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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여정·창조적 만남’이 만들어 낸 코로나19 백신
‘기묘한 여정·창조적 만남’이 만들어 낸 코로나19 백신
  • 전준
  • 승인 2023.10.27 14: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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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과학 ⑧ 2023년 노벨생리의학
코로나19 백신의 뒷이야기

불확실한 과학이 타 분야와의

우연한 간학문적 연구를 통해 발전하기 시작했을 때,

운명의 수레바퀴가 이윽고 돌아가기 시작했다.

과학의 창의성이 이질적인 아이디어와

주체들 사이의 연결을 통해

창발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올해 노벨생리의학상은 과학자들과 대중의 센세이셔널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노벨생리의학상은 “코로나19 백신에 활용된 mRNA 백신 기술을 개발한 공로”로 미국의 카탈린 카리코 바이오엔테크 수석부사장과 드류 와이즈만 펜실베이니아대 의대 교수에게 돌아갔다. 통상 수십 년 이상의 검증을 거친 후 노벨상이 수여돼 왔던 것을 감안하면, 이들의 수상은 유래 없이 빨랐다. 

특히 mRNA 백신의 한계와 부작용에 대한 사회적·과학적 논의가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노벨상 선정 위원회의 결정은 사뭇 파격적이다. 그러나 위원회는 mRNA 백신 기술이 무엇보다도 코로나19 판데믹에 대한 기민한 백신 개발을 가능하게 해주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mRNA 백신은 기존의 백신과는 다르게 그 개발 기간이 획기적으로 짧다. 코로나19의 경우, 바이러스의 핵심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돌기 단백질을 모사해 백신을 만들 경우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실제로, 이런 방식으로 개발되고 있는 노바백스(Novavax)의 단백질 백신은 지난 3일에서야 미국 FDA의 승인을 받았다. 

반면 mRNA 백신은 타깃 바이러스의 단백질 구조를 모두 분석할 필요 없이 염기서열만 알아내면 제작할 수 있다. 코로나19 발병 직후 단시간 내에 모더나가 이러한 방식으로 첫 백신을 내놓았고, 노벨상 위원회는 바로 이러한 성과를 인정한 것이다. 물론 카리코 부사장과 와이즈만 교수가 mRNA 백신 개발과 관련된 원천기술을 개발한 시점은 1990년대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방법론 자체의 유효성에 대해서는 적어도 20여 년의 시험을 이겨낸 것이다. 

하지만 더욱 흥미로운 것은 둘의 mRNA 기술이 거쳐온 사회적 여정이다. 이 과정은 그야말로 이질적인 주체들 사이의 아슬아슬한 협업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mRNA 백신의 뒷이야기는 과학이란 무엇인지 우리에게 큰 깨달음을 준다.

올해 노벨생리의학상은 mRNA 백신 기술을 개발한 공로로 미국의 카탈린 카리코 바이오엔테크 수석부사장(사진 왼쪽)과 드류 와이즈 만 펜실베니아대 의대 교수에게 수여됐다. 사진=노벨위원회

 

성공한 과학의 이면…임상효과 입증에 15년 걸렸다

첫째, 카리코 부사장은 헝가리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 과학자였다. 헝가리 세게드대에서 학부와 박사과정을 마친 카리코는 연구비가 떨어져 더 이상 자신을 박사후 연구원으로 고용해 줄 수 없었던 대학을 뒤로 하고 미국 행을 결심했다. 이미 mRNA의 백신으로서의 가능성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녀는 오로지 mRNA 연구에만 무섭게 몰입했다. 그녀는 1985년, 남편과 2살 난 딸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왔다. 필라델피아의 템플대에서 박사후 연구원 자리를 얻은 것이다. 

국부 반출을 엄격히 제한하던 헝가리의 법을 피하고자 그녀는 딸의 곰인형 안에 비상금을 몰래 숨겨 미국으로 향했다. 템플대에서의 직위도 오래가지 않았다. 1989년, 그녀는 펜실베니아대에서 연구조교수 직위를 제안받고 이직했다. 정규직도 아니었고, 급여도 낮았다. 직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외부 연구비를 꼭 받아와야 한다는 조건까지 붙어있었다. 하지만 mRNA 백신이라는 아이디어는 연구비를 받지 못하고 번번이 고꾸라졌다. 

카리코 부사장은 2021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mRNA는 치료 목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없으니 그만 손 떼라”라는 평가위원들의 충고를 수없이 많이 받았다고 회고했다. 무일푼의 이민자 여성 과학자가 그 누구도 지원하지 않는 연구에 매진한다는 것은 어떤 신념으로 가능한 것일지 상상해 보게 되는 지점이다. 

 

무일푼 이민 여성과학자의 새로운 도전

둘째, 카리코 부사장과 와이즈만 교수의 만남은 생화학과 의학이 연결되는 창조적인 순간이었다. 펜실베니아대에서 카리코 부사장은 여러 연구자들과 협동 연구를 거치며 근근이 자리를 지켰다. 그녀를 지원해 주던 공동 연구자들은 몇 년 주기로 계속 바뀌었다. 이 기간 동안 카리코 부사장은 실험실 환경에서 mRNA를 활용해 세포로 하여금 원하는 단백질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 연구를 수행했다. 이윽고 자신이 설계한 mRNA를 주입한 세포가 단백질을 만들어내기 시작했을 때, “마치 신이 된 것 같았다”라고 카리코 부사장은 회고했다. 

