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2-12-05 15:35 (월)
북한 관련 러시아 자료 가득한 ‘국사편찬위원회’
북한 관련 러시아 자료 가득한 ‘국사편찬위원회’
  • 우동현
  • 승인 2022.08.18 08: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러시아 소장 북한사 사료 이야기⑤ 한국 안의 러시아 소장 북한사 사료

지난 3회에 걸쳐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러시아 문서고(文書庫, archive)와 문서보관소(repository)에 소장된 북한사 사료에 관해 다루었다. 이번 글에서는 러시아에 있는 북한사 사료를 국내에서 이용하는 방법에 관해 알아본다.

한국전쟁 초기 38도선을 넘어 북진한 미군은 북한의 전쟁 범죄를 증명하기 위해 정부 문서, 출판물, 병사 수첩 등 실로 방대한 양의 자료를 수집했다. 이 자료들은 미국으로 건너가 해외노획문서(foreign records seized)라는 이름으로 분류·저장됐다. 방선주 박사의 노력으로 1980년대부터 ‘북한노획문서’가 연구자들에게 대거 공개되면서 수많은 북한사 연구의 자양분이 되었다. 하지만 이 문서들은 1950년대 중반 이후의 북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한다. 북한사 연구자들이 러시아를 찾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러시아는 제정기부터 한국과 깊은 관련을 맺었다. 아관파천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구러시아공사관(서울 정동)은 1885년부터 1946년까지 제정러시아와 소비에트연맹의 외교적 교두보였다. 이후 소련은 신생 북한 정권을 최초로 인정한 열강이었고, 지금까지 평양에 대사관을 운영하며 북한의 우방 역할을 맡고 있다.

러-우 전쟁 이후 러시아 방문도 쉽지 않아

평양 주재 소련 대표부는 20세기 후반부 내내 실로 막대한 양의 문서를 생산해 모스크바로 보냈다. 소련 정부도 엄청난 양의 북한 관련 문서를 생산·수발했다. 북한 국립문서고가 개방되지 않는 이상, 북한사 연구에 필요한 사료를 확보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이 문서들을 검토하는 것이다.

물론 러시아 방문은 결코 쉽지 않다. 2022년 초부터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한국 국적자의 러시아 입국과 체류 과정에서 곤란함이 증가됐다. 게다가 러시아어를 구사할 수 없으면 국립문서고 이용은 제한적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문서고 이용 시간이 단축됐고, 자료 복사에도 상당한 비용이 든다.

국편, 80년대 초부터 해외 소재 한국사 자료 수집

놀랍게도, 한국에는 이미 방대한 양의 러시아 자료가 입수돼 보관 중이다. 대표적인 기관으로 경기도 과천에 위치한 국사편찬위원회(이하 ‘국편’)를 들 수 있다. 국편은 1980년대 초부터 해외 소재 한국사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특히 북한사와 관련해 2022년 여름 현재 90권까지 나온 『북한관계사료집』은 연구자들에게 귀중한 자료원이다. 같은 기관에서 펴낸 『해외사료총서』도 마찬가지이다.

국편 소장 러시아 자료들 대부분은 검토되지 않은 것들로 연구자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그중 1990년대 러시아에서 유학한 학자들이 가져온 러시아연방대통령문서고(APRF), 러시아연방대외정책문서고(AVPRF), 러시아연방 국방성중앙문서고(TsAMORF) 자료들은 해당 문서고들이 현재 접근이 무척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굉장히 값진 자료들이다.

한편 2000년대 이후 대거 입수된 러시아연방국립문서고(GARF), 러시아연방사회정치사문서고(RGASPI), 러시아연방현대사문서고(RGANI) 자료들은 여태껏 알려지지 않은 1950년대 중반 이후 북한사의 다채로운 면모를 보여준다. 예컨대, AVPRF와 RGANI 자료, 폭넓은 북한 공간물을 토대로 북한의 사회주의 이행 과정을 재구성한 조수룡의 박사학위논문(2018)은 1950년대 북한 경제사 연구의 획을 그었다고 평가된다. 북한과 사회주의권의 과학기술협력을 다룬 필자의 박사학위졸문(2022)도 국편 소장 러시아 자료를 대거 이용한 결과물이다.

