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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만난 동양철학…고전의 기계번역부터 XR까지
디지털 만난 동양철학…고전의 기계번역부터 XR까지
  • 김재호
  • 승인 2023.08.21 08: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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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철학과 디지털 리터러시’ 학술대회

디지털 리터러시와 생동적인 동양고전 교육
경학 본연의 가치인 통섭적 방법 여전히 중요

지난 17일, 한국동양철학회와 경남대 교양교육연구소가 주최하는 ‘동양철학과 디지털 리터러시’ 학술대회가 경남대 평화홀에서 열렸다. 사진=한국동양철학회

하이브리드 기계 번역부터 XR(확장현실) 등 디지털 기술에 부응하는 고전·동양철학을 살펴보는 학술대회가 열려 눈길을 끌었다. 지난 17일, 경남대 평화홀에서 한국동양철학회와 경남대 교양교육연구소가 주최하는 ‘동양철학과 디지털 리터러시’ 학술대회가 열렸다. 

이날 학술대회에서 양일모 한국동양철학회 회장(서울대 자유전공학부)은 개회사를 통해 “문학이나 사학 분야와 달리, 철학 분야는 디지털 인문학적 방법을 어떻게 도입할지 아직도 모색 단계에 머물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동양철학 분야는 디지털 인문학의 지평 위에서 자기 위상과 향방을 점검해야 한다는 요청을 강하게 받고 있다”라고 말했다. 

“중국철학서전자화계획(中國哲學書電子化計劃) 자료방은 중국간자체와 번자체, 영문으로 번역돼 전 세계인에게 중국의 고전 제자백가를 소개하고 있다.” 함영대 경상대 교수(한문학과)는 「디지털 경학자료와 한문 교육」 발표에서 이같이 설명했다. 함 교수는 “이는 기본적으로 중국 고전의 원문과 영문을 제공함으로써 중국철학의 세계에 입문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기 위한 것다”이라고 평했다. 하지만 함 교수는 “디지털 자료의 효과적인 활용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방법론의 개척이 바로 인문학이나 경학의 발전을 견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좀 더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라며 “테크놀로지의 발전이 평면적인 자료를 좀 더 입체화하고, 탐색과 활용을 좀 더 효과적으로 해준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 자체로 인간이나 세계의 진실을 바로 드러내 보여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한문·고전 데이터베이스화는 △한국경학자료시스템 △주자학용어사전시스템 △한국학진흥사업 성과포털의 한국주역대전, 성호전서정본, 정본여유당전서 등 정본화 작업 성과 △동양고전종합DB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등이 있다. 해외에는 도널드 스터전 영국 더럼대 교수(컴퓨터과학과)가 구축한 ‘차이니스 텍스트 프로젝트’ 등이 중국 고전DB와 DB를 활용할 수 있는 디지털 인문학 툴로 주목 받고 있다.

 

개인 아카이브 ‘위키’ 구축…공유·협업 수월해진다

디지털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인문학인 경학 본연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함영대 경상대 교수(한문학과)는 “기계문명이 더할 나위 없이 발전한 이때에도 여전히 수공업적인 행위가 필요한 일이 적지 않다”라며 “인문학적 성찰이나 경학에서 주석 간의 비교는 비교 그 자체가 아니라 비교하는 대상에 대한 연구자 자신의 깊은 안목에 의미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라고 강조했다. 

함 교수 발표에 대한 윤석호 부산대 교수(사학과)의 논평이 이어졌다. 윤 교수 역시 학문함과 인문학의 본질을 역설했다. 그는 “‘‘디지털 리터러시’가 결국 디지털화된 정보에 기초한다는 점에서 볼 때, 원전이 지닌 비문자적 정보를 포함한 생생한 전모를 어떻게 디지털화할 것인가도 함께 고민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검색과 분류’에 특화된 현재의 디지털 리터러시 경향은, 그 자체의 강점에도 불구하고 경학자료 연구에 요구되는 통섭적 혹은 종합적 방법론이 희석되는 면도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윤 교수는 “지면을 아껴가며 원고지의 한 칸을 채우기 위해 고심하던 옛 학자의 마음만은 존중할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윤 교수는 한문교육에 대한 부분도 지적했다. “디지털 자료의 활용은 한문교육의 자료범위를 넓히고 그 시야를 확장하는데 요긴하지만, 근본적으로 그것은 한문 학습 이후의 문제이다.” 이 때문에 윤 교수는 “한문 학습의 과정 자체에서는 여전히 기존의 학습 방법, 이를테면 강송을 하는 서당식 교육이 더 효과적인 것이 아닌가”라고 반문하며, 디지털 자료를 활용한 한문교육의 좋은 사례가 있는지 물었다. 

