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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북한의 우방 러시아를 찾은 이유
내가 북한의 우방 러시아를 찾은 이유
  • 우동현
  • 승인 2022.06.16 09: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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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소장 북한사 사료 이야기① 북한사 연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북한사 연구자 우동현 씨가 쓰는 ‘러시아 소장 북한사 사료 이야기’ 연재를 시작한다. 러시아에 소장된 국립문서고에서 필자가 찾은 희귀 자료도 공개한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러시아 국립문서고, 한국과 세계 속의 러시아 국립문서고를 살펴 본다. 이를 통해 북한사 연구의 현황과 과제, 전망을 전할 계획이다.

한반도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이면서 냉전사의 전개 양상을 바꾼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의 대한민국 침공, 즉 남침(南侵)으로 시작됐다. 그런데 이 서사는 언제나 역사적 사실이었을까?

어떤 국가가 전쟁을 일으켰는가의 문제는 굉장히 중요한 사안이다. 전쟁을 시작한 국가가 그 전쟁의 모든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뿐만 아니라, 1937년 일본의 중국 침략, 1964년 미국의 월남전 개입, 2003년 이라크 전쟁에 이르기까지 첫 발포의 도화선을 당긴 국가는 국제적 지지를 받기 힘들다. 침공의 원인이 돈바스 전쟁처럼 역사적이든, 루거오차오(盧溝橋) 사건, 통킹만 사건, 대량살상무기 보유 주장 등 자작극이든 말이다. 

40년 넘은 사실 공방이 일단락되기까지

한국전쟁도 마찬가지였다. 개전 초기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은 이승만 대통령의 집무실을 뒤져 서류를 모으고 포로들의 증언을 채록해 대한민국이 북한을 침공했다는 이른바 ‘북침설’의 증거를 만들었다. 이후 미군 주도의 UN군이 북한 지역을 점령하면서 실로 방대한 문서가 탈취돼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옮겨졌고, 이는 ‘남침설’의 근거가 됐다. ‘북침설’과 ‘남침설’의 진실 공방은 개전 주체를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 없이 이어졌다.
한편 1970~1980년대 미국 역사학계에서는 여러 정황 증거를 이용해 ‘북침설’이 타당할 수 있다는 설명이 나왔다.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가 쓴 두 권짜리 『한국전쟁의 기원』 은 저자를 일약 미국 역사학계의 거두로 등극시켰다.

40년 넘게 이어진 사실(史實) 공방은 1994년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800여 쪽에 달하는 한국전쟁 관련 문서를 김영삼 대통령에게 전달하면서 일단락됐다. 해당 문서는 김일성의 ‘무력 통일’ 의지와 이에 대한 무기 지원 요청, 스탈린의 조건부 동의, 한국전쟁에서 마오쩌둥의 역할 등 개전 주체를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였다. 이후 북한의 역사적 우방인 러시아와 중국마저 한국전쟁의 개전 주체를 북한으로 인정하면서, 오늘날 ‘북침설’을 주장하는 나라는 북한이 유일하다.

이처럼 사료(史料)는 역사학 연구에서 가장 중요하다. 여기서 사료는 후대의 연구자가 과거를 재구성할 수 있도록 돕는 정보를 느슨하게 부르는 말이다. 고대인들이 대나무를 엮어 기록한 죽간(竹簡)부터 근대 국가가 생산한 정책 결정 문서에 이르기까지 사료는 다양하고 다채롭다. 하지만 그 핵심은 후대 연구자가 읽고 이용할 수 있는 ‘기록된 정보(written information)’이다.

필자가 러시아에서 발굴한 1955년도 북한 공간물 『미제와 리승만 도당들의 전쟁 재도발 음모』 표지 사진. 이러한 책자들은 북한에서 대내적으로 ‘북침설’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기록된 정보’ 위주의 역사학 갱신 노력

최근 미국 역사학계에서는 기록된 정보 위주의 역사학을 갱신하려는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예컨대, 저명한 환경사가 존 로버트 맥닐(J.R. McNeill)은 자연과학이나 고고학이 제공하는 과거에 대한 ‘과학적인’ 정보를 토대로 오늘날 기록된 정보 위주 역사학 연구의 갱신 가능성을 진단했다. 동시에 그는 기록된 정보를 거의 이용할 수 없는 식민지 시기 이전 아프리카 역사 연구자들의 연구 방법론이 역사학자들을 훈련시키는 좋은 귀감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맥닐이 인정하듯, 지난 두 세기(1900년대와 1800년대)를 역사학적으로 연구하는 데 당분간 주효할 방법론은 단연 기록된 정보 위주의 역사학이다. 그만큼 방대한 기록이 생성됐기 때문이다.

러시아 국립문서고에서 들여다 본 북한사 연구의 가능성

따라서 현대사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들은 엄청난 사료가 보관된 문서고(文書庫, archive)를 찾는다. 문서고는 보통 국가가 운영하는 국립문서고를 의미한다. 이는 국립문서고에 보관된 자료들이 국가에 의해 선별·분류 과정을 거쳐 저장됐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가 공개를 원치 않는 사료들에 연구자들이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아주 어렵다. 예컨대, 대한민국 정부가 1979년부터 2000년까지 핵무기로의 전용이 가능한 여러 농축 관련 활동을 했다는 사실은 2004년 정부가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보고하기 전까지 한국원자력연구원(KAERI) 문서고에 잠자고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비밀주의(secrecy)에도 불구하고, 냉전기부터 미국 학자들은 학자교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소련을 방문했고, 그 중 극소수는 공개된 소련 국립문서고에서 제한적으로나마 작업할 수 있었다. 소련사의 대가 쉴라 피츠패트릭(Sheila Fitzpatrick)이나 러시아 과학사 분야를 개척한 로렌 그레이엄(Loren Graham) 등이 이에 포함된다. 1991년 소련의 해체로 과거 공산주의권의 문서고가 열렸고, 이러한 현상은 1990년대 초중반 ‘문서고 혁명’으로 명명되기도 했다.

한편 필자와 같은 북한사 연구자들은 북한 당국의 비밀주의,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입국 불가, 냉전시기의 간첩 기억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대한민국 국적자의 북한 방문 등 여러 이유로 북한 문서고에 접근이 힘들다.

한국에서 이용할 수 있는 북한 공간물도 연구자들에게 부담을 지운다. 북한 공간물은 거의 대부분이 선전물이다. 선전물이라고 전부 거짓은 아니고, 때로는 삐라처럼 훌륭한 연구 소재를 제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과장인지 확인이 되지 않는 이상, 북한 공간물에 담긴 기록된 정보는 그 자체로는 우선 사실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사는 어떻게 연구해야 하는가? 본 연재는 바로 이러한 고민에 대한 필자 나름의 해답을 제공하는 자리이다. 그 답은 북한의 가까운 우방인 러시아에 있다.

우동현 요크대 박사후과정
「Leveraging Uneven Cooperation: Socialist Assistance and the Rise of North Korea, 1945-1965」이라는 제목으로 UCLA 아시아언어문화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국사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다. 북한사 연구자로는 최초로 미국 로스알라모스국립연구소에서 학술 발표를 했다.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발행하는 『Historical Journal』에 북한 핵개발 계획의 “평화적” 기원을 밝힌 논문 「The Peaceful Origins of North Korea’s Nuclear Program in the Cold War Period, 1945-1965」(가제)의 게재가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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