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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라크 순례길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라크 순례길
  • 박현도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HK연구교수
  • 승인 2021.03.31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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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_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 이 말은 세계화(Globalization)와 지방화(Localization)의 합성어다. 세계 각 지역 이슈와 동향을 우리의 시선으로 살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국내 유수의 해외지역학 연구소 전문가의 통찰을 매주 싣는다. 세계를 읽는 작은 균형추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지난 6일 이라크 나자프를 방문해 이슬람 시아파 지도자 대 아야톨라 시스타니와 만난 프란치스코 교황. 사진=AFP/연합

 

코로나19 바이러스 위기에도 불구하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지난 3월 5일부터 8일까지 이라크를 방문하였다. 교황의 이라크 방문은 바티칸 역사상 최초다. 전임 요한 바오로 2세 1999년 방문을 희망하였으나 성사되지 못한 적이 있다. 이번 프란치스코의 방문은 이라크 정부와 칼데아 가톨릭교회의 초청으로 이루어졌다.

이라크 그리스도인은 2003년 미국 침공 이전에는 약 150만 명으로 추산되었으나, 다에시(Daesh, IS로 알려진 극단주의 조직)의 잔혹한 폭력과 살상 때문에 현재는 약 25만 명으로 급락하였다. 세계은행 2019년 자료에 따르면 이라크 인구가 약 3천930만 명이니 0.6%에 불과하다. 그러나 IS 테러로 이라크를 떠난 그리스도인들이 다시 돌아온다면 이라크가 안정되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뿐 아니라 전세계 그리스도인들이 이라크를 향해 따스한 손길을 보낼 것이다. 이라크 정부는 교황의 방문이 그리스도인들의 귀향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이라크 그리스도인의 약 67%는 칼데아 가톨릭, 약 20%는 동방앗시리아 그리스도인, 약 13%는 여러 교파에 속한다. 로마가톨릭교회는 모두 24개의 교회로 이루어졌다. 우리가 아는 로마가톨릭 외에 23개의 교회가 더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 23개 교회는 오랜 기간 자신들의 언어와 방식으로 예배를 해왔기 때문에 로마가톨릭교회와 예배 방식이나 교회 전통에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이들 교회는 로마가톨릭의 교황을 세계 그리스도교회의 지도자로 인정하여 교회 일치를 이루었다. 칼데아 가톨릭도 바로 그러한 교회다.

 

시아파 무슬림과 로마가톨릭의 역사적 만남

 

가톨릭이라는 말은 그리스어 카톨리코스(katholikos, 라틴 catholicus)에서 나온 말로 ‘보편’이라는 뜻이다. 서로마 그리스도교, 즉 로마가톨릭뿐 아니라 동로마 그리스도교인 정교(正敎, Orthodox)에서도 사용해온 말이지만, 로마가톨릭을 가리키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요즘에는 적어도 중동 지역 교회에서는 로마가톨릭과 하나가 된 교회 외에는 사용하기를 주저한다. 따라서 교회 명칭에 가톨릭이 들어가 있으면 로마가톨릭과 일치를 이룬 23개 교회 중 하나라고 생각하면 된다.

교황은 이라크행을 방문이라고 하지 않고 ‘순례’라고 하였다. 순례자 교황이 발을 디딘 이라크는 이스라엘 다음으로 그리스도교의 구약성서(유다교의 히브리성서)와 가장 관련이 깊은 지역이다. 교황은 2010년 다에시의 전신 ‘이라크 이슬람국가’ 테러범들이 일요일 저녁 미사 참례자와 경찰 등 모두 약 70여 명을 살해한 바그다드의 시리아가톨릭 성당 방문으로 순례를 시작하였다. 다음 날에는 이라크뿐 아니라 전 세계 시아파의 정신적 지도자 대 아야톨라 시스타니와 역사적인 만남을 가졌다.

이슬람의 시아파는 로마가톨릭과 비슷한 지도자 위계를 갖추다 보니 이란을 중심으로 한 시아파와 교황청은 꾸준히 대화를 해왔지만, 이라크의 시스타니와 교황의 만남은 처음이다. 이라크 시아파에 미치는 시스타니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비록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두 지도자가 논의한 내용은 향후 이라크 안정에 도움을 줄 것임이 틀림없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할 때 이라크 시아파가 미동도 하지 않고 조용히 있었던 것도 시스타니의 지도력 덕이었다. 시스타니의 거주지 나자프는 알리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시아파의 성지다. 이는 마치 베드로의 무덤을 기반으로 한 바티칸과 유사하다.

 

이라크에서 용서는 생존이다

 

교황은 아브라함과 인연이 깊은 우르(Ur), 에르빌(Erbil), 모술(Mosul)과 함께 고래 뱃속에 갇혔다가 살아남은 이야기로 유명한 요나(Jonah)가 회개하라고 외친 도시 나이나와(니네베)를 순례하며 아브라함의 신앙을 공유하는 유다인, 그리스도인, 무슬림의 형제애와 평화를 강조하였다. 또 다에시가 지배하며 처참하게 파괴한 모술과 까라꼬쉬(Qaraqosh)에서는 허물어진 교회 터에서 희생자를 추모하고 그리스도인들에게 용서하는 용기를 발휘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사실 용서는 받아들이기에 어렵고 무거운 말이다. 참혹하게 당한 이라크 그리스도인들이 쉽게 그럴 수 있을까. 마음이 아팠다. 이라크에서 용서와 평화는 생존이다. 추상적인 말이 아니다. 순례자 교황은 전 세계 사람들이 용서와 평화를 두고두고 곱씹어 볼 시간을 선사하였다. “강탈하고 도륙하고 빼앗고는 제국이라고 말하고, 황폐한 곳으로 만들어놓고는 평화라고 말한다.” 로마역사가 타키투스가 전한 아그리꼴라 장군의 말이다. 우리 시대의 평화는 그런 평화가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다. 오른쪽 다리를 절면서도 어려운 시기에 먼 길을 마다 않고 달려간 순례자 프란치스코의 희망대로 이라크인들의 마음에 평화 가득하길 바라고 또 바란다.


 

 

박현도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HK연구교수

이란 테헤란대에서 이슬람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 법무부 국가정황정보 자문위원이자 중동산업협력포럼 사무국장이며 주요 저작으로 『신학의 식탁』(공저, 들녘, 2019),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균열과 유라시아 지역의 대응』(공저, 민속원, 202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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