(공평)를 강조한다. 

둘째, 저자는 ‘자비 경제학’이 “피억압자의 대표인 ‘가난한 자’들을 해방하고 속량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통치 이념”에서 비롯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저자는 이런 이념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이스라엘 사회의 구체적인 법체계를 안식일, 안식년, 면제년 그리고 희년법 등으로 규정한다(7). 저자는 이런 법체계가 이스라엘 사회 속에서 반복 경험됨으로써 ‘자비’는 점차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확장’과 연동된다는 점을 분석한다. 

이런 현실 지혜는 예언자들을 통해 더 강하게 제시되었다. 예언자들은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실천’을 자기 사명으로 삼았던 신적 언어의 매개자들이었다. 예언자들의 말들을 분석하면 이스라엘 역사가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를 집행하려는 정치 세례의 등장과 퇴장 운동(7)을 반복했다는 점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사회에서 예언자들은 현실에서 최고 통치자인 왕의 행적을 예의 주시했다. 그들의 관점에서 왕의 역할은 국가 생멸의 책임을 부여받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왕은 시민적 무질서, 무정부 상황을 종식하고 중앙집권적 통제 아래 있는 질서를 선포하며 지방적 차원의 모든 억압자를 억제할 사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예언자들의 관심은 왕이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에 부합된 통치를 실현하는가에 있었다.  왕의 책무는 ‘가난한 자들의 땅’의 보존과 보호였기 때문이다.

셋째, 저자는 신학과 정치 경제학적 관심을 병행하여 예언자적 비판 언설을 한편에 두고 동시에 오늘날 정치 경제적 문제에 집중한다. 다시 말해 공평과 정의를 실행해야 하는 하나님의 통치 세계가 ‘땅’에 집중되어있다는 것을 말한다. 동시에 모든 나라의 제왕과 군주의 열정 배후에 공평과 정의로 세계를 향도(嚮導)하는 하나님의 의지가 반영되어있다는 것을 균형 있게 관찰한다.(8)

이처럼 저자의 논의는 고대사회의 경제적 현상을 탐구하여 오늘날 현대 경제의 내적 모순을 분석하는 데 집중하여 그에 대한 대안을 효과적으로 입증한다.   

뮤지컬 《빨래》(2005초연)는 서울을 배경으로 정치경제적 변방으로 밀려나는 외국인노동자, 소시민들의 삶을 ‘빨래’를 소재로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자비 경제학』이 지향하는 공의로운 삶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사진=김흥현

   
3. 『자비 경제학』에 담긴 고대 히브리 경제 체계의 현대적 적용과 관련된 저자의 핵심 논제   

본서의 가치는 고대 히브리 사회의 경제 상황 분석 결과를 현대 경제 사회에 적용할 수 있는 핵심 논제를 끌어냈다는 것이다. 그 핵심 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고대 이스라엘 사회의 형평법이다. 형평법의 출발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종신 계약을 상징하는 선물로 하사한 ‘땅’과 관련된다. 이 땅이 자유농민들에게는 삶을 유지하는 최저 안전망이다. 따라서 이 땅의 안전한 보호는 자기 땅에 거하는 농민들의 자유를 보장해야 신의 명령에 대한 당연한 순종이다. 동시에 자유농민의 몰락은 땅을 매개로 한 신적 계약 관계 파기를 의미한다. 따라서 모세오경의 핵심에는 땅의 권리가 무력으로 빼앗기는 것을 방지하려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의도가 짙게 스며있다(4~5장). 

