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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총선의 역사적 의미…민주화 이후 공화혁명을 위해
4월 총선의 역사적 의미…민주화 이후 공화혁명을 위해
  • 김기봉
  • 승인 2024.03.18 09: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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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봉의 리틀 빅히스토리 ⑤ 시민종교 공화주의

공화주의는 단순한 이념이 아닌 시민들의 정치종교다.

한 정치공동체의 잠재력이 안으로 포용하는 구심력과

밖으로 뻗어 나가는 혁신의 원심력이 균형을 이룰 때

최대로 발현될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는

시민들의 삶의 방식과 조국에 대한 사랑을 고취하는

정치종교가 공화주의다.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립한 나라들 가운데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근대 이중혁명을 성취한 거의 유일한 나라다. 산업화는 보수, 민주화는 진보가 펼치는 두 날개로 한국은 선진국으로 날았다. 

권위주의적 산업화를 추진했던 세력에 맞서 민주화 운동을 벌이는 변증법적 과정에서 힘의 균형상태로 성립한 헌정질서가 ‘87년 체제’다. 분단국가인 한국에서 보수와 진보의 두 진영은 내전을 방불케 하는 이념 전쟁을 벌였다. 그런 와중에도 역사의 흐름을 선취하는 ‘가능성의 예술’로서 정치가 제 기능을 발휘했기에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기적을 이뤄냈다. 

문제는 그 이후다.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 둘 모두는 기본적으로 과거의 성공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고 있다. 그러기에 디지털 문명으로 도래한 뉴노멀 시대의 도전에 응전할 수 있는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위기에 빠뜨린 요인이다. 그렇다면 그 한계를 극복하는 정치적 상상력을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

투표체험에서 개표를 하는 모습이다. 다음달 4월 10일은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진다. 과연 어떤 역사적 의미를 갖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사진=서울특별시선거관리위원회

 

제2의 건국할 때…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

다시 근본으로 돌아가 대한민국 헌법 제1조1항인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에 입각해 제2의 건국을 할 때다. 촛불혁명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거치는 동안 1조2항인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것을 실질적으로 구현했다. 우리만큼 국민이 나라의 주인으로서 권리를 행사하고 선거로 평화적 정권교체를 하는 민주혁명을 성취한 나라도 없다. 

2021년 대선에서 윤석열과 이재명 두 후보의 표 차는 0.73%인 24만7천77표에 불과했지만 아무런 문제 없이 정부가 바뀌었다. 이에 비해 2020년 미국 대선에서 바이든은 전국적으로 약 700만 표 이상 차이로 트럼프를 이겼고, 선거인단에서도 306대 232로 승리했음에도 의회 난입 사건이 벌어졌다. 

한국의 제도적 민주화는 더는 총칼로 허물지 못하는 굳건한 반석에 놓여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경제와 정치에서 정점을 지나 침체의 늪에 빠지는 ‘피크 코리아(Peak Korea)’ 국면에 이르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여기서 우리가 한 단계 더 큰 도약을 하려면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헌정질서의 전환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에서 ‘민주’가 국민이 주권을 갖고 국가의 중요 사항을 결정하는 원리를 의미한다면, ‘공화국’은 그런 국가를 법과 공공선을 토대로 주권자인 시민들이 결성한 정치공동체를 가리킨다. 현 단계에서 대한민국은 민주화는 더는 퇴행하지 않을 정도로 성숙했다면, 다음 과제는 진정한 공화국을 완성하는 것이다. 

공화주의는 개인의 권리는 계몽사상의 ‘자연권’처럼 선험적인 것이 아닌 사회적 합의에 따른 계약으로 성립한다고 본다. 그런 계약서로 작성된 기본법이 헌법이다. 사람이나 조직이 아니라 법에 복종하는 것이 법치주의다. 장 자크 루소는 “우리는 법에 복종할 때 자유롭다”라고 했다. 법이란 종교의 계율처럼 나를 구속하는 족쇄가 아니라 나의 자유를 지켜주는 울타리다. 