그러나 실험실 밖의 상황은 신의 위치와는 거리가 멀었다. 공동 연구자들이 이직하거나 연구비가 줄어들 때마다 카리코는 새로운 생존전략을 모색해야 했다. 와이즈만 교수와의 만남은 이러한 배경에서 이루어졌다. 복사실에서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각자의 연구를 융합해 새로운 연구가 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와이즈만은 당시 HIV 백신을 연구하고 있었고, 카리코는 mRNA를 활용해 이를 도울 수 있다고 자신했다. 이 둘의 만남은 각자의 커리어를 영원히 바꾸어 놓았다. 

먼저, 카리코 부사장은 실험용 접시에서의 환경, 즉 시험관 내 환경에서 mRNA 백신을 구현할 수는 있었지만, 이를 생물체 안에 주입하여 구현할 방법에 대해 알지 못했다. 의학자였던 와이즈만 교수는 본격적으로 카리코 부사장의 아이디어를 생물체에 도입하기 시작했다. 곧 이들은 생물체에 주입된 mRNA가 면역 시스템에 의해 파괴되는 문제를 발견했고, 이를 tRNA의 유사(類似) 유리딘이라는 물질을 활용하여 해결했다. 이 연구결과는 2005년 『이뮤니티(Immunity)』라는 저널에 출간됐다. 『네이처』, 『사이언스』, 『셀』 등 유수의 과학 잡지들은 이 연구의 출판을 거절했기 때문이었다. 연구의 결실을 맺는 순간까지도 이들은 비주류이었던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mRNA 백신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이미지=픽사베이

 

생화학과 의학이 연결되는 창조적 순간

셋째, 실험적으로만 규명되어 있었던 mRNA 백신이 실제로 전 세계적으로 사용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코로나19라는 전무후무한 우연적인 상황이 개입되어 있다. 2005년 『이뮤니티』에 논문이 발표된 후, 이들은 곧바로 대형 제약회사인 모더나와 바이오엔테크의 주목을 받았다. 바이오엔테크는 화이자와 제휴를 맺고 공동으로 mRNA 백신 연구에 돌입했다. 그러나 이 회사들이 mRNA 백신을 인간에게 투여하기까지는 15년에 가까운 세월이 걸렸다. 아프리카에 지카바이러스가 창궐하던 2016년, 이들은 지카바이러스를 예방하는 mRNA 백신 연구에 돌입했지만, 인체 위해성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시제품 출시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코로나19 사태는 새로운 전환점이 됐다. 중국의 연구진은 2020년 1월, 코로나바이러스의 염기서열 해석에 성공했고, 모더나와 바이오엔테크는 이를 바탕으로 단 이틀 만에 백신 개발을 완료했다. mRNA 백신의 장점이 그 빛을 발한 것이다. 만약 전통적인 단백질 백신을 개발하고자 했다면, 코로나 바이러스의 완전한 단백질 구조를 해석해 냈어야 했을 것이고, 이는 mRNA를 활용한 공정보다 훨씬 복잡한 작업이었을 것이다. 

임상실험 결과는 2020년 11월 8일에 나왔다. 인체에서의 mRNA 기반 코로나 백신의 효과가 입증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전폭적인 지원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공공의 자금이 백신 개발을 위한 R&D에 과감하게 투입됐다. 임상실험의 수행과 검토 절차도 유래 없이 빠르게 진행됐다. 결국 기술개발의 결과물이 실생활에서 구현되기까지는 연구 그 자체를 넘어 사회적 수요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코로나19가 촉발한 mRNA 백신 연구

종합하면 올해 노벨생리의학상은 과학이 얼마나 미묘한 지적(知的)‧사회적인 작업인지를 보여준다. mRNA 백신은 이민자 여성 과학자의 끈질긴 지적 호기심으로부터 시작됐지만, 초기에는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데 실패했다. 기초과학의 불확실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불확실한 과학이 타 분야와의 우연한 간 학문적 연구를 통해 발전하기 시작했을 때, 운명의 수레바퀴가 이윽고 돌아가기 시작했다. 과학의 창의성이 이질적인 아이디어와 주체들 사이의 연결을 통해 창발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과학이 현실 세계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사회적·경제적·정책적 맥락이 크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도 보여준다. 코로나19와 같은 결정적인 사건이 없었다면, mRNA 백신이 빛을 보기까지 얼마나 더 오랜 시간이 필요했을지 알 수 없다. 이민자·여성·융합연구·산학 연계·정부 지원 등 성공적인 과학에는 다양한 ‘창조적 만남의 순간’이 필요하다. 성공한 과학의 찬란함 이면에 있는 사회적 과정을 통해 배우게 되는 교훈이다.

 

 

전준
충남대 사회학과 교수

카이스트 화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과학기술정책학 석사를 했다. 미국 위스콘신-매디슨대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회미래연 구원에서 부연구위원으로 일했다. 현재 과학기술사회학, 환경사회학, 사회 이론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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