본서에서 저자는 자신의 기본 주장을 책 4~5장에서 집중적으로 논증한다. “성경의 하나님 나라 경제”에 천착하면서 하나님 나라 경제가 하나님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땅’의 사유화(私有化) 금지로 집약된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저자가 상세히 주석한 결과에 따르면 구약 성경은 ‘땅’을 독점하여 땅을 상실한 사람이 발생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땅을 사유하려는 힘은 자기 땅에서 자유롭게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는 자유농민들을 몰락시킨다. 이 현상이 신적 저주를 촉발한다. 국가적인 개념에서 그 저주는 곧 ‘국가 멸망’의 핵심 원인이다. 따라서 저자의 주장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이 자유농민의 몰락을 막아내는 공동체적 힘이 ‘자비 경제’라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선물로 하사받은 ‘땅’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지파 사이의 주종관계를 상징하는 계약증표이다. 누구를 막론하고 공동체 안에서 그 ‘주어진 땅’을 빼앗거나 빼앗겨 몰락하는 사람이 나타나는 것을 방어해야 한다. 그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끝까지 지켜 주는 책임은 신적 명령에 대한 겸손한 순응이다.     

둘째, 이러한 고대 이스라엘의 형평법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형평법에서 영향받는 것이다. 이 국가들에서는 정치적으로 왕권과 국가 보호를 위한 노동력의 원활한 유지를 위해 형평법을 제시해왔다. 하지만 히브리 성경에 기록된 고대 이스라엘의 형평법은 단순히 왕권 방어를 위한 통치자 중심의 조치가 아니었다. 오히려 자유농민 보호를 견인하는 신적 의지가 좀 더 적극적으로 반영된 것이다. 그 시기에 자유농민의 몰락은 국가 정치경제를 위협하는 난제였다. 따라서 히브리인들의 기록에 의하면 그 관점은 정치적 관점에 그치지 않고 신적 긍휼 의지를 왜곡시킨 결과라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따라서 그 형평법은 ‘땅’의 보호를 통해 ‘가난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 의지를 지속하려는 의도가 배어있다.

이런 점에서 주전 8세기 히브리 사회의 예언자들은 바알과 아세라가 표방하는 부의 축적을 맹종하는 ‘오므리의 율례와 아합의 예법(미 6:16)’을 강력히 비판한다. 이들이 추구한 부의 축적은 ‘다른 신’을 섬기는 종교 배반의 결실이라는 점이 문제다. 본 서의 저자가 예언자들을 관찰하면서 그들이 고대 이스라엘의 형평법을 십계명의 제1계명과 불가분의 관계로 주장했다는 것을 집중적으로 논의하는 이유다. 다시 말해 ‘다른 신’의 숭배로 인한 땅의 상실과 자유농민의 몰락은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의 국가 생멸을 결정하는 절대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신적 정치 경제학으로서 자비경제학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구체적으로 제시되었던 안식년 법, 면제년 법, 희년 법 등으로 정치경제 법체계를 구성했다(3, 6장). 

셋째 저자가 분석한 ‘자비 경제학’은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직면하는 ‘고용 없는 경제 성장’의 해법으로 기능한다. 이것은 ‘인간에게 공감하는 고전 경제학’의 주장과 고대 이스라엘의 자비 경제학이 연동하는 지점이다. 1, 2장에서 저자는 ‘하나님 나라 경제학’이 배태된 사회 상황이자 그것이 적용되어야 할 정치 사회적 이유를 제시한다. 즉, ’공평과 정의’라는 인간 중심의 신적 경제학이 일반사회에서도 충분히 공유될 수 있음을 입증한 것이다.

먼저 1장은 유례없는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고용 없는 상태가 지속적으로 강화되는 현상을 분석한다. 성장과 고용의 역비례관계에 대한 정밀한 원인 분석을 토대로 성경적 경제관이 겨냥하는 정치경제 상황을 제시한다. 저자는 오늘날 경제 성장이 초래한 긴급한 문제는 기업이 자기 성장의 수익을 고용증대로 돌리지 않고 고용감소를 당연히 여기는 기업 이기주의에서 파생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것은 기업이 미래 불투명성에 대한 자기 예방 조치에만 몰입한 결과다. 기업 생존을 위해서 고용 투자가 아니라 예금자산에 몰두하는 반(反)공동체적 태도에서 기인한 것이다.

