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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과 이념이 만나면?...‘문학예술로 본 김정은 시대의 풍경’
기술과 이념이 만나면?...‘문학예술로 본 김정은 시대의 풍경’
  • 김재호
  • 승인 2022.11.08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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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문학예술연구회, 지난 5일 ‘테크놀로지, 인민의 일상, 대중의 욕망’ 심포지엄 열어
9명의 북한문학예술 연구자, 실증적 텍스트 기반해 북한 사회 변화를 분석

북한에도 증강현실(AR) 기반 메타버스가 도입돼 있다. 북한 삼흥경제정보기술사에서 개발한 평양시 길 안내프로그램인 ‘길동무 2.0’은 3차원 지도현시, 노선검색, 지도자료, 거리측정, 위치전송, 행정구역 및 도로, 철도노선 현시기능 등을 자동적으로 계산한다. 하승희 동국대 연구교수(북한학과)는 지난 5일 동국대 사회과학관 3층에서 열린 ‘테크놀로지, 인민의 일상, 대중의 욕망 : 문학예술로 본 김정은 시대의 풍경’ 학술 심포지엄에서 이같이 밝혔다. 길동무 프로그램은 3.1 버전까지 업그레이드된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 5일, 남북문학예술회가 주최하는 심포지엄이 동국대에서 열렸다. 사진=오창은

하 교수는 「ICT 기반 북한 문화콘텐츠 발전과 세계관」 발표에서 최근 북한이 과학기술 발전과 주민생활 향상을 중시하면서 정보통신기술을 강조하는 것에 주목했다. ICT 강조는 기존 북한사회의 예술적 미학, 가치와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메타버스와 NFT 기술이 북한 내에서 본격적으로 도입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이슈들을 검토했다. △기술수용의 합리화를 위한 이데올로기 및 철학, 담론의 변화 가능성 △NFT 시장 형성 경우의 북한 문학예술작품의 가치 평가의 변화 및 미술 지형의 변화 불가피 △기술발전 및 적용 측면에서 대내외를 철저하게 구분하는 이원화 전략의 활용 △새로운 세대의 기술 수용에 따른 기술의 사회적 재맥락화 가능성. 북한의 과학기술 발전은 생활문화적 측면에서 급진적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예측된다.

남북문학예술연구회(회장 오창은)가 주최하고, 통일부·동국대 북한학연구소가 후원한 이날 심포지엄에서 9명의 북한문학예술 연구자들은 최근 북한 사회의 변화를 실증적 텍스트에 기반해 풍부하게 읽어냈다. 북한문학예술 연구자들은 북한의 문화콘텐츠, 과학환상소설, 생태환경정치, 북한영화, 북한의 매체 등을 분석하여 논의를 전개했다. 

신형기 연세대 명예교수(문학비평)는 「북한, 이야기로 세워진 나라」라는 제목으로 기조 강연을 했다. 신형기 교수는 북한은 ‘승리적 전망’을 향해 “이야기로 세워진 나라”인데, “항일무장투쟁 이야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북한사람들을 가두는 감옥”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북한의 정치·경제 벗어나 문학예술 텍스트 연구

이번 심포지엄은 네 가지 점에서 의의가 있다. 첫째, 기존의 북한의 정치·경제 위주의 분석에서 벗어나 북한 문학예술 텍스트로 연구를 했다다. 둘째, 2011년 이후 김정은 체제의 북한 사회문화의 변화를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셋째, 구체적인 텍스트 분석을 위해 문학·언론·영화·문화콘텐츠 등을 실증적으로 다뤘다. 넷째, 북한 인민의 일상과 욕망, 생활상의 변화에 대한 논의를 진전시켰다. 

