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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성 너머의 美를 좇다
가시성 너머의 美를 좇다
  • 강수미 미술평론가
  • 승인 2006.10.31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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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구본창의 사진세계 (1) 구본창 사진의 핵심
 ‘Vessels for the Heart’ 시리즈

뉴욕 헤이스티드헌트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구본창의 ‘Vessels for the Heart’전이 국제적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그의 백자 사진들은 세월이 긁고 지나간 흔적까지 사실적으로, 그러나 너무 강렬하지 않게 드러냄으로써 백자를 더욱 깊은 존재로 만들어 보인다. 해외 신조류 사진의 소개에서 전통에 대한 웅숭깊은 탐구까지 그의 작품은 한국 현대사진이 변화해온 하나의 축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호에선 그 변화의 과정이 한국 사진사에서 갖는 의미와 함께 구본창 사진의 본질과 그 한계까지 짚어봤다.

볼 수 있는 것들을 찍지만, 가시성의 영역 너머에 있는 것들까지 그 이미지로 구현하고자 하는 욕망. 이는 사실 모든 사진가의 욕망일 것이다. 스스로 예술가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사진 찍는 활동이 예술 ‘창작’이라 생각하는 이라면 특히 그렇다. 기계장치를 매체로 하여, 현실을 기계적으로 재현하는 사진의 존재론적 특성 때문에, 한 장의 사진이 ‘보이는 사실’ 너머를 구현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그래서 더욱 사진작가들은 이 ‘재현’ 너머를 좇는다.


구본창의 사진세계를 떠받치고 있는 토대는 이렇게 기계적 재현 너머, 대상의 비가시적 본질에 대한 지향인 것으로 보인다. 그가 조선백자를 마치 사진 역사의 초창기, 아우라로 넘쳐나는 흑백 초상사진처럼 찍을 때, 그가 남자의 아름다운 나신(裸身)을 마치 조각나고 짜깁기된 것으로서의 자아라는 후기구조주의담론의 현현처럼 표상할 때, 구본창의 지향은 가시성의 표면에 만족하지 않는 것이다. 1985년 첫 번째 개인전에서부터 2006년 현재에 이르기까지, 짧게 잡아도 20여년이 넘는 구본창의 사진 이력은 작품의 주제와 형식면에서부터 피사체가 된 개별 대상에 이르기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그리고 있다.


그 스펙트럼은 한국현대사진이 전개되어온 양상과 일정 정도 겹쳐진다고 할만하다. 그래서 예컨대 교토현대미술관의 디렉터 요시토모 카지카와 같은 이가 구본창을 “한국현대사진의 개척자”이며, 현재도 “중심적 역할을 맡고 있다”고까지 평가하는 것이 그리 과장은 아닌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러한 말은 한 작가의 사회적 위상을 지시해주기는 할망정 그의 예술세계를 해명해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구본창 사진의 넓은 스펙트럼을 첫째 그 형식면에서, 둘째 그 제재-피사체의 측면에서, 셋째 그 사진이 불러일으키는 감각적 차원에서 접근해 볼 수 있다.


구본창이 한국‘현대’사진에 있어 개척자와 같은 역할을 했다면, 그것은 그가 그때까지 일상적 · 상업적 문맥에서 일반화 되어 있던 사진을 본격적으로 예술의 문맥으로 분절, 변이시켰기 때문이다. 이는 형식 실험에 힘입은 바 크다. 작업 초기 자기 자신을 폴라로이드로 찍어 12장이 한 작품이 되도록 구성한 '열두 번의 한숨', 오랜 독일 유학에서 귀국한 후 급격한 발전으로 생경해진 서울의 지표세계를 추적하고 몽타주한 '긴 오후의 미행', 1991년 바느질한 조각 천에 남자의 벌거벗은 몸을 인화한 '태초에', 1993년 채집 곤충을 찍고 그 사진을 다시 표본상자에 박제한 '굿바이 파라다이스' 등에서 보듯, 구본창의 사진은 예술적 구성물이고 작가 주관과 표현의 산물이다. 구성된 사진, 이미지 몽타주, 다변화된 인화, 사진 설치. 이러한 형식들을 발명 또는 현대미술 문법으로부터 차용함으로써 구본창은 예술 형식으로서의 사진을 실험했던 것이다.


숨 #8 / 1995년 / Gelatin Silver Print
그러나 여타의 예술이 그렇듯이 새로운 형식이 사진의 예술성을 자동적으로 보증해 주는 것은 아니다. 구본창은 1995년경에는 삶과 죽음의 순간을 주제화한 '숨(Breath)'연작을 발표하고, 90년대 말부터는 금가고 세월의 때로 지저분해진 벽을 스트레이트로 찍은 '시간의 그림', 새하얀 눈밭에 흩어진 솔잎을 부감(俯瞰)한 '자연의 연필'과 같은 사진들을 선보이기 시작한다.