2장은 “고용 없는 경제 성장 시대에 생각하는 고전적 자본주의”를 다룬다. 저자는 ‘따뜻한 자본주의’라는 관점을 경제의 도덕철학자라 할 수 있는 애덤 스미스 『국부론』과 그 기본 토대인 『도덕 감정론』에서 유추한다. 2장의 핵심 개념은 ’공감(Sympathy)이다. 이에 근거할 때 “보통 인간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공감을 얻음으로써 우리 행위의 적정성(適正性)을 판단하는 타자 의존적, 타자 지향적 윤리 주체”(55)라는 설명이 가능해진다.

이처럼 공감의 고전 경제학은 곧 신학적 정치 경제학은 공간의 고전 경제학과 연동하여 결과적으로 ‘기본소득’을 현실화하는 것으로 현대 사회에 적용된다. 그러므로 본서가 주장하는 ‘자비 경제학’은 국가적 차원에서 오늘날 기본소득론을 토대로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는 거시적 관점에 기여한다. 또한 국민의 관점에서는 인간의 삶이 인간에 의해 사회적으로 몰락되는 일을 방지하여 인간을 최저생계를 보장하는 미시적 관점에 영향을 준다. 이를 토대로 7장에서 저자는 현실적인 대안으로서 기본소득을 주장한다. 

저자는 이 기본소득의 두 토대가 자연법과 구약 성경이라는 점을 전제한다. “기본소득 제도의 정당성은 다음 두 가지 토대로 구성된다. 하나는 자연법적 토대(토머스 페인 Thomas Paine 1737~1809), 구약 성경의 토지 정의법이다. 성경의 토지 정의법은 자연법적 토지 사상과 대동소이하다.”(386) 저자는 이런 자비 경제학이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복지 제도의 활발한 적용이라는 주제를 통해 그 필요성이 더욱 제기된다고 보았다. 고대 시대 삶의 바탕이었던 ‘땅’이 오늘날 ‘자본’으로 대체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기본소득 논의는 고용 없는 경제 성장에 대한 공화국적 보편적 대안으로 제시될 수밖에 없다. 즉, ‘공화국’ 유지를 위한 국민의 노동에 대해 국가가 지급하는 정당한 수입이기 때문이다(405).

페인의 농경지 정의에 따르면 문제는 사유재산제도가 아니다. 오히려 확정된 기득권이 된 사유재산제도가 자연 상태에서의 인간이 누렸던 합법적 재화 향유권을 박탈하는 데 있다(408). 따라서 토지 기초지대(round-rent) 즉, 국민기금 구상은 단지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한 공적 부조나 자선 프로그램이 아니다. 오히려 근대적 토지 사유제가 확립된 사회일지라도 그것이 토지의 절대적 사유 제도를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한편 저자는 토지 가치의 만인 귀속성(410)을 주장하면서 이를 모세오경의 땅 선물 신학과 연결한다. 따라서 가난은 경제 문제가 아니라 신앙의 문제였으며 기본소득은 땅에 대한 만민의 권리(경작권과 소출 향유권)를 일괄적으로 보상하는 제안으로 극단적인 가난을 막는 사상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8장에서 전체 논의를 요약하고 이 연구에 근거하여 다음과 같은 비전을 제시한다. “역사 내재적인 하나님의 행적은 공평과 정의를 추구하는 인간의 세계 변혁적 기투와 투신 안에서 발견된다.”(435) 

현대 역사가들이 공평과 정의 추구와 그것을 요구하는 약자의 아우성이 역사를 견인하고 전진시킨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 일치를 보인다. 이 주장은 바로 이스라엘 예언자들이 오래전부터 외친 모토이 도 하다. 그들은 역사의 완성을 공평과 정의의 궁극적 관철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역사의 종말은 공의와 정의, 미쉬파트(공평)와 체테크(정의)의 궁극 실현이 이뤄지는 날이었다(438).

