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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후반 북한 주민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1950년대 후반 북한 주민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 우동현
  • 승인 2022.09.08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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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소장 북한사 사료 이야기⑥ 한국 안의 러시아 소장 북한사 사료(2)

그간 필자는 러시아 문서고(文書庫, archive)와 문서보관소(repository)에 소장된 북한사 사료에 관해 다뤘다. 이번에는 관련 자료가 담긴 자료집을 살펴본다.

자료집(material book)은 역사학 연구를 돕는 중요한 수단 중 하나다. 특히 북한 국립문서고에 접근이 불가능하고, 이를 우회할 최선책인 러시아 방문조차 비용 부담으로 쉽지 않은 연구자에게 관련 자료집은 가뭄에 단비이다.

가뭄에 단비 같은 ‘자료집’…대부분 번역문

2022년 하반기 현재 이용 가능한 자료집은 적지 않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낸 『북한관계사료집』(이하 『사료집』) 중 71~80권과 『해외사료총서』는 6·10·11·33~38권이 러시아 자료의 번역을 담고 있다. 동국대 발행 『러시아문서 번역집』 26~34권, 고려대 발행 『한반도 분단 관계 자료집』의 2권, 박종효 박사가 엮은 『러시아 연방 외무성 대한정책 자료』 1~2권, 전현수 교수가 역간한 『소련공산당과 북한 문제』 등도 희귀한 자료의 번역이다. 2002년 중앙일보가 CD 형태로 낸 『평양주재 소련대사관 비밀문서철』 또한 유용하다. 

국내에서 나온 러시아 소재 북한사 자료집은 대부분 번역문이다. 『사료집』 71~72권이나 『소련공산당과 북한 문제』처럼 일부 자료집은 예외적으로 원문도 제공한다. 완성도 높은 번역이지만, 가끔은 원문의 내용과 꽤나 다른 경우가 있기에, 연구자는 가급적 원문과 교차검토를 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연방대외정책문서고 역간한 ‘사료집’ 값져

여러 자료집 중 러시아연방대외정책문서고(AVPRF) 소장 북한사 사료를 역간한 『사료집』이 주목된다. AVPRF가 러시아연방대통령문서고(APRF)나 러시아연방 국방성중앙문서고(TsAMORF)처럼 접근이 아주 힘들다는 점에서 이 자료집의 가치는 무척 높다.

『사료집』 73~76권은 1953~1960년 평양 주재 소련 외교대표(대사, 대리대사 등)가 남긴 공식 일지(dnevnik), 77~79권은 비슷한 기간 평양 주재 소련 대표부 직원들과 북한 관료들과의 대화록(zapis besedy), 80권은 모스크바 주재 북한 대표부 직원들과 소련 외무성 관료들과의 대화록이다. 소련 외교관들이 ‘정치적 가치’가 있다고 본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비록 소련 사람의 관찰이지만, 이 자료들은 북한의 진실(眞實)에 가장 가까운 정보를 담고 있다.

북한의 진실에 가까운 정보들

예컨대, 이 기록은 당대 북한 사회의 전통과 변화를 보여준다. 필자가 소개할 자료는 소련·중국 대사관 수행원들이 1958년 8월 2일, 북한 과학원 고고학 및 민속학 연구소의 북한 학자와 중국어로 가진 대담이다. (『사료집』 79권, 203~209쪽) 1950년대 후반 당시 북한 주민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1. 민속 명절에 대하여
“40년 전에 평양과 다른 곳에서 4월 8일을 ‘등불절’로 기념했다. 전기가 들어오면서부터 이 명절을 쇠는 전통이 점차 사라졌다. 현재는 과거를 추억하며 일부 건물의 현관에 등불을 걸어놓는다.”