국편의 자료가 매력적인 이유

국편 소장 러시아 자료들 중 연구자들의 주목을 요하는 자료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평양 주재 소련 대표부가 입수해 본국으로 보낸, 우리말로 된 북한 자료이다. 예컨대, (아래)첫 번째 그림의 자료는 북한의 농업 집단화(‘협동화’)와 관련해 그간 정황으로만 짐작만 가능했던 당의 노선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필자는 이러한 북한 자료들 다수가 국편에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농업 협동경리 조직문제에 대하여’(RGANI, f. 5, op. 28, d. 190, l. 87). 이 자료를 최초로 이용한 역사가 조수룡에 따르면, 이 지시를 통해 북한 지역에서 “농업협동조합의 조직·운영상 기본원칙과 세 가지 기본 형태가 처음 제시”되었다. 사진=우동현

다른 하나는 소련 대표부가 입수해 비공식적으로 번역한 북한 자료이다. (아래)두 번째 그림의 자료는 얼핏 보면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보이나, 북한의 역사 서술에 가해진 개작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3차 당 대회(1956)에서 김일성의 발언 이후 북한에서 ‘사회주의 혁명’의 기점은 북조선인민위원회의 수립(1947)으로 정식화됐다. 오늘날 북한의 공식 서사이다. 하지만 해당 자료에 따르면 김일성은 1955년 4월에 가서야 사회주의 혁명을 선포했다.

‘모든 힘을 조국의 통일독립과 공화국 북반부에서의 사회주의 건설을 위하여’(러시아어 번역) (RGANI, f. 5, op. 28, d. 314, l. 155). 1955년 4월 1일 개최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0차 전원회의에서 김일성의 보고 전에 배포된 소책자의 비공식 번역문이다. 북한 지역에서의 사회주의혁명의 필요성을 천명하고 있다. 표지 오른쪽 위의 비밀(secretno) 표기가 뚜렷하다. 사진=우동현

이들 자료의 효용은 무척 크다. 무엇보다 북한의 공식 서사 이면에 있는 역사적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 물론 그러한 ‘거짓’이 어떠한 맥락에서 만들어졌는지도 탐구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사 서사 만들기에 대한 고민도 요청된다. 북한사 연구에서는 자료의 한계로 인해 북한 공간물에 기록된 정보를 그대로 인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한계를 완전히 극복하기란 어렵지만, 러시아 소장 북한 자료는 하나의 돌파구를 제시한다고 할 수 있다.

러시아 현지에서도 이용하기 어려운 방대한 양의 북한사 자료와 함께 러시아에 있는 북한 공간물을 열람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국편은 매력적이다. 이번 여름, 러시아 대신 국편에 가보는 것은 어떨까? 다음 편에서는 자료집을 중심으로 러시아 소장 북한사 사료를 더욱 쉽게 이용하는 방법에 관해 살펴본다.

우동현 객원기자 / 요크대 박사후과정 
「Leveraging Uneven Cooperation: Socialist Assistance and the Rise of North Korea, 1945-1965」이라는 제목으로 UCLA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국사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다.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발행하는 『The Historical Journal』에 한국인 최초로 논문 게재가 확정됐다. 역서로는 『체르노빌 생존 지침서』, 『플루토피아』, 냉전기 미국 핵기술의 국제사를 다룬 『저주받은 원자』(가제), 국제공산주의운동을 2차 세계대전의 원인으로 풀어낸 『전쟁의 유령』(가제), 국사편찬위원회 해외사료 총서 36권 『해방 직후 한반도 북부 공업 상황에 대한 소련 민정청의 조사 보고』(공역) 및 38-39권 『러시아국립사회정치사문서보관소 소장 북한 인물 자료 Ⅱ·Ⅲ』(공역)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