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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전쟁 시대, 인간의 조건은 무엇인가
핵전쟁 시대, 인간의 조건은 무엇인가
  • 김기봉
  • 승인 2023.09.12 09: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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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봉의 리틀 빅히스토리 ② 오펜하이머

관찰자는 결과를 모르더라도 모든 것이 조건과 관계의 연쇄반응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과연 오펜하이머가 그 연쇄반응에 대한 통찰을 했다면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아인슈타인 또한 핵무기 개발을 제안하는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에 서명했을까?

인간은 몸은 땅에 발 딛고 있으면서도 마음은 하늘을 지향하며 산다. 하늘을 나는 새도 땅에 서있는 모습으로 그 흔적이 남아있듯이 공룡에서 진화했기에 삶의 터전은 땅이지 하늘이 아니다. 새는 하늘에서 지상의 먹잇감을 찾고 그것을 목표로 하늘길을 이동한다. 

현생인류는 직립보행을 하면서부터 머리를 들어 하늘과 별을 바라보기에 유리한 구조를 갖게 됐다. 땅의 끝으로 하늘과 만나는 경계선이 지평선이고, 물의 끝으로 하늘과 맞닿아 보이는 것이 수평선이다. 그 둘이 인간이 볼 수 있는 범위인 시야(視野)를 결정한다. 하지만 하늘을 올려다볼 줄 아는 인간은 묻는다. 모든 한계선 너머엔 무엇이 있는가? 정철은 「관동별곡」에서 “하늘 끝을 끝내 못 보아 망양정에 오르니, 밖은 하늘이니 하늘 밖은 무엇인가”라고 읊었다.

지상의 생활자인 인간이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생겨난 능력이 초월(超越)에 대한 인식과 상상력이다. 물리적으로 하늘을 바라보는 행위는 인간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바라보며 갖는 생각과 투영하는 감정이 종교‧예술‧학문 등의 문화적 활동을 낳았다. 하늘에는 별들이 있고, 그것들의 질서를 인간은 별자리를 통해 천문(天文)으로 읽고자 했다. 

전통시대 동아시아인들은 “순천자(順天者)는 흥(興)하고 역천자(逆天者)는 망한다”라는 믿음으로 천도(天道)를 탐구해서 인륜의 질서를 세우고자 했다. 하늘의 별은 암흑한 현실을 밝히는 등불이고 마음의 거울임을 윤동주는 「서시」로 노래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 /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 걸어가야겠다 / 오늘 밤에도 /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김기봉 경기대 교수(사학과)는 영화 「오펜하이머」가 인간의 조건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고 강조했다. 인류 역사는 조건과 관계의 연쇄반응으로 이뤄지는데, 핵 전쟁 시대의 결과는 과연 무엇일까. 사진=영화 「오펜하이머」 스틸컷

 

절대무기와 파국의 전쟁

영화 「오펜하이머」에는 주인공이 사막에서 별을 바라보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태양을 포함해서 별이 빛나는 이유는 수소가 헬륨이 되면서 방출하는 핵융합 에너지 덕분이다. 우주의 본질적 힘은 중력‧전자기력‧강력‧약력의 4가지다. 물체 사이 관계는 중력이 지배하고, 우리가 전자기력을 활용할 줄 알게 됨으로써 전등에서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근대 문명의 근간이 되는 기술과 도구를 발명했다. 

핵과 관련된 것이 강력과 약력이다. 양자역학은 마침내 그것들의 조건과 관계를 알아냄으로써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이란 새로운 프로메테우스의 불을 만들 수 있는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다. 그러면서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패는 어느 나라가 먼저 그 절대무기를 만들 수 있느냐에 달려있게 됐다. 당시 양자역학의 최강대국은 독일이었다. 만약 히틀러가 먼저 핵폭탄을 제조하면 전쟁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그런 위기 상황에서 미국의 프로메테우스로 등장한 영웅이 오펜하이머다.

