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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에 조의를 표하며
아프가니스탄에 조의를 표하며
  •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연구교수
  • 승인 2021.09.02 11: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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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오디세이_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지난 1일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에 모여든 탈레반 지지자들.  탈레반은 8월 31일 아프간 주둔 미군이 물러난 직후 완전 독립을 선포했다. 사진=EPA/연합
지난 1일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에 모여든 탈레반 지지자들. 탈레반은 8월 31일 아프간 주둔 미군이 물러난 직후 완전 독립을 선포했다. 사진=EPA/연합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터인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철수를 시작하고, 탈레반이 다시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면서 전 세계는 카불발 뉴스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2001년 9월 11일 뉴욕 쌍둥이 빌딩이 무너져 내리는 사상 초유의 테러를 당한 미국은, 야만적인 테러를 기획한 알카에다의 괴수 오사마 빈 라덴을 검거하고자 은둔처인 아프가니스탄을 10월 7일 침공하였다.

1996년부터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하던 이슬람원리주의 조직 탈레반 정권은 미국의 압도적인 힘에 눌려 붕괴하였지만, 지도부와 오사마 빈 라덴은 이웃 파키스탄으로 은신하며 재기를 노렸다. 아프간 침공 10년 만인 2011년 5월 2일 미국은 파키스탄의 아보타바드에 숨어있던 오사마 빈 라덴을 제거하여 아프가니스탄 침공의 목적을 달성하였으나, 탈레반은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파키스탄이라는 든든한 뒷배경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각자도생하는 다민족 국가의 운명은

탈레반을 축출하고 미국이 세운 아프가니스탄의 새로운 정부는 카르자이, 가니 2명의 대통령이 모두 4차례 대선을 이기고 집권하였으나, 무능과 부패로 정국을 장악하지 못한 채, 2018년 7월 트럼프 대통령이 탈레반과 평화협상을 시작하면서 자체 붕괴하기 시작했고, 바이든 대통령이 미군 철수를 확인하자 급속히 무너졌다. 결국, 8월 15일 가니 대통령이 국외로 도주하고, 탈레반이 수도 카불로 진격하여 대통령궁을 접수했다. 미군은 8월 31일 아프가니스탄을 완전히 떠났다.

아프가니스탄은 바다와 접하지 않은 내륙국가다. 가장 긴 국경을 맞댄 파키스탄부터, 이란,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중국에 이르기까지 영토 전체가 이웃 6개국에 막혀 있다. 또 다민족국가로, 모두 14개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다수이긴 하지만, 전체 인구의 과반수에 미치지 못하는 파슈툰족이 타직, 우즈벡, 하자라 등 여러 민족과 권력을 나누지 않은 채 18세기부터 정국을 장악하였기 때문에 아프가니스탄은 늘 분쟁과 암투로 불안한 나라다.

중앙집권적인 행정을 제대로 갖춰 국가를 운영해본 적이 없지만, 여러 민족이 각기 독립 국가를 세우고자 민족주의 운동을 치열하게 전개하지도 않았다. 이웃 타지키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이 아프가니스탄의 타직족과 우즈벡족을 끌어들여 민족국가를 넓히려고 하지도 않는다. 파슈툰족 역시 이웃 파키스탄의 파슈툰족과 함께 민족국가를 세우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파슈툰 민족주의는 파키스탄의 전유물이다. 각자도생이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은 파슈툰족을 주축으로 한 이슬람원리주의 조직이고, 파키스탄에는 파키스탄 탈레반이 별도로 존재한다. 18세기 이래 파슈툰족, 특히 두라니족이 아프가니스탄을 다스렸지만, 민족통합국가라기보다는 두라니족 중심의 파슈툰 부족연합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정치체제다.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을 함락한 지난달 15일 아프가니스탄 국기를 변경했다. 아래가 탈레반이 정한 국기. 이슬람교의 신앙 고백 구절인 '샤하다'가 적혀 있다. "하나님 외 다른 신은 없으며, 무함마드는 하나님의 사자다"라는 의미.

탈레반의 ‘달라졌어요’, 믿을 수 있나

현재 최후의 저항 전선을 형성하고 있는 판즈시르의 마수드의 말마따나 아프가니스탄에는 스위스식 연방제가 가장 잘 어울린다. 그러나 자신들의 이슬람 해석을 아프가니스탄 전역에 뿌리내리려는 탈레반이 마수드의 생각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없다. 20년 전에도 탈레반은 비파슈툰족 지역 주민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았다. 협의라는 것을 모르는 이슬람원리주의 군벌에게 ‘구동존이’는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1996년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의 주인이 되었을 때는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이렇게 세 나라만 인정하였다. 당시 미국은 관망하고 있었는데, 탈레반이 여성을 가혹하게 박해하는 것을 보고 반(反)탈레반으로 정책기조가 급변했다. 당시 퍼스트레이디 힐러리 클린턴과 미국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 올브라이트가 미국이 탈레반을 보는 관점을 바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과거의 실패가 마음에 걸린 듯, 아니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예전처럼 밀어붙이면 국제사회가 협력하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인지, 다시 돌아온 탈레반은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광고 마냥, 20년 전과 “달라요”라고 외치고 있다.

그러나 탈레반의 공개적인 ‘회심(?)’을 믿기는 어렵다. 그들은 부르카를 착용하지 않은 여성과 희극인을 죽였다. 지도부의 뜻이 아니라고 하면서 살인자를 처벌하겠다고 하지만, 여성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고, 표현의 자유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슬람 해석을 금과옥조로 삼고 있는 탈레반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면 바보다. 비뚤어진 종교적 신념은 핵폭탄보다 더 무섭다. 순수한 이슬람을 표방하지만, 탈레반의 이슬람은 파슈툰 부족의 전통에 극단적인 와하비와 데오반디 원리주의를 부어 바른 것에 지나지 않는다.

8월 31일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완전독립을 선포하였다. 조의를 표한다.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연구교수

이란 테헤란대에서 이슬람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 법무부 국가정황정보 자문위원이자 중동산업협력포럼 사무국장이며 주요 저작으로 『신학의 식탁』(공저, 들녘, 2019),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균열과 유라시아 지역의 대응』(공저, 민속원, 202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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