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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부터 기본소득까지…‘차별’을 해부하다
감정부터 기본소득까지…‘차별’을 해부하다
  • 정인관
  • 승인 2023.08.07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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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의 발견_『차별하는 구조 차별받는 감정』 이주희 지음 | 글항아리 | 268쪽

구조적 차별 지속되는 감정 ‘체념·적응·혐오’
문제 해결의 주체는 국가, 고도의 비법은 정치

사회학자 이주희 이화여대 교수는 신작 『차별하는 구조 차별받는 감정』에서 한국사회의 차별(혹은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경멸과 폄훼”)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차별이 어떻게 사람을 무너뜨리는가’라는 제목 하에 왜 차별이 문제가 되는지를 간략히 다룬 서론(1장)과 이어지는 세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1부에서 저자는 차별과 관련해 조직(시장과 가족), 국가, 그리고 신념체계(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차별을 구조화하는지 설명한다. 2부는 이러한 구조적 차별이 지속되는 감정적 메커니즘을 다룬다. 저자는 특별히 체념, 적응, 그리고 혐오라는 세 감정 유형에 주목하는데 이들은 사회적 차별에 나름의 정당성을 부여하며 그것이 장기간 지속될 수 있는 토대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3부는 이러한 차별을 넘어서기 위한 실천적 방법으로 차별금지법과 적극적 조치, 기본소득과 기본서비스를 다루고 있다. 

제목에서도 명확히 드러나듯 저자에게 차별의 문제는 전적으로 ‘구조’적인 것이며 구조의 변화를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지난 몇 년간 큰 사회적 쟁점이 돼 온 젊은 남녀 사이의 갈등의 저변에는 안정적 일자리의 감소라는 구조적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저자는 차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핵심적인 가치(지향점)로 주저 없이 ‘평등’을 꼽는다. 다만 이러한 평등이 일시적이고 별로 이뤄지는 것은 없는 우대조치에 머물러서는 안됨을 강조한다. 대학교육을 포함한 교육기회 평등의 수립이 노동시장에서 나타나는 불평등한 결과를 감내하는 전제조건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점도 명확히 하고 있다. 교육기회 불평등을 넘어 노동시장에서 분배의 불평등 문제에 보다 주목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은 수능 킬러문항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가 지닌 관점의 한계를 예리하게 지적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차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주체는 누가 되어야 하는가? 차별을 만들어내고 공고화하는 행위자(국가, 기업, 개인)들의 노력이 모두 필요하겠지만 저자는 구조적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 핵심적 행위자는 국가임을 강조한다. 사회구조는 결국 법과 제도의 변화를 통해 바꿔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행위자들 사이에서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고도의 장치가 ‘정치’다. 책의 논지 를 따라가다 보면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정치가 이러한 과제를 얼마나 잘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자연스럽게 던지게 된다. 

이 책의 결론인 ‘자유 대 자유(10장)’에서 저자는 자유와 평등은 대립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구성원들의 보다 평등한 삶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보다 넓고 적극적인 의미의 자유(“차별 받지 않을 자유”)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는 최근 적극적 우대조치를 위헌으로 판단한 미국 대법원의 판결이 지닌 정치사회적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렇듯 한국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차별, 그리고 불평등 문제에 대한 저자의 분석은 포괄적이면서도 섬세하다. 다만 해결방안으로 제시된 제도들에 대한 구체적 논의의 부족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특히 기본소득과 관련된 내용의 경우 다소 원론적·당위적이며 이를 둘러싼 기존의 다양한 입장들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제한적으로만 언급하고 있다. 한국사회의 맥락에서 어느 수준의 기본소득이 적합하고 가능할지에 대한 저자의 견해가 좀 더 명확히 제시되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물론 대중서와 학술서 사이의 어느 지점에 놓여있는 이 책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요구는 다소 지나친 것인지도 모른다. 

사회과학의 고전적인 연구들과 최근 문헌들을 망라한 풍부한 기존 연구의 소개와 이론의 적용, 소설이나 드라마에 나타난 차별의 모습에 대한 구체적 인용은 저자의 논의에 대한 근거를 제공함과 동시에 읽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일상 경험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각 장들 사이의 유기적 연결성도 매우 높다. 한국사회의 차별과 불평등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정인관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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