앞선 정리에 근거한다면, 본서가 주장하는 결론은 다음과 같다. ‘자비 경제학’은 ‘가난한 자’(고대에서는 ‘땅’으로, 오늘날에는 ‘자본’에 무기력하게 억눌리는 사람)를 주목한다. 그리고 그들이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자유로운 삶을 공감한다. 또한 그 자유를 위협하는 요인들을 공평과 정의에 근거한 ‘자비’로 대항하려는 신적 정치 경제학의 현대적 실천 방식이다. 이것이 국가 생멸까지 영향을 준다. ‘자비경제학’은 국가 생멸과 긴밀하다는 것 등이다.

4. 국가 생멸의 핵심 아젠다로서 ‘자비 경제학’과 학문 융합적 함의 

본서의 ‘자비 경제학’은 기독교적 정치 경제학을 함의한다. 일반적으로 알려져있듯이, ‘고아의 아버지, 과부의 재판장’(구약 성경 시편 68:5)이라는 표현은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이 땅의 사람들을 긍휼하는 하나님의 삶을 함축하는 별칭(epithet)이다. 또한 ‘가난한 자’에 대한 신약 성경의 지대한 관심은 예수 그리스도가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의 정치 종교 세력을 향해 나아가는 십자가의 길목마다 여울목처럼 자리한다(참조. 마 19:21; 눅 6:20; 7:22; 18:22; 막 10:21, 12:43 등). 이처럼 저자가 깊고 넓게 입증한 자비 경제학은 역사적 예수에게서도 이미 예시된 것이다. 

예수는 가난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중산계층의 시선 변화를 겨냥한다. 예수가 사회 속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경제 상층구조를 보수하려는 이들의 이기심을 격동시킨다. 그리하여 그들의 자기중심적 삶을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환기하기 위해 분투한다. 한 마디로 예수의 삶은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이해할 때 두드러진다. 이 땅에서 공생애 동안 항구여일하게 하나님과 자신의 하나됨을 선언하면서 이 땅의 가난한 사람들을 긍휼하며 그들을 위한 자비에 근거한 변혁적 삶을 지속적으로 예시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별칭들은 하늘의 하나님이 이 땅에서 ‘가난한 자’를 길벗으로 여기고 자기 몸을 직접 움직여 그들을 위해 실현하고자 했던 하나님 나라의 지향점을 잘 보여준다. 그것이 예수를 통해 재현되었다. 또한 이 별칭들은 구약 성경의 하나님 나라가 저 피안의 세계가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 땅의 삶과 직결한다는 것을 입증한다.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이 별칭들은 고대 이스라엘 사회는 하늘만을 향해 독진(獨進)하는 개인의 종교적 순례를 안내하는 세계가 아니라는 것을 함의한다. 다시 말해 구원받은 개인은 하나님이 피조물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그들을 위해 이 땅에서 분투하며 땅의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예수의 삶을 따라 인류의 공동생존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동시에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은 종교적 문서에만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당대 사회를 겨냥한 정치경제 지침서라는 것을 예해한다. ‘자비 경제학’은 이 사실을 기독교적 관점에서 더욱 전망한다.

본서는 하나님을 따르는 이들에게는 하나님이 주도하는 신국체(神國體)의 실현이라는 희망과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통해 이뤄진 현실에 자신의 모든 것을 기투할만 한 가치가 있음을 권면하는 인문학적 삶의 매뉴얼로 기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자비 경제학’은 하나님 나라의 정치경제 이념이며 동시에 오늘날 자본 중심의 국가 정치체제에서도 실천될 수 있는 현실성 있는 방안이라 할 수 있다. ‘자비 경제학’은 현대적인 기독교 정치 경제학을 함의한다. 어느 사회이든 ‘자비’의 상실과 몰락은 실제적인 정치경제에서도 국가 생멸에 영향을 주는 정치 통치 이념과 긴밀하게 연결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는 것을 신앙의 지고선(至高善)으로 두는 기독교인이라면 필연적으로 가난한 자들에 대한 하나님 나라의 통치 이념을 자신의 실역사 현장과 괴리되지 않도록 간단없이 분투하는 인문학적 정치경제체계를 철저하게 학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저자의 주장은 법의 윤리성을 신학적으로 주장한 미하엘 벨커의 ‘윤리적 감수성’의 관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5. 미하엘 벨커(Michael Wellker)의 정의, 자유에 근거한 ‘윤리적 감수성’과 ‘보편적 법’ 