‘북한 과학원 고고학 및 민속학 연구소 민속학연구실 연구원 김일출 동지와의 대담록’(AVPRF, f. 0102, op. 18, p. 28, d. 5, l. 91). 사진=우동현
‘북한 과학원 고고학 및 민속학 연구소 민속학연구실 연구원 김일출 동지와의 대담록’(AVPRF, f. 0102, op. 18, p. 28, d. 5, l. 91). 사진=우동현

2. 생일
“부모들은 신생아의 100일을 기념한다. 하객은 반드시 선물을 가져와야 한다. 선물로는 옷, 신발, 모자가 제일 좋다. 돈을 주는 것은 매우 편리하다고 여겨진다. 손님들은 대개 아침 식사에 초대된다.”

‘대담록’(AVPRF, f. 0102, op. 18, p. 28, d. 5, l. 91). 사진=우동현

3. 몇 가지 혼례풍습
“중매자를 보내고 상견례를 하는 풍습은 현재 지켜지지 않는다. 신부 선정은 소련에서와 같다. 하지만 결혼식 자체엔 옛 풍습이 남아있다. 예컨대, 일부 지역에서는 현재까지 혼인날에 신부를 끈으로 묶고 눕혀 나무막대기로 발바닥을 때린다. 딸의 ‘구타’를 막기 위해 어머니는 손님들을 잘 접대해야 한다.”

“결혼식 때 필수 음식으로 국수가 나온다. 하객들은 모두 이를 한 그릇씩 먹어야 한다. 거절하면 주인들이 섭섭해 한다.”

‘대담록’(AVPRF, f. 0102, op. 18, p. 28, d. 5, l. 92). 사진=우동현
‘대담록’(AVPRF, f. 0102, op. 18, p. 28, d. 5, l. 93). 사진=우동현

4. 손님 접대
“아내를 데리고 손님으로 가지 않는 풍습이 남아있다. 연회와 야회 등에서 부부, 특히 나이든 부부를 보는 것은 매우 드물다. 젊은 세대는 낡은 사회에서 물려받은 이러한 풍습을 거의 지키지 않는다. 낡은 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여성을 완전한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대담록’(AVPRF, f. 0102, op. 18, p. 28, d. 5, l. 94). 사진=우동현

5. 이름과 성
“직장에서는 일반적으로 성(姓)에다 ‘동무’라는 말을 덧붙여 부르거나 직책에 따라 ‘동지’라는 말을 덧붙여 ‘위원장 동지’, ‘지배인 동지’라고 부른다.”

‘대담록’(AVPRF, f. 0102, op. 18, p. 28, d. 5, l. 95). 사진=우동현

전기가 들어오면서 명절을 쇠지 않는다거나 부부 동반 나들이, 소련의 영향을 받아 ‘동무’를 붙이는 광경은 흥미로운 변화이다. 100일 잔치나 결혼식 때 국수를 먹는 것처럼 풍습의 존속도 볼 수 있다. 한편 신부를 ‘구타’한다는 사실은 확인이 필요하다. 대담 며칠 후 소련 수행원이 일지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낡은 사회’의 잔혹성을 부풀리기 위해 ‘신부’로 적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 자료집들은 북한 공간물에 담기지 않은 사실들을 실로 방대하게 수록하고 있어 매우 귀중하다. 다음 편에서는 다양한 형태로 접근할 수 있는 세계 속 러시아 소장 북한사 사료를 살펴본다.

우동현 객원기자 / 요크대 박사후과정 
UCLA에서 한국현대사(북한-소련 관계사)로 논문을 쓰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국사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다.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발행하는 『The Historical Journal』에 한국인 최초로 논문이 게재됐다. 역서로는 『체르노빌 생존 지침서』, 『플루토피아』, 냉전기 미국 핵기술의 국제사를 다룬 『저주받은 원자』(가제), 국제공산주의운동을 2차 세계대전의 원인으로 풀어낸 『전쟁의 유령』(가제), 국사편찬위원회 해외사료 총서 36권 『해방 직후 한반도 북부 공업 상황에 대한 소련 민정청의 조사 보고』(공역) 및 38-39권 『러시아국립사회정치사문서보관소 소장 북한 인물 자료 Ⅱ·Ⅲ』(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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