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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집사처럼 ‘이웃·자연’을 대하라
고양이 집사처럼 ‘이웃·자연’을 대하라
  • 김주환
  • 승인 2023.09.08 1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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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아고니즘_『생태시민으로 살아가기: 에코크라시를 향하여』 이나미 지음 | 알렙 | 264쪽

아울러 동료와 협력하는 관계 맺고 생태적 삶에 참여하기
생태시민은 정치적 기획이라기보단 일상의 관계들 재조정

기후위기는 이제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에게 닥쳐온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다. 여기저기서 이상기후 현상이 벌어지고 있고 태풍‧홍수‧산불 등 자연재해의 파괴력은 더욱 커지고 있다. 기후 변화로 인한 식량 생산과 공급의 교란으로 대규모 아사와 내전과 난민이 발생하기도 한다. 빙하가 녹고 해수면은 상승해 익숙했던 지도의 모습도 바뀌고 있다. 필설로 다 할 수 없는 수없이 많은 일이 우리 일상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다.

울리히 벡은 기후와 생태적 위험이 야기할 사회적 위기의 양상을 이렇게 예견했다. 첫째, 통제하기 힘든 위험인 탓에 사람들 사이에 무력감과 체념의 태도가 광범위하게 퍼지고, 사회적 연대의 약화와 개인주의의 강화가 나타날 것이다. 둘째, 계층마다 위험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과 자원이 상이하기 때문에 위험은 특히 하층계급에게 더욱 치명적인 피해를 줄 것이다. 셋째, 파국적 사태에 대한 대처를 명분으로 공학적 관료 행정의 권위주의가 부상하고 민주주의의 일상적 중지가 정당화될 것이다. 넷째,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과 분노를 표출할 만한 희생양을 찾아 증오를 표출하게 될 것이다. 

기후와 생태의 위기는 우리의 삶과 사회를 근본적인 위기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지만, 그 위기의 규모가 너무나 거대하고 복합적이어서 종종 우리는 무력감에 빠지거나 상황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정치학자 이나미의 『생태시민으로 살아가기』는 우리가 무력감이나 회피의 심리에 빠지지 않으면서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길을 안내해 준다. 성장주의적 삶에 대한 반성과 생태주의적 삶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문헌은 많지만 너무 높은 당위적 요청과 윤리적 반성을 앞세우는 경향이 있다. 

이와 달리 이 책은 당위와 윤리적 요청을 앞세우기보다는 현실적인 감각을 유지하면서 일상에서 각자가 생태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해 생각해볼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호소력 있게 소개한다. 말하자면 이 책은 “한 사람의 완전한 채식인보다 열 사람의 불완전한 채식인이 더 생태의 회복에 기여한다”라는 관점을 취한다. 이 책은 ‘공해’라는 문제에 대한 시민 대응의 역사, 시민의 개념사와 의미론, 다양한 생태시민성 이론 등의 논의를 통해 새로운 정치적 주체로서 ‘생태시민’의 밑그림을 그려나간다. 오랫동안 정치사상을 연구하고 생태적 사유에 깊이 천착해온 저자의 숙성된 통찰과 내공이 훌륭한 문장을 통해 고스란히 전달된다.

저자는 생태시민이라는 새로운 주체가 된다는 것이 거대한 정치적 기획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이웃과 비인간 자연과 맺는 관계를 재조정하는 일상적 과정을 통해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선 생태시민은 일종의 집사와 같은 존재가 될 필요가 있다. 마치 우리가 고양이를 보살피듯이 서로의 삶을 돌보는 집사처럼 이웃과 비인간 자연과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다. 돌봄의 제도와 실천을 조직하는 것은 그 구체적인 방안이 될 것이다. 

둘째, 우리가 서로의 이웃이나 비인간 자연과 협력하는 동료의 관계를 맺는 것이다. 이는 시민의회, 협동조합 등 협력적 동료 공동체를 구성하는 사회적 제도와 실천으로 구체화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은 우리가 참여적 시민이 되어 인간과 비인간 자연 등으로 이루어진 생태적 삶 전체에 일부로 참여하는 것이다. 서로에 대해 책임을 가지고 삶의 터전을 생태적으로 일구는 경제, 정치, 사회적 실천은 구체화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도 말하듯 전통적인 정치철학적 시각에서 볼 때, ‘생태’와 ‘시민’ 또는 ‘생태’와 ‘민주주의’는 그다지 잘 어울릴 수 있는 용어는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용어와 관념은 우리에게 닥친 위기를 헤쳐 나가면서 만들어지고 제련되어간 것으로서 언제나 생성과 변화의 과정 중에 있는 용어이다. 우리가 기후 및 생태위기에 직면해 있음을 인정할 수 있다면 ‘생태시민(성)’이라는 새로운 주체에 대한 보다 진지한 지적, 실천적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생태시민으로 살아가기』는 이 길에 뛰어난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주환 
동아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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