본서는 ‘자비 경제학’을 논증하는 준거틀(frame of reference)을 고대 이스라엘 사회의 정치경제 체제에 근거하여 도출한다. 그것은 ‘땅의 사유화 금지’와 ‘불가피하게 가난해진 자들의 원상회복’이라는 요소다. 이 요소들을 실현하는 것이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에 기반한 토라의 형평법(衡平法) 준수다. 저자가 천착한 이 두 요소는 구약 성경의 경제학이 이스라엘에 한정되기보다 오늘날 일반적인 경제 문제도 해석할 수 있는 신학적 함의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좀 더 넓게 보자면, 이 관점은 공평과 정의가 인간을 이해하는 근본 토대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입증한다. 이처럼 공평과 정의를 ‘자비 경제학’과 관련짓는 저자의 주장이 포괄적인 기독교 신학과 맥을 같이한다는 것은 벨커의 주장에서도 지지받는다. 

2019년과 2020년에 걸쳐 행한 에든버러 대학교 기포드 강연록(Michael Wellker, Zu Gottes Bild: Eine Anthropologie des Geistes (Leipzig: Evanbelische Verlaganstalt, 2021). 이에 대한 영어본은 In God’s Image: An Anthropology of the Spirit (Grand Rapids: Eerdmans, 2021)이다. 한글 번역본은 김회권, 이강원 공역,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 영(靈) 인간학』 (서울: PCK Press, 2022)이다. 이 책의 “3강 정의 추구의 소명”(79-106)과 “4강 자유 추구의 소명”의 “서론: 정의의 영과 동역하는 자유의 영”(108)을 참고하라.)에서 벨커는 정의와 공의 문제가 곧 인간을 이해하는 신학적 토대를 제공한다는 것을 효과적으로 논증한다. 그는 “3강 정의 추구의 소명”에서 “사회적 국가와 법치주의 국가”라는 서론(80-83)에 이어 “1. 정의와 약자 보호: 수천 년이나 된 오래된 윤리적 감수성”(83-90)을 분석한다.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즉 그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서독)은 “법치 국가와 사회적 국가”의 결합을 시도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법치’란 “보편적으로 구속력 있는 법을 만들고, 모든 국가 기관들의 활동들을 이 헌법과 그것에 딸린 법들에 묶는 국가 스스로의 의무를 수반한다.”라는 것이다. 또한 ‘사회적 국가’란 “모든 시민을 위해 사회 정의와 안전을 확보하고, 사회적 약자들과 기타 보호가 있어야 하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국가의 정치적 자기 의무를 표현한다”라는 것이다. 이처럼 그가 주장하는 ‘법치와 사회국가’의 결합은 몹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해법이다. “한편으로는 본질적으로 모든 사람의 자유와 평등을 의미하는 정의 이상(vision)에 충실하면서도 동시에 복잡한 정치체제에서 정의를 실현하는 과업이다.”(80) 라는 것이다.

