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인회/가톨릭대·생명윤리 © |
연이은 세계 최초의 혹은 최고의 수식어를 붙여 보도되던 센세이셔널한 복제연구 성과에 대해 감히 비판과 제동을 거는 목소리를 그 누가 귀담아 들어주었으며, 공감을 표했던가? 또 언론은 지면 할애에 얼마나 인색했으며, 거의 신격화되었던 국민영웅의 연구방향에 대해 회의와 성찰을 촉구하는 글이 혹여 게재되더라도 얼마나 공허한 독백으로 끝나기 일쑤였던가?
황우석 스캔들이 드러나기 시작한 초기에는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몰라 눈치 보며 침묵하던 지성과 시민 단체, 여성계 등 다양한 분야의 인사들이 마침내 입을 열기 시작했고, 급기야 매일 새로운 필진들에 의해 현안 문제의 정곡을 찌르는 칼럼과 특집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처음부터 이러한 용기가 작용했더라면, 사태를 예방할 수 있었을지 않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옳지 않은 일에 대해 대다수가 옳다고 주장할 때, 대세를 따라가는 일은 물론, 무관심하거나 침묵하는 일도 또한 용기 없는 비겁한 행동이며, 아무도 말하지 않을 때 홀연히 나서서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야 말로 진정한 용기가 아닌가.
학부에서 필자의 수업은 시험과 과제에 쫒기는 의대생들에게는 어쩌면 과제로부터 해방과 휴식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겠다. 주로 현안 생명윤리 문제들에 대해 자유로운 발표와 토론으로 이어지는 수업은 토론을 통해 문제점들에 대해 각자의 생각을 정리하고, 가치관을 정립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윤리적 문제와 관련된 구체적 임상 케이스에 대해 분석도 해보고, 실제로 환자를 마주 대하고 상담해야 하는 경우를 설정해서 결정을 돕는 의사로서 어떤 자세를 취할 것인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실제로 생명윤리 심의를 하다보면, 생명윤리 교육이 누구보다도 필요한 분들은 현재 활발히 연구 활동 중에 있는 중견 학자들임을 절감하게 된다. 그들은 대학시절에 연구윤리에 전혀 접해보지 못한 세대들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맡고 있는 생명윤리학과 대학원생들은 의료계에 종사하는 분이거나 사제나 수도자들이다. 이미 직업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라는 점에서 학생들의 취업을 걱정하지 않는 것이 다행일 수도 있겠으나, 후학을 양성하는 것이 가르치는 선생의 보람이라면,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한편,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학과라서 학생 확보에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생명윤리법 제정 후 이제 각 연구기관에 생명윤리위원회가 구성되고 있지만, 생명윤리 전공자는 전무하다시피하며, 생명윤리에 대한 전문적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필요한 때임도 불구하고 전문가가 희귀한 현실이 안타깝다.