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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소멸’로 가고 있는데…국가적 비전과 철학이 없다
‘국가 소멸’로 가고 있는데…국가적 비전과 철학이 없다
  • 김재호
  • 승인 2023.06.19 15: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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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인문사회 분야 ‘메가프로젝트’ 토론회

이번 토론회는 지난해 12월 2일, 국회에서 열린 제1차 ‘메가프로젝트’ 정책토론회에 이어 같은 주제로 열리는 두 번째 토론회였다. 제1차 토론회가 인문사회 분야 메가프로젝트의 필요성과 가능성과 사례를 살펴봤다면, 제2차 인문사회 분야 ‘메가프로젝트’ 정책토론회는 거대위기 극복에 인문사회학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이날 사회는 안기돈 충남대 교수(경제학과·과학기술지식연구소장)가 맡았다. 

강성호 한국인문사회연구소협의회장(순천대 사학과)은 “인문사회 분야 예산이 5년 내 공적 R&D의 2%가 되도록 매년 20%씩 예산을 증대해야 한다”라며 “‘인문사회 분야 메가프로젝트’ 사업 현실화를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과 시범사업을 검토하기를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지난 13일, 한국인문사회연구소협의회 주최로 인문사회 분야 제2차 ‘메가 프로젝트’ 정책토론회가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이번 토론회의 주제는 ‘거대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였다. 사진=김재호 

「‘통섭’과 인문사회분야 메가프로젝트」를 발표한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에코과학부 생명과학전공)는 아리스토텔레스(BC 384~BC 322),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 연암 박지원(1737~1805), 다산 정약용(1762~1836)을 통섭의 학자로 제시했다. 최 교수는 “지식의 총량이 거대해져서 한 분야를 팔 수밖에 없는 시대”라며 “우물을 깊이 파려면 넓게 파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융합은 성과가 별로 없다. 특히 학문의 융합은 어렵다. 최 교수는 통합은 물리적, 융합은 화학적, 통섭은 생물학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융합은 목표이고, 융합의 방법론 혹은 철학적 배경이 통섭이 아닐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통섭적 융합을 제안한 것이다. 최 교수는 “한 사람의 마음속에서도 통섭적 합침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패배주의 극복하는 새로운 통합적 역사관

이어진 토론에서 신동원 전북대 교수(과학학과·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장)는 「한국 과학문명의 성찰을 통해 미래의 길을 찾기」를 발표했다. 신 교수는 “한국은 세계 과학문명의 박물관”이라며 “과학 후진국과 선진국의 명암을 모두 경험했다”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한국은 과학기술 중시 사회인가, 과학기술 경시 사회인가? 선발 국가들의 전철을 피하면서도 후발 국가들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꿈꿀 수 있는 새로운 길은 무엇인가? 누구를, 무엇을 위한 메가프로젝트인가? 메가프로젝트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신 교수는 “빠른 추격의 비결은 전통 과학문명의 깊이에 있었다”라며 “자기 성찰의 저력은 한국의 민주주의”라고 강조했다. ‘무엇을 알릴 것인가?’라는 물음에는 문명사적 관점에서 본 한국의 과학기술이 제시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전북대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는 12년만에 『한국의 과학과 문명』 총서 전 30권을 완간한 바 있다. 총서는 영국 케임브리지대 출판부를 통해 번역·출간될 예정이다. 

아울러, 신 교수는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시·공간 축으로 시각화한 ‘한국 과학기술의 세계지도’를 제안했다. 한국 (근현대)과학기술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는 역사지도를 만드는 것이다. 또한 유라시아 과학기술 로드맵(가칭)도 언급됐다. 신 교수는 “한국사를 자주적이고 통합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라며 “패배주의 극복을 위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새로운 통합적 역사관을 마련하자”라고 당부했다. 

 

숙론·통섭 실행 위한 이념적 기초

엄연석 한림대 교수(태동고전연구소장)는 최재천 교수 발표에 대해 논평했다. 엄 교수는 프랑스 아날학파의 ‘인간과학’, MIT의 STS 프로그램과 같은 탈분과 학제간 연구, 클라우스 슈밥의 시스템 리더십과 가치 중심적 리더십, 철학자 박이문(1930∼2017)의 생태학적 문화론 명제 등을 “지식의 통섭에 기초한 사회문화적 숙론(熟論)과 통섭(統攝)을 실행하기 위한 이념적 기초이며 구체적 기준이자 실행 방안”이라고 언급했다. 

엄 교수는 세 가지 질문을 했다. 첫째, 자연과학자·공학자와 인문학자들이 학제간 통섭적 연구를 진행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이론·실행 상의 문제는 어떻게 극복하나. 둘째, 통섭적 연구를 제도적으로 실행해 갈 수 있는 논의기구와 제도적 장치는 어떤 모델이어야 하나. 셋째, 통섭의 이념으로부터 통섭적 지식, 통섭의 주체와 대상, 통섭을 위한 제도와 교육, 통섭적 지식의 적용, 통섭의 효과 등과 같은 단계적·절차적 과정은 어떻게 고려돼야 하나. 엄 교수는 “이러한 문제를 포함해 분단된 한국 사회가 지향해야 할 미래상은 무엇인가”라고 말했다. 

 

국가공동체 종식 위험에 처한 한국

“합계출산율이 0.5 수준이 되면 ‘회복탄력성’이 없어질 것이다.” 이관후 건국대 교수(상허교양대학)는 「‘희망 소멸사회’와 메가프로젝트의 필요성」 토론 발표에서 “한국이 ‘수축사회’를 넘어서 ‘소멸국가’로 가고 있다”라고 우려하며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내년이면 한국은 전체 인구의 20% 이상이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라며 “지금 한국은 한두 세대 안에 국가공동체가 종식될지 모르는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의 합계출산율 1.0이 붕괴한 건 2018년이었는데, 지난해에는 0.78로 떨어졌다. 4년 만의 일이다. 그렇다면 0.78에서 0.5로 가는 건 얼마나 걸릴까? 이 교수는 그 원인으로 성공의 딜레마로서의 ‘가장 극심한 경쟁’을 지목했다. 이 교수는 “나는 지옥에 살지만 내 아이까지 지옥에 살게 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라며 “이것은 ‘경쟁을 통한 공정 능력사회’를 지향한 결과로서의 ‘희망 소멸사회’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메가프로젝트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인문·사회과학 분아를 예산지원하는 것은 단지 특정 학술 분야의 전문가를 지원하거나 학문후속세대를 양성하는 것으로만 인식돼 왔다. 이 교수는 “그 결과 한국은 지금 소멸국가, 희망 소멸사회를 맞아서 어떠한 국가적 비전과 철학을 보여주지 못한 지경에 이르렀다”라고 진단했다. 그는 인문사회 분야 메가프로젝트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다양한 국가적 난제를 500억 미만의 예산으로 수년간 수백 명의 인재를 동원하여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면, 반드시 검토해 볼 일이라고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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