한편 법을 집행하는 데 있어서 “약자 보호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면 모든 법과 도덕 발전들에 대항하는”(82) 힘이 있기 마련이지만, 결과적으로 이 상황에서도 “법과 도덕은 모든 작동에서 반드시 신뢰를 끌어내야 한다.”(83) 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신실하고 지속적인 유효성을 가져야 한다.”(83)는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벨커는 “법과 약자 보호의 윤리적 감수성(이탤릭체는 본 서평자의 강조다.) 결합이 정의로운 법의 발전을 위한 추진력의 안정성을 제공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것이 입증된다.”라고 보았다. 여기서 벨커는 ‘윤리적 감수성’이 기독교 신학에서 관찰하는바, ‘법과 긍휼의 결합’으로 치환이 가능하다고 보았다(83). “법과 긍휼의 결합, 정의와 법제화된 약자 보호의 결합은 하나님의 정의롭고 자비로우며,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들도 이제 곤궁하고 약한 자들을 위해 정의를 행하고 도움을 제공할 것을 기대하는 하나님이라고 제시하는 친숙한 구약 성경 전통을 떠올리게 한다.” (83) 벨커의 논의는 “구약과 신약 성경은 이제 멸시, 압제, 착취로부터 고아와 과부를 보호하라는 주제를 근본적 중심 주제로 받아들였고, 사회적 약자들(personae miserae)이라는 큰 집단을 보호하라는 법으로 확장함으로써 그 주제를 보편적 법으로 확산한다.”(84)라는 것으로 이어진다. 