김민선 가천대 강사(현대소설)는 「연결과 가상, 김정은 시대 북한문학의 새로운 환상」을 발표했다. 김 강사는 북한의 문학 텍스트에 등장한 가상과 연결의 장면들에 주목했다. 김정은 시대의 북한문학에서 연결은 새로운 문학적 상상력의 가능성으로 등장한다. 북한소설 『출발선』에는 전자도서관의 대출봉사프로그램을 연구하는 젊은 프로그래머들이 그려진다. 박사원을 졸업한 연구사와 원격 대학교육으로 컴퓨터 공학을 학습한 노동자 출신의 프로그래머는 서사의 전개에 따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둘은 서로 경쟁하고, 또 노동자 출신 프로그래며는 끈기로 연구사의 오류를 잡아낸다. 이 둘의 갈등과 경쟁에서는 정보지식산업화에 대한 북한사회의 열망과 현실을 징후적으로 읽어낸다. 과학환상문학 『존엄』은 사회적 기여도를 기준으로 교환되는 새로운 가상 화폐체계에 대한 상상력이 담겨 있다. 이 소설은 사회주의적 과학기술에 대한 탐색을 담고 있다. 최근 북한문학을 통해 연결과 가상이 새로운 상상력의 가능성이자 욕망의 징후로 등장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테크놀로지, 인민의 일상, 대중의 욕망 : 문학예술로 본 김정은 시대의 풍경’ 심포지엄에서 9명의 북한 문학예술 연구자들이 발표했다. 사진=오창은

오창은 중앙대 교수(다빈치교양대학·현대소설)는 「자력갱생과 욕망하는 주체 : 김정은 시대 세계경쟁 담론」을 발표했다. 오 교수는 사회주의 국가로서의 북한의 현재를 문헌에 입각해 접근해 재구성했다. 북한사회는 2019년 2월 27일~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공동합의문’ 무산 이후 급격한 긴장상태로 빠져들었다. 2019년 당시 북한 사회는 경제제재에 대비해 ‘자력갱생’을 다시 강조했고, ‘전당, 전국, 전민’ 총동원체제에 돌입했다. 이 상황이 코로나19 팬데믹과 겹쳐지자 경색 국면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북한 문헌에 비춰볼 때 북한사회는 김정은 통치 기간에 ‘우리민족제일주의’에서 ‘우리국가제일주의’로 전환했다. 사회주의 정치이념 강화가 특히 눈길을 끈다. 2019년 북한 사회과학 논문은 1990년대 동유럽 사회주의권의 붕괴를 ‘수정주의, 우경투항주의 노선’으로 비판하는데 집중했다. 인민민주의를 강화한 선언도 북한 사회과학 논문에 빈번하게 등장한다. ‘우리국가제일주의’는 ‘세계경쟁’ 국가로서의 사회주의 국가의 운명을 책임진다는 담론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국가제일주의’는 선언적이지만, 사회주의 국가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세계무대에서 ‘자기 발언권과 영향력’을 갖겠다는 담론 체계라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김정은 시대 생태환경정치와 통치테크놀로지」(오삼언), 「영상 언어의 욕망과 정치적 상상력」(이지순), 「‘독자의 편지’로 본 김정은 시기의 주민생활과 사회윤리」(한승대), 「안막의 시편과 북한문학의 국제주의」(유임하), 「노동영웅 천리마에서 과학기술 첨병 만리마로- 김정은 시대 11년간의 문학」(김성수), 「김정은 시대 문학에 나타난 장애인 형상」(고자연) 등의 발표와 토론이 이어졌다. 

남북문학예술연구회는 남북 문학예술을 공부하는 학자들의 연구모임이다. 2004년 여름에 특정 학연과 이념, 기존 학계, 제도권의 틀을 뛰어넘는 자발적인 북한 문학예술 연구모임을 만들자는 김재용 원광대 교수(국어국문학과), 김성수 성균관대 대우교수(북한어문학)의 발의로 그 해 11월 26일부터 월례 세미나 모임을 진행하다가 ,2007년 2월 21일 정식으로 창립(초대 회장 김재용)했다. 남북문학예술연구회는 문학, 음악, 미술, 연극, 대중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북한문예 연구자들의 협력 연구를 통해 북한문학예술에 대한 심층적 이해를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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