이 시리즈 사진들은 앞서 예를 든 것과 같은, 실험적 형식이 두드러지는 사진에 대한 반작용에서 도출된 것으로 보이며, 작품의 제재를 정적인 피사체로 대치함으로써 보다 심미적이고 관조적 정서 세계를 현상하고 있다. “대상에 집착하지 않고도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쓴 당시 그의 작업 노트는, 한편으로는 사진가 구본창이 얼마만큼 사진의 메커니즘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하는지, 그가 자신의 사진에서 무엇을 추구하는지 유추케 한다.


사진 현상학(現象學)의 존재지반인 대상을 최소화하고, 기계적 재현의 흔적을 흐릿하게 함으로써 그가 얻고자 한 것은 아름다움과 관조라는 예술성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는 그의 또 다른 노트, “'자연의 연필'에서 나는 하얀 배경에 몇몇 획으로 그려진 동양화의 절제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싶었다. 또한 모든 조형의 기본 요소인 점, 선, 면만으로 단순화시키고 싶었다.”는 말에서도 분명해 보인다.


이 시기 연작들에서는 '긴 오후의 미행'에서 엿보이는 사회 비판적 메시지, '태초에'나 '굿바이 파라다이스'에서 감지되는 파괴적 형식에 대한 욕구나 그로 인한 피사체와의 갈등을 거의 또는 전혀 느낄 수 없다. 흰 눈 위에 흩어진 몇 개의 솔잎 사진은 진정 자연이 그린 소묘가 아닌가 싶게, 아름답고 자연스럽다. 한여름 무성했던 담쟁이의 흔적만을 겨우 붙들고 있는 담벼락 사진('白 16')은 마치 말레비치(K. Malevich)의 '흰색 위의 흰색'처럼 평면의 절대적 미학을 구현한다.


여전히 카메라 기계장치를 통해 가시적 세계를 보면서도, 그 세계의 드러남을 최소한으로 축소한 자리, 그 축소된 자리에 대상 너머의 아름다움이나 삶과 죽음의 철학적 성찰을 풍요롭게 은폐해 넣은 사진들인 것이다. 구본창의 사진에서 이러한 차원이 가능했던 이유는, 서두에 썼듯이 그가 사진을 통해 가시적 영역이 아니라 비가시적 본질을 포착하고, 구현하고자 하는 지향성을 작업의 원천으로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작업의 실제적 방법론, 즉 카메라의 기계적 재현 능력과 작가적 지향, 즉 예술적 표현 욕구 사이를 탁월하게 균형 짓거나 혹은 삼투시켰기 때문으로 보인다.


가산오광대 #11 / 2002년 / Gelatin Silver Print
사실 재현의 방법론은 미학적 차원에서 보다는 문화인류학 내지는 사회 과학적 차원에서 더 유용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구본창은 98년에 시작해 2002년까지 작업한 '탈' 연작에서 보듯, 기계적 재현의 힘을 빌려 이제는 점차 소멸해 가는 한국의 민속 문화에 대한 기록을 수행하는 동시에 해학적인 가면을 쓴 광대들의 몸짓을 흑백의 부드러운 톤 속에 채취하고 가둠으로써 그 존재의 예술성 또는 비극성을 고양시킨다.


이 사진들은 보도 사진가들이 찍은 중요 유·무형문화재 사진의 객관성보다는 초창기 사진가 나다르(Nadar)가 회색 장막 앞의 피에로를 찍은 사진과 같은 회고적 아우라를 더 짙게 풍기는 것이다. 2004년부터 찍은 '조선백자' 연작도 이러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탈'에서 '조선백자'로 이어지는 구본창의 최근 사진 제재는, 그것들이 전통의 산물 또는 유물인 한에서 우리에게 역사의 객관적 지표로 제시될 수 있지만, 작가는 이를 심미적으로 중개함으로써 그 대상의 일회적이고 유일무이한 현존성을 부각시킨다.


구본창 사진의 이러한 성향에 대해서 우리의 평은 갈릴 수 있다. 이미 1930년대에 벤야민이 비판했던 것처럼 사진에서 심미성만을 추구할 경우 “물신 숭배적이고 근본적으로 반기술적인 예술개념”이 더 강화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일종의 유행 현상처럼 최근 몇 년 간 한국현대사진을 획일화시키고 있는 도시 리서치-다큐멘터리 사진 지형에, 구본창의 작업들은 좀더 감상자로 하여금 정신집중과 관조적 이미지 수용을 가능케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사진은 차가운 기계 메커니즘으로 현존재의 온기를 보존하는 매체이다. 우리와 한때를 같이하며 사랑했던 사람들, 우리가 한때 옆에 두고 아꼈던 사물들, 그들이 한데 어우러져 반짝였던 순간들은 모두 지나간 시간과 함께 소멸해 버리지만, 사진 속에서 그 사람과 사물, 순간은 ‘있는 그대로 계속’ 존재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작가 구본창의 사진은 기계적 재현과 존재의 지속을 지양하고 종합하려는 한 탐미주의자의 섬세한 시도로 보인다.

강수미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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