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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대 살리기, 뭘 해야하는지 ‘사회적 논의’가 빠졌다
지방대 살리기, 뭘 해야하는지 ‘사회적 논의’가 빠졌다
  •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 승인 2023.04.12 08: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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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현장에서 말하는 ‘지방대 살리기’
동남권 경제에 조선산업이 막대한 양향을 끼치듯, 지방대는 지역사회에 영향을 끼친다. 사진=픽사베이

벚꽃이 지고 있다. “벚꽃이 지는 순서대로 문을 닫는다”는 속설대로라면 이제 무슨 일이 벌어져야 할 시간이다. 그리고 ‘정부의 시간’이 왔다. 윤석열 정부는 연말연초 라이즈 체계 논의를 시작으로 글로컬대학 추진을 발표했다. 혁신 의지와 역량을 갖춘 지방대 30개를 뽑아 각 학교 마다 5년 간 1천억 원을 지원함으로써 ‘대도약’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학령인구 감소, 지방대의 신입생 미충원과 재정위기, 혁신역량을 구축하지 못하고 소멸위기에 처한 지방이라는 미증유의 상황 앞에서 정부가 메시지를 낸 것이다.

나는 아직 정부 정책에 대한 찬반 입장을 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양질의 논쟁을 위한 ‘땔감’을 제공하는 것은 의미 있겠다는 뜻에서 지방 사립대 사회학과에서 10년 가까이 근무하면서 가졌던 생각을 공유해보려 한다. 특히 현재의 논의에서 곧잘 회피되고 있으나 짚었으면 하는 내용에 관한 것이다.

우선 현재의 논의에서는 지방대가 지역사회에서 점하는 위치가 충분히 고려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조선산업이 인력난에 빠졌다. 그런 조선산업이 계속 인구에 회자되는 이유는 동남권부산·울산·경남) 경제에서 차지하는 영향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2015년 기준 원하청을 포함해 울산과 거제에만 15만 명가량이 근무했던 조선소에서 절반 이상이 일자리를 잃어버렸다. 그런 지역 경제 위기 앞에서 정부는 고용위기지역을 지정하고 사업주와 노동자들에게 지원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산업의 업황이 돌아오는 지금 정부는 조업을 위해 필요한 노동자들이 조선소로 돌아오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조선업 상생협약’을 체결하며 가능한 모든 수단을 마련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학의 위기는 지역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내가 재직하는 경남대가 소재한 마산합포구의 인구는 18만 명이다. 그런데 경남대의 학부 재학생 숫자는 1만 명이다. 전임교원은 422명이고, 여기에 교직원과 조교, 각종 비정규직 연구원까지 합친다면 대학이 마산합포구에 미치는 영향은 그 자체로 대기업 하나에 맞먹는다. 최근 입시에서 신입생 정원을 채우지 못한 학교가 위치한 대부분의 지역은, 역설적으로 경제적 의존 측면에서 모두 대학도시다. 따라서 지방대 개혁안은 그 자체로 대학도시의 구조조정과 맞물려 있다.

연 200억으로 서울대 수준 혁신 바라나

지방대가 교육과 교수들의 개별적인 연구 외에도 지역별 전문가 풀을 제공한다는 측면도 충분히 고려되지 못하고 있다. 예컨대 광역시인 울산시(112만 명)와 특례시인 창원시(104만 명)에는 도시공학과가 없다. 도시기본계획을 수립하는 위원회를 구성하기 위해 전공자를 부산이나 진주에서 불러오면 그나마 다행이다. 마땅치 않으면 결국 수도권의 전공자를 불러와야 한다. 인구 20만을 간신히 넘기는 소도시라면 어떨까? 지역의 전문가는 전무하다. 모두 외부에서 불러와야 한다.

지방자치를 위한 최소요건 중 하나라 볼 수 있는 전문가 풀이 송두리째 무너져버린 상황이다. 신입생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4년제 지방 사립대들은 아주 보수적으로 잡아도 2021학년도부터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비인기학과’인 인문사회계열과 ‘어려운’ 이공계 전공들을 폐과하고 ‘당장의 취업에 도움 되는’ 실용적인 학과들을 세우며 지역의 전문대와 경쟁하고 있다. 현재 방향성대로라면 광역단위에 인문사회계열 전공이 모두 사라지는 지역도 속출할 수 있다.

기존 교수들이야 교양학부나 타전공으로 ‘전과’하면 되겠지만, 앞으로 ‘지역사회 전문가’는 지역에서 육성할 수 없게 될 수 있다. KTX를 타고 서울에서 내려온 인문사회계열 전공 전문가들은 얼마나 지역에 착근된 문제를 심도 있게 풀어낼 수 있을까? 두 논점을 살펴보면, 지역 문제와 지방대 문제의 불가분한 관계에 대한 검토가 입체적으로 잘 다뤄지지 않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글로컬대학30 정책을 통해 선정된 30개 학교에 각각 지원될 5년 기준 1천억 원이 “담대한 혁신으로 지역의 산업·사회 연계 특화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고 혁신을 선도하는 대학”을 만들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김종영 경희대 교수(사회학과)에 따르면 2020년 서울대가 받은 정부지원금은 4천866억 원이고, 9개 거점국립대의 정부지원금은 평균 1천265억 원이다. 거점대 한 곳이 글로컬대학으로 선정돼 1년 200억 원 수혜를 받는다해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고, 혁신을 선도하는 대학의 기준인 서울대 수준이 가능할지 의구심이 든다. 