벨커의 주장에 근거하면 본서의 ‘자비 경제학’은 두 가지 점에서 보편적 법으로서 지지받는다. 먼저 ‘자비’라는 용어의 적합성이다. 그가 분석하듯이 본서의 저자 역시 구약 성경의 법치(法治)를 단순히 법에 근거한 통치행위가 아니라 법의 정신을 내재한 ‘윤리적 감수성’에 토대를 둔 통치행위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경제라는 말이 함의하는 바에 따르면, 벨커가 주장하듯, 구약 성경이 인간의 보편적 삶과 신적 개입(섭리)이 불가분의 관계 있다는 점에서 ‘보편적 삶의 방식’을 포괄한다고 분석한 것은 저자의 주장에서 더욱 적확하게 입증된다. ‘자비 경제학’은 벨커가 말한 ‘윤리적 감수성’과 ‘보편적 법’이라는 요소를 모두 내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자가 주장하는 ‘자비 경제학’은 이스라엘이라는 특별한 영역에 국한된 지역법(local law)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국소성의 원칙(principle of locality)을 넘어서서 보편적 원칙으로 이행할 수 있는 신학적 근거를 충분히 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주장들은 오늘날 인간 중심의 경제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촉구한다. 개인과 사회를 구분하면서 인간과 그 공동체의 공평과 정의를 별개로 위협하는 경제는 이미 경제로서의 자격을 잃는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는 인간과 사회의 윤리와 도덕을 구별하거나 그것을 초월해서 작동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171). 이처럼 저자의 관점은 개인과 공동체 속에서 개인이 상호공존하는 인간 중심의 경제학을 옹호한다. ‘자비 경제학’은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 1790)가 주창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경제가 윤리와 도덕 영역을 구분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근거다. 경제는 결국 사회 속에서 인간해방(173)과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저자가 ‘자비 경제학’과 고전 경제학을 연동하기 위해 기본 텍스트로 활용한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 우리 시대의 정치·경제적 기원』(Karl Polanyi, The Great Transformation(1944) 홍기빈 역 『거대한 전환:우리 시대의 정치·경제적 기원』 (서울:길, 2009))과 존 러스킨의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John Ruskin, Unto This Last (1862), 곽계일 역 『거대한 전환:우리 시대의 정치·경제적 기원』 (서울:아인북스, 2020))는 구약의 자비 경제학이 곧 개인과 사회 속에서 인간 동정의 경제학이면서 주전 8세기 예언자들의 인간 중심의 신적 경제를 준행하는 경제학이 오늘날에도 유효하게 연동된다는 것을 입증하는 데 기여한다(175). 이처럼 고전 경제학과 고대 이스라엘 사회의 경제학을 연동하는 서술은 하나님 나라 경제학이 이 세계에서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 운동임과 동시에 이 세계 속에서 하나님을 신앙하는 사람들이 당연히 이 사회에 ‘응답하는’ 운동이라는 것을 시사한다(178). 하나님 나라 운동은 모든 기득권자나 권력 체제를 향해 항구적인 자기 갱신과 자발적 변혁을 요청한다. 이 사회에 급진적 전향을 요구하는 사회적 개혁 운동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본서의 하나님 나라 경제학은 하나님의 명령과 말씀으로 창조되는 나라임과 동시에 인간의 응답과 순종으로 역사 속에 뿌리내리려는 운동의 일환이다(193). 저자가 말하는 계약의 동시대화(레위기 법들의 시내산 동일시)는 개인의 회심과 사회적 신앙 운동이 시대를 불문하고 당대 사회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 이 주장은 개인 구원과 사회 구원을 분리하려는 태도를 배척한다. 개인 구원을 회피한 채 사회 구원에만 몰두하려는 편향된 운동 지향성도 배제한다. 이분법적 태도, 편향적 견해는 하나님 나라라는 통합된 사고, 세계관과 논리적 모순이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 나라 신학에서 개인과 교회, 사회의 변혁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개인의 회심은 곧 사회의 변혁이며 그것은 매 순간 종교적으로 ‘자기 삶 돌이키기’에 근거한 정치 사회적 행동과 긴밀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 교회는 개인의 삶이 사회 안에서 실현되어야 한다는 인문학적, 사회 정치 경제학적 당위성을 당연하게 수용하고 고수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자비 경제학’의 관점에서 회심한 신앙인이나 사회는 국가적으로 희년법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214)를 심도 있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희년법의 의의는 회심한 개인이 반드시 지향해야 할 사회적 회심에 있다. 저자에 의하면 고대 이스라엘의 채무 노예들은 희년을 기다리며 종말론적인 소망 속에서 자신의 어쩔 수 없는 노예살이를 감당할 수 있었다(291). 즉 “하나님 나라의 정치 경제학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통치와 선행적 구원에 응답한 천국 시민들의 자발적인 양도와 겸허한 이웃 사랑에서 실현된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구약 성경의 경제 강령은 현실 정치권력을 장악하지 않아도 대부분 실천할 수 있다.”(221) 즉 개인과 사회의 구분이 의미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저자는 예언자들이 ‘땅의 회복’을 통한 이스라엘의 구원을 선포한 것은 형이상학적 세계로의 도피도 아니요, 밀교적 개인 내면 탐구로 도피하는 것도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것은 사방 대적의 위협 없는 땅으로 와서 재정착하는 것과 관련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예언자들은 죄악의 심판과 정화 이후에 재개될 구원도 가나안 땅의 재정착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한결같이 천명했다고 논증한다(316). 이처럼 개인의 회심과 사회적 변혁의 일관성과 관련한 저자의 주장은 다음 글에서 더욱 잘 읽을 수 있다. “예수님의 구원은 영적, 정신적 해방과 자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 해방이자 자유다. 그것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은혜 충만한 현존을 향유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죄 사함(빚 탕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과 부단한 친교다)이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저자가 시종일관 주장하는 바는 성경의 하나님 나라 경제관이 개인과 사회를 구분하지 않고 오늘날에도 적용된다는 것이다. “현대적인 관점에서 오늘날의 경제관에 대한 대응이 하나님 나라 정치경제관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비 경제학은 구약성경으로부터 발원하여 오늘날 고전 경제학을 거쳐 개인과 사회를 연동하여 현대 경제학이 인간 중심으로 전환할 것을 추동한다(참조. 173쪽의 러스킨의 인간 중심의 시장 경제). 또한 개인 구원은 사회 구원의 활동으로 발현한다는 것도 공증한다. 즉 “하나님의 창조는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물리적 환경의 창조를 넘어서서, 하나님의 성품에 맞는 질서, 신적 친절과 공평(시89:13-14)으로 운영되는 생명 공동체의 창조까지 포함하는 활동이었다.” 이 주장은 앞으로 펼쳐질 현대 경제학에서 개인과 사회를 구분하지 않는 하나님 나라 경제학의 역할을 예해한다.