존재하는 모든 물질은 쪼개지든지 합해진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에너지에 관한 공식이 E=mc²이다. 별은 주로 수소로 구성돼 있고, 그 중심에서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 수소가 헬륨으로 변하면서 태양처럼 막대한 에너지를 방출한다. 원자번호 26인 철(Fe)은 핵융합과 핵분열을 통한 에너지 방출의 경계를 이루는 가장 안정적인 원소다. 철보다 가벼운 원소는 핵융합으로 에너지를 방출하지만 무거운 원소를 융합하려면 에너지를 공급해야 한다. 우라늄이나 플루토늄 같은 큰 원소는 더 작은 원소의 원자핵으로 쪼개지는 핵분열을 할 때 에너지를 방출하기에 그 원리로 원자폭탄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핵분열의 연쇄로 작동하는 원자폭탄을 이용하면 핵융합의 조건을 형성할 수 있기에 연이어서 바로 수소폭탄도 제조할 수 있다.

인간이 우주의 본질적 에너지를 사용해서 지구에서 폭탄을 터뜨리면 어떤 연쇄작용이 일어날 것인가? 영화에서 오펜하이머가 핵폭탄을 만들 때 가장 염려했던 것이 중성자에 의한 핵분열이 계속 반복되는 연쇄반응이 무한 루프에 빠지면 세계는 파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의 시작에 오펜하이머가 연못가에서 산책하고 있던 아인슈타인을 발견하고 다가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무슨 말을 했을까? 영화가 끝날 때쯤에야 비밀이 밝혀진다. 아인슈타인이 “파멸의 연쇄반응이 시작되었군”이란 말을 했다는 것이다. 오펜하이머가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할 때는 핵무기가 모든 전쟁을 종식시킬 절대무기라고 믿었다. 하지만 미국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도 절대무기를 제조하는 연쇄반응이 일어나면서 인류는 핵전쟁 시대에 돌입했다. 

미국의 이론물리학자인 오펜하이머(1904∼1967). 사진=위키피디아

 

파멸 몰고 올 연쇄반응과 무한 루프

핵폭탄을 가질 것인가, 말 것인가? 북한은 나치 독일에 못지않은 악독한 정권이다. 북한 핵에 대항하기 위해선 우리도 결국 핵무장을 해야 하는가? 일어날 모든 일은 일어난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그것은 인과관계가 아니라 예정된 확률로 일어난다. 한반도에서 핵전쟁이 일어날 확률은 얼마인가? 문제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상자를 열어보기 전까진 생사가 결정돼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일어날 일은 일어나지만 미래는 불확정적이다. 불확정성 원리가 작동하는 상황에선 관찰이 인식을 만들기에 “관찰자가 관찰대상이다.” 그 상황에서 관찰자는 무엇을 할 것인가? 관찰자는 결과를 모르더라도 모든 것이 조건과 관계의 연쇄반응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과연 오펜하이머가 그 연쇄반응에 대한 통찰을 했다면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아인슈타인 또한 핵무기 개발을 제안하는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에 서명했을까? 

일어날 일은 결국 일어난다면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결과를 만드는 게 아닌 조건과 관계에 대한 알아차림이다. 인간은 주어진 조건에서만 역사를 만들 수 있다는 마르크스의 말처럼, 인류 역사는 조건과 관계의 연쇄로 전개된다. 무거운 별이 죽으면 블랙홀이 되고 우주도 깊은 미래(deep future)엔 팽창을 멈추고 수축해서 초기상태로 되돌아가는 종말을 맞이한다면, 역사의 종말은 필연적이다. 일어남과 사라짐의 연쇄반응의 본질은 붓다가 말했듯이 무상(無常)이다. 

영화 「오펜하이머」는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의 영광과 몰락의 무상한 삶과 더불어 핵전쟁 시대 인간의 조건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이 뭐꼬?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 
성균관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 독일 빌레펠트 대학에서 포스트모던 역사이론으로 박사를 했다. 주요 저서로 『역사학 너머 역사: 빅히스토리, 문명의 길을 묻다』, 『내일을 위한 역사학 강의』, 『팩션 시대: 영화와 역사를 중매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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