물론, 현재의 개별 거점대들이 연구역량·교육역량·행정역량·인프라 모든 측면에서 서울대에 비길 수 없기에 1년에 3천600억 원을 소화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 단계는 글로컬대학 정책부터 시작해서 교육부의 방안처럼 추후 증액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방법을 수도권-비수도권 격차 심화에 대한 ‘과감한 해법’이라 보기는 어려워 보인다. 

글로컬대학 추진안이 발표되고 지역의 국립대들은 통합 또는 연대 방안을 내고 있고, 그 과정에서 불협화음도 나오고 있다. 개별 대학 단위 사업에서 통합 또는 연대를 앞세우기 힘든 대다수의 지방사립대들은 각자도생의 전략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 국립대의 과점과 사립대의 각자도생이 ‘지방대 시대’의 목표가 되는 것은 바람직할까? 글로컬대학과, 초광역을 지향하며 국립-사립의 경계를 넘어 공동학위제를 정착시키려 하는 지역혁신플랫폼 사업 사이 관계는 어떻게 설정될까? 지방대의 위기를 넘어, 대학과 지역 자체의 위기에 맞서는 대학 간 연결과 연대가 아닌 개별 대학의 각자도생과 국립대 과점으로 가는 과정을 혁신이라 부르긴 어려워 보인다.

행정역량 없는 지역서 라이즈 표류할 수도

지역에 따른 대학지원체계를 뒷받침할 지역간 역량 불균형도 잘 다뤄지지 않는다. 라이즈의 경우 기존 대학재정지원 사업의 권한을 교육부에서 지방정부로 이양시켜 지역 특화된 사업을 고안할 수 있게 한 점은 분명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국회입법조사처에서 지난해 12월 발간된 「지방자치단체 지역대학 지원 현황과 향후 과제」에 따르면 지자체의 재정자립도 양극화와 대학업무 담당 인원과 경험의 격차가 분명하게 존재한다. 

물론, 행정인원 확충을 조건으로 교육부가 라이즈 집행 권한을 준다면 사정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년간 ‘누적된 행정역량 격차’를 단시일에 극복할 수 있을 것인지는 의문이다. 누적된 행정 역량이 없을 때 4년에 한 번 선출되는 단체장과 지방의회에 의해 라이즈 집행 역시 표류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러한 우려에 맞서 교육부는 두 사업 모두에 대해 철저한 ‘성과관리’를 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성과관리’와 ‘규제 혁파’, ‘수요자 관점’의 혁신이 어떻게 아슬아슬한 균형을 맞출 수 있을지 여전히 우려된다. 

많은 대학교육 전문가들이 현재 지방대의 위기 가장 큰 원인으로 기존의 대학구조개혁평가와 대학기본역량진단의 ‘3대 정량 지표(신입생 충원율, 재학생 충원율, 취업률)’를 꼽는다. 그런데 이번 글로컬대학의 신청자격에도 대학기본역량진단이 들어가 있다. ‘과감한 혁신’을 위해 혁파해야 할 것이 단순히 대학의 ‘타성’ 뿐만 아니라 교육부의 관리체계에도 있는 게 아닌지 좀 더 심도 있는 토론이 필요해 보인다.

마지막으로 고등교육이 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빠졌다. 개별 대학이 혁신적 역할을 정의하려는 노력도 중요하고, 그런 노력에 호응하며 지원하려는 정부의 정책적 흐름도 중요하다. 그런데 그 내용을 대학의 ‘보고서 작성팀’이 작성하고, 지자체가 합의해, ‘선정평가위원회’에서 전문가들의 논의로 선정하는 것으로 충분할까?

당장 라이즈와 글로컬대학 정책 추진을 멈춰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지방대 체제를 ‘수요자 중심’으로 ‘과감히 혁신’하려 한다면 원론적일 수 있으나 사업 진행에 앞서 수험생, 학부모, 대학교육 전문가, 지역사회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좀 더 공개적인 장에서 면밀하게 듣는 과정을 빼놓을 수 없다. 대체 지방대의 인문사회계열 교육은 무엇이고, 공학교육은 무엇이며, ‘스펙’으로 쳐주지 않는 고등교육으로서의 지방대 졸업장은 또 무엇인가. 이미 고교 한 반 30명 중 수도권 4년제와 전문대 진학자를 제외한 6~25등만 가는 것으로 인지되는, 이미 서열화되어 있는 대학 ‘입결 체제’에서 지방대에 대한 낙인은 사회적으로 어떻게 또 해소할 것인가. 

짚어볼 질문을 계속 회피하다 보면, 결국 남는 것은 인류학자 조한혜정의 말마따나 “겉도는 말, 헛도는 삶”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지역 대학 교육 현장에서 고민하는 목소리를 좀 더 청취하고 ‘대담한 결단’보다 ‘충분한 합의’를 이끌 수 있길 기대한다. 이 지면의 역할도 그랬으면 한다.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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