6. 맺음말:현대 사회의 정치·경제적 회복을 지향하는 자비경제학  

앞서 살펴본 본서의 ‘자비 경제학’은 고대 이스라엘 사회를 중심으로 ‘경제’, 특히 ‘가난’을 면밀하게 분석하여 현대 사회의 기본소득론으로 이어지는 논의이다. 저자의 논의가 깊은 통찰을 제시하는 것과 함께 이 책이 신학적 분석에 기반한다는 것은 신앙 편향적 논의라는 비판을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 연구는 ‘가난’과 ‘부’를 동일선상의 대구로 이해하면서 ‘가난’은 적극적으로 옹호되고, ‘부’는 옹호되면서도 경계해야 할 것이라는 평면적 논조를 유지할 수 있는 비판도 유효하다. 어느 사회이든 가난과 부는 완전히 대립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 근거해서 저자의 주장이 ‘가난에 대한 무조건 옹호’로 오해될 수도 있다. 유의할 것은 저자의 주장이 ‘가난’ 자체가 아니라 ‘가난’에 대응하는 태도라는 점이다. 그 태도가 공평과 정의의 문제이면서 국가의 생멸에 영향을 주는 절대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점이 정치·경제적 관점에서 정치하게 다뤄졌는지는 여전히 비판의 여지가 있는 대목일 수 있다. 본서는 인문학적 관점과 신학적 주장, 정치경제라는 사회적 적용이 융합된 주장이기에 이 세 관점이 균형 있게 유지되는지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이런 비판적 관점을 유지한다면, 본서는 유대 사회의 존속이 하나님의 정의(체다카)와 공평(미쉬파트)을 실현하는 일과 관련 있다는 관점을 다양한 방식으로 시사했다는 점에서 의의 있다. 그리하여 본서는 이스라엘이 신적 정치경제공동체의 대행자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주장한다. 또한 본서는 오늘날 스스로 궤멸의 위기를 자초한 기독교에 대해서도 자기 갱생의 은총을 발견할 수 있는 길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이 책을 통해 기독교, 교회는 여전히 인류 보편적 사랑을 내재한 하나님의 행동 방식에 근거해 금융경제 우월 시대, 부동산과 자본 중심의 세계에 부화뇌동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일깨운다. 오히려 교회는 부의 축적에 몰두하는 삶에서 빠져나와 경제적 빈자(貧者)로 변방으로 내몰린 이들의 아픔에 공감해야 하고, 또한 하나님의 의도를 따라 세계 인류의 공존이라는 거대 담론을 실현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호소한다. 

이런 점에서 본서는 세계와 기독교회를 향해, 또한 현대 과도한 금융사회에 대해 오늘날 우리가 겪는 경제 맹신적 삶의 방식을 과감히 돌이키도록 촉구하는 메시지를 던진다. 이 세계가 자기 욕구를 따라 지계표를 마구 허물어버린 끝에 스스로 세계화의 덫에 걸린 자가당착의 폐해를 신적 메시지로 고발한다. 그리하여 이 세계에서 땀 흘리는 정당한 자기 수고보다도 자기 욕구 충족을 위해 타인을 사지로 내모는 경제 인간의 삶이 세계가 비참해지는 명백한 원인이라는 것을 신학적으로 비판한다. 그런 점에서 『자비 경제학』은 정치 비판학이다. 또한 오늘날 세계가 돈 위에 돈을 쌓는 방식으로 인간 위에 인간이 군림하며 편법과 불로소득으로 점철된 비인간적 금융경제 세계라는 것을 고발한다는 점에서 경제 비판학이다. 본서의 주장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본서는 최소한으로라도 자기 삶의 안정성을 보호받아야 하는 자유노동자들이 무력하게 변방으로 내몰린 현실에 깊이 공감한다. 본서는 우리 사회의 총체적 회복을 신앙만이 아니라 정치·경제적 관점에서 꿈꾸는 공감 경제학이다. 

 

 

김흥현
한국성서학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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