 

디지털 대전환에 따라, 동양철학과 한문교육에도 디지털 리터러시가 중요해지고 있다. 사진=경남대 교양교육연구소

 

디지털·인터랙티브·확장현실 동양고전 교육

실제적이고 생동적인 동양고전 교육도 제시됐다. 김혜수 부산대 교수(윤리교육과)는 「디지털 전환 시대의 동양고전 교육과 디지털 리터러시」에서 세 가지를 언급했다. 첫째, 디지털 동양고전이다. 주요 동양고전을 선정해 디지털북 형식으로 제작함으로써 생동감 있는 동양고전의 의미를 체득한다. 둘째, 인터랙티브 동양고전이다. 동양고전 속의 시대적·문화적 배경을 실감형식으로 표현함으로써 당시의 인물과 시대, 문화에 대한 이해를 생생하게 학습한다. 셋째, XR(확장현실) 동양고전이다. AI 기반의 디지털 휴먼기법을 활용함으로써 동양고전에서 등장하는 당시 인물과 시대적·문화적 배경을 VR(가상현실)과 AR(증강현실)로 제작한다. 실제적인 동양고전 체험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김 교수는 디지털 동양고전 교육의 비판적 능력과 인문학적 소양을 강조했다. 그는 “디지털 기술과 도구를 활용한 진정한 동양고전 교육은 각종 허위 및 악성 정보가 넘쳐나는 디지털 세상에서 그 진위와 선악을 판별할 뿐만 아니라, 수많은 이론이나 주장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을 갖추게 한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김 교수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않고 디지털 기술의 활용을 적절하게 자기 욕망을 통제하면서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도덕·윤리 의식을 갖추게 한다”라며 “더 나아가 디지털 리터러시를 나 자신과 타인, 그리고 사회의 이익에 기여하도록 해주는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고전과 한문교육에서 디지털을 활용한 수업이 늘어나고 있다. 사진=경남대 교양교육연구소

 

일회적 경험 넘어 수업과 유기적 연결

개인 아카이브인 ‘위키’ 구축 사례 역시 주목을 받았다. 안승우 성균관대 교수(유학동양한국철학과)는 「유학과 디지털의 실질적 만남 고찰: 교육 현장에서의 적용을 중심으로」를 발표했다. 안 교수는 “학부와 비교과 디지털 방법론 활용 수업에서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 인문학 연구소의 도움을 받아 위키 만들기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라며 “위키의 특징은 다수의 이용자가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으로 개인 아카이브를 손쉽게 구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공유와 협업이 가능하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안 교수는 위키를 구축해 수업 자료, 수업 토론 내용, 학생 발표 자료 등을 축적하고 있다.

물론 지속적인 콘텐츠 구축이 중요하다. 안 교수는 “개인 아카이브 구축 교육이 일회적인 경험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전체 수업 내용과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방식으로 구성될 필요가 있다”라며 “위키를 통해 실제 공동연구와 협업을 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하거나 위키를 활용하여 발표를 하는 등 디지털 활용 개별 교육과 전체 수업 내용·방식의 유기적인 구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학생들의 실제 개인 연구사에서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는 방식과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 속에서 교육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라고 제안했다. 

안 교수는 오는 2학기에 ‘유학과 디지털인문융합’ 대학원 수업을 앞두고 있다. 그는 “인공지능 윤리 문제를 체감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자율주행차 사고에 대한 윤리 문제로부터 시작해 전통적인 유학의 가치관을 현대사회의 다양한 윤리 문제에 맞게 재구성하는 경험을 하는 수업 구성을 시도해 볼 계획을 가지고 있다”라고 밝혔다. 예를 들어, 트롤리 딜레마에 기반한 자율주행차 사고 문제가 있다. MIT에서 개발한 윤리지침인 모럴 머신(Moral Machine)의 분석 모델을 넘어 유학의 ‘時中(때에 맞는 적절함)’ 윤리 모델을 만들어보는 것이다. 안 교수는 “수업에서 전통철학적 가치관에 기반한 윤리 모델 설계와 함께 윤리모델에 기반한 실질적인 온라인 조사를 통해 현대 한국인의 가치관 분석까지 나아가고자 한다”라고 설명했다. 

 

한국형 한자 데이터베이스 구축 필요할까

한국형 한자 데이터베이스 구축의 필요성도 제시됐다. 정성훈 목포대 교수(국어국문학과)는 「기계번역의 원리와 고전기계번역의 한계 그리고 가능성」에서 「승정원일기」의 번역 사례를 소개했다. AI가 초벌 번역을 하고 전문 번역가가 감수를 맡는 식의 분업을 통해 작업 일정을 수년에서 수십 년 앞당길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바로 ‘하이브리드 기계 번역’이다. 정 교수는 이에 대해 “통계 기반 기계 번역을 근간으로 규칙 기반 기계 번역의 장점인 사전과 언어학적 요소를 추가한 전·후처리를 해줌으로써 번역 품질이 향상된다”라며 “특화된 영역의 번역에 장점이 있고, 자연스럽고 정교한 번역이 가능하다”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정 교수는 한문고전 번역 병렬 코퍼스(구조화한 텍스트 덩어리) 구축과 확장, 한문고전에 대한 번역 플랫폼 구축의 필요성도 제안했다. 

이길산 경남대 교수(자유전공학부·철학)는 정 교수 발표에 대해 논평했다. 이 교수는 “철학사, 사상사, 지성사와 같이 추상적이고 담론적인 영역에 주로 종사하는 이들은 기계번역 내지 그 핵을 이루는 기술적 진보가 과연 우리의 연구에 어떤 함의를 가질 수 있는지 오리무중에 빠져 있다”라고 평했다. 그는 한문고전의 기계번역의 필요성에 대해 어떠한 내재적 수요가 있는지, ‘한국형 한자’란 게 얼마나 확고히 존재하는지, 한중일 한문고전 기계번역의 기술격차는 어느 정도 수준인지 등을 지적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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