왼쪽부터 장자크 루소와 에드먼드 버크이다. 루소는 “우리는 법에 복종할 때 자유롭 다”라고 강조했다. 버크는 “사회를 과거의 조상, 현재의 우리 그리고 미래의 후손이 함께 이루는 파트너십”이라고 분석했다. 초상화=위키피디아

 

법의 지배 VS 법에 의한 지배

문제는 ‘법의 지배(rule of law)’가 아닌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를 할 때다. 법의 칼을 가진 기관인 검찰이 국민이 아닌 조직에 충성할 때 ‘검찰 독재’라는 비판을 면치 못한다. 

유발 하라리는 유약한 유인원의 일종인 현생인류가 지구의 정복자로 등극할 수 있었던 것은 이기적 개체가 모여 강력한 협력공동체를 결성한 덕분이라 했다. 인간은 언어적 의사소통 행위로 공공선이란 개념을 공유할 수 있었기에,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폴리스적 동물’로 진화했다. 무엇이 공공선인가를 합의하고 그것을 원칙으로 삼는 인류 역사의 시험대를 통과한 최상의 정치체가 공화국이다.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모두에 의해 결정돼야 한다”라는 로마법 원리에 따라, “자유롭게 살고 싶고 남에게 예속되지 않기를 바라는 시민들에게 좋은 것”으로 정의되는 공공선을 추구하는 정치사상이 고전적 공화주의다. 공화국이란 정체는 기본적으로 민주주의를 운영원리로 할 때 가장 좋은 국가로 힘을 가질 수 있다. 

역사적으로 아테네 민주정과 로마 공화정이 결합해 진화한 정치체가 민주공화국이다. 아테네가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왕 한 사람이 아니라 시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민주정을 지향했기 때문이며, 원래 왕정으로 출발한 로마가 시민이 예속되지 않는 비지배의 자유인으로 사는 ‘인민의 것(res publica)’으로 전환했기에 “권력은 소유하지 않고 나눌수록 커진다”라는 공화정의 기적을 행할 수 있었다.

 

포용과 혁신을 위한 헌정질서의 재구성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에서 민주화와 비교해 공화국은 아직 미성숙 상태에 있다. 둘 사이 간극을 해소하는 헌정질서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과거에는 관행적으로 행해졌던 불법이 더는 용인될 수 없는 정치문화가 정착하면서, 정치가들 사이 ‘내로남불’의 이전투구가 격화됐다. 그러다 보니 국가의 중요 정책 결정이 정치적 공론장이 아닌 사법부가 하는 ‘정치의 사법화’로 정치가 무력화됐다. 계층·지역·세대·젠더 사이 갈등을 조장하는 갈라치기 정치가 아니라 차이를 포용하고 혁신하지 않으면 지정학적으로 강대국 사이에 끼어있는 한국은 100년 전 역사로 퇴행할 위험에 처해 있다. 

보수주의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는 사회를 과거의 조상, 현재의 우리 그리고 미래의 후손이 함께 이루는 파트너십으로 이해했다. 나의 조국인 공화국이 탄생해서 성장하는 과정에는 수많은 순국선열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고, 그들 덕분에 우리가 태어날 수 있었고, 또한 현재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로 미래 한국인의 삶의 조건이 결정된다. 그러기에 공화주의는 단순한 이념이 아닌 시민들의 정치종교다. 한 정치공동체의 잠재력이 안으로 포용하는 구심력과 밖으로 뻗어 나가는 혁신의 원심력이 균형을 이룰 때 최대로 발현될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는 시민들의 삶의 방식과 조국에 대한 사랑을 고취하는 정치종교가 공화주의다. 

초저출산 초고령사회로 전개되는 한국에 공화혁명이 절실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장차 누가 한국인인가를 재정의해야 할 과제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미래의 한국이 이민 국가와 다문화사회로 변모한다는 것은 기정사실이기에, 이젠 그것을 기본값으로 설정하고 민주공화국으로서 대한민국의 제2 건국을 위한 헌법 개정에 착수해야 한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이번 총선을 여전히 과거에 갇혀 ‘운동권 청산’이냐 ‘검찰 독재 심판’으로 프레임 전쟁을 벌인다. 

더 늦기 전에 4월 10일에 실시되는 대한민국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의 역사적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 이번 선거는 민주혁명으로 성립한 87년 체제를 바꾸는 개헌으로 제7공화국을 여는 역사적 사명을 수행할 시민의 대표를 뽑